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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5 15:46:26 | 수정시간 : 2003.10.05 15:46:26
  • [정몽헌 쇼크] 죽음과 맞바꾼 사연 뭔가
    복잡한 심사 담긴 유서 남기고 충격적 자살

    흰 천에 덮인 정 회장 시신을 유가족 등이 지켜보고 있다.
    원유헌 기자





    4일 오전 5시50분 무렵,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 본사 사옥 뒤편 주차장 앞 화단. 환경미화원 윤모(63)씨는 평소처럼 화단 청소를 하고 있었다. 휴일을 보낸 월요일 직원들의 출근 시간을 앞두고 부지런히 비를 쓸고 있을 즈음 화단 안쪽에 이상한 물체가 보였다.



    언뜻 살펴보니 소나무 가지에 발목과 상체 부분이 가려진 채 한 노인이 양복을 입은 채로 똑바른 자세로 누워 있었다. 술 취한 사람이려니 생각하고 주차관리원을 통해 경찰에 신고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화단에 쓰러진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사장실이 위치한 사옥 12층 창문은 열려 있었다. 사체 확인 소견 등으로 추정해 볼 때 사망 시간은 이날 새벽 1~2시께. 한 때 천하를 호령했던 현대가(家)의 적통을 이어받은 정 회장은 그렇게 쓸쓸히 세상과 결별했다.



    정 회장의 투신 자살 소식이 전해지면서 재계와 정치권은 물론 나라 전체가 큰 충격에 휩싸였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입니다. 나의 유분을 금강산에 뿌려주기 바랍니다.” “어리석은 행동하는 저를 여러분이 용서해주기 바랍니다.” 재벌 총수의 죽음 뒤에 남겨진 것은 A4 용지 4쪽에 적힌 짤막한 유서 뿐이었다.



    무엇이 잘못이라는 건지,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건지 구구한 설명은 없었다. 투신 직전 그의 침통하고 복잡한 심정만 세세히 묻어날 뿐. 현대가의 적자(嫡子)는 도대체 왜 죽음의 길을 걸어야 했던 것일까.




    아버지, 그리고 대북 사업에 대한 애착





    정 회장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남달랐다. 현대그룹 창립자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5남. 1975년 현대중공업 사원으로 시작해 81년 현대상선 대표이사 사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경영 일선에 나선 그는 98년 그룹 공동 회장에 올라 금강산 관광 등 대북 사업을 관장하면서 현대가의 강력한 후계자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리고 결국 2000년 이른바 ‘왕자의 난’에서 형 몽구(현대차그룹 회장)씨를 제치고 공식적으로 현대그룹의 법통을 이어받았다. 현대가의 적자로서 부친이 생전 강한 애착을 보였던 대북 사업에 대한 애정도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현대의 한 관계자는 “적통을 물려준 부친에 대한 송구스러움 때문에 정 회장에게 있어 대북 사업은 자신의 존재 이유나 다름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현재로선 부친과 대북 사업에 대한 강한 애착이 그의 자살 동기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분석이 가장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왕자의 난’ 이후 채권단 등으로부터 3부자 동반 퇴진 압력을 받을 당시에도 정 회장은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 직을 고수하며 대북 사업만은 포기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하지만 부친 사망 이후 잇단 정치적, 법적 공방에 휘말리며 대북 사업을 비롯한 그의 사업은 험로의 연속이었다. 현대아산의 주력 산업인 금강산 관광은 만성 적자에 시달렸고, 주력 계열사였던 현대건설과 현대상선은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봉착하며 부도 위기를 맞기도 했다.



    DJ 정부 말기 불거진 ‘5억달러 대북 송금 사건’은 결정타였다. 남북정상회담과의 연관성 의혹과 함께 특검 수사가 시작된 이후 그의 정신적 고통은 더욱 심해졌으리라는 게 주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 정 회장 시신이 수습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특검은 대북 송금 5억 달러 중 1억 달러가 정상회담 대가성 자금이라고 규정한 데 이어 현대측이 DJ 정권 실세였던 박지원 전 문화부장관에게 150억원의 비자금을 전달했다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정 회장의 정신적 고통은 생전 그의 말에서도 확인된다. 2개월여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괴로운 심경을 이렇게 토로했다.



    “신념을 가지고 시작한 대북 사업이 칭찬을 받기는커녕 이렇게 비판을 받을 지 몰랐다. 대북 사업을 시작한 것이 후회가 될 정도다.”



    김윤규 현대아산 瑛恙“?남긴 A4 용지 1장 짜리 유서에서도 아버지와 대북 사업에 대한 애착이 묻어난다.



    “명예회장님께는 당신이 누구보다 진실한 자식이었습니다. 당신이 회장님 모실 때 자식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웠습니다. 명예회장님께서 원했던 대로 모든 대북 사업을 강력히 추진하기 바랍니다….” 적통을 이어받은 자식으로서 대북사업 등 가업을 제대로 잇지 못한 것이 자살을 선택하게 된 동기로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자살까지 이르게 된 데는 평소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던 정 회장의 성격도 중요한 원인이 됐을 수도 있다.




    추가 비자금이 핵폭탄?





    그렇다 해도 “하필이면 왜 이 시점이냐”는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이미 특검 수사를 통해 대북 송금에 대한 의혹은 대부분 까발려졌고, 더 이상 추가로 드러날 사항도 그리 많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최근에도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사업 등과 관련, 의욕적으로 활동해 왔다.



    지난달 23~25일 금강산 육로관광 재개를 위해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과 함께 금강산을 방문한 뒤 돌아왔고, 9월1일 육로 관광 재개를 앞두고 있는 터였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최근 잇단 검찰 수사 과정에서 느낀 정치권 등 주변에 대한 강한 배신감이 촉매제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현대의 한 관계자는 “정 회장은 대북송금 수사 및 공판을 받는 과정에서 모든 정치권 인사들이 책임을 떠넘기는 데 대해 회한이 컸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치권이 부친의 숙원 사업이었던 대북 사업을 정쟁의 수단으로 삼는데 대해 심한 배신감을 느꼈을 수 있다”고 전했다.



    정 회장은 자살 직전은 7월26일부터 8월2일까지 1주일 가량 동안 모두 3차례에 걸쳐 대검 중수부에서 조사를 받았고, 1일에는 대북송금 사건 3차 공판에 참석하기도 했다.



    검찰 주변에서는 ‘150억원 비자금 사건’ 수사 과정에서 추가 비자금 조성 과정이 속속 드러나면서 심리적 압박을 받았을 수 있다는 해석도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특검에서 바통을 넘겨받은 대검은 박지원 전 장관에게 전달됐다는 150억원 외에도 현대 비자금 전반에 대해 조사를 벌여 ‘150억원 플러스 알파’를 확인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검찰은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영완(미국 체류 중)씨의 귀국을 종용하며 수사 결과 발표 시점을 조율해 오던 중이었다.



    지금까지 현대의 추가 비자금과 관련해서는 ‘1,000억원 비자금 조성설’ ‘4.13 총선 200억원 유포설’ 등 갖가지 의혹이 제기돼 온 상태. 만약 비자금 150억원의 실체와 함께 추가 비자금이 확인될 경우 파장은 일파만파로 번질 수 밖에 없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SK 최태원 회장이 검찰에 구속되면서 SK그룹이 총체적인 위기를 맞고 있듯 현대 역시 분식회계 등의 비위 행위가 드러나는 것은 시간 문제”라며 “정 회장이 검찰 조사 과정에서 상당한 심적인 고통을 겪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에서 자살 원인의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이 모든 것과는 별개로 정 회장의 가슴 안쪽에는 목숨을 버려야만 묻어 둘 수 있는 또 다른 비밀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남은 자들은 그저 이러니 저러니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죽은 자는 이제 더 이상 말이 없으므로.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입력시간 : 2003-10-05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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