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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6 11:21:11 | 수정시간 : 2003.10.06 11:21:11
  • [脫 한국] 희망을 찾아… 떠난다
    20·30대 청년이민 급증
    끝 안보이는 불황터널, 생존경쟁·빈부격차 심화








    20ㆍ30대의 ‘탈(脫) 한국’ 행렬이 줄을 잇는다. 급증하는 ‘청년 이민’이 시대에 또 다른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경기 침체. 그 긴 터널 속에서 마땅한 일자리는 없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아파트값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자녀들의 사교육비, 학교든 일터든 갈수록 치열해지는 생존 경쟁만도 버겁다. 게다가 병역의무까지. 한국은 후손들에게 대물림 시키고 싶지 않은 것들로 꽉 차 있다. 해결책은 요원하게만 보인다.



    지난 추석 연휴, 모처럼 모인 가족들의 만남 자리에 최고의 화두는 정치도 경제도 아닌 바로 이민이었다. 올해 초 한 여론조사에서 ‘이민을 가고 싶다’는 응답이 40%를 넘어선 터라 ‘이민 열풍’은 이미 예견된 바다. 요즘은 더욱 놀라워졌다. 1970~90년대 40ㆍ50대가 주축이 됐던 이민 연령층이 최근 30대로 급강하, 일터에서 열심히 일해야 할 청ㆍ장년층에 탈 한국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최근 한 TV홈쇼핑업체가 캐나다 이민 알선 서비스를 상품으로 내놓자 단 80분 만에 983명의 신청자가 몰려 매출액이 175억원에 이르렀다. 이는 홈쇼핑 사상 상품 종류를 불문하고 최고 대박이었다.



    ‘이민 열풍’의 덕을 톡톡히 본 이 업체는 또 한 차례 이민 상품 판매 방송에 나서 90분간의 전화 문의 봇물속에서 2,935명으로부터 상담 신청을 받았다. 특히 이민 상품 상담 신청자의 62%가 바로 20ㆍ30대 젊은 청ㆍ장년층이었다. 이민이 국민적 화두로 떠올랐다지만 한국경제의 성장 동력이어야 할 20ㆍ30대가 앞 다퉈 한국을 떠나려 한다는 사실에 주최측마저 놀라움을 감추지 못 한다.




    "차라리 해외서 직장얻겠다"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취업난 탓에 ‘차라리 해외에서 직장을 얻겠다’는 구직자들도 크게 늘고 있다. 이민 상품을 판매한 같은 TV홈쇼핑 방송이 지난 여름방학 기간인 7,8월 3회에 걸쳐 해외 인턴십 상품을 판매한 결과, 총 296분 방송에 54억2,800만원 어치가 판매됐다. 시간 당 11억원의 매출을 올린 셈이다. 상품 구매자는 20대가 42.3%, 30대 38.7% 등으로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20ㆍ30대가 대부분이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한 해외 이주ㆍ이민 박람회에는 20ㆍ30대 젊은 층이 주류를 이루며 참가자만도 1만8,000여명이 몰려 발 디딜 틈 없는 장사진을 이뤘다. 지난해에 열린 이민 박람회 참가자들보다 무려 2배나 많은 규모로 이 또한 참여 업체들부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떤 젊은이들은 괌, 피지, 몰타 등 이민자가 많지 않은 지역에 까지도 높은 관심을 보일 정도였다. 서울시립대 사회학과 이건 교수는 “전쟁이나 지진도 없는 나라에서 젊은이들의 해외 탈출 러시가 나타나는 것은 사회 내부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며 “정치ㆍ사회적 혼란에 염증과 불안을 느끼고, 경쟁력 없는 교육시스템에 절망하고, 지나친 집단이기주의로 경제적 기회가 아예 박탈된 현실에 희망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뉴질랜드, 캐나다와 호주 등으로 현재 이민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3명의 30대 젊은이들로부터 이들이 토로하는 ‘탈 한국’ 배경과 이민 그 후의 생활 계획에 대해 들어본다.



    뉴질랜드 이민을 준비중인 김상우(37)씨는 떠나는 이유를 대뜸 “한국이 싫어서…”라고 퉁명스럽게 말한다. 꼬치꼬치 이유를 대라면 할 말이 많지만 오히려 “한국이 싫다”는 함축된 말 한 마디가 모든걸 대변한다는 표정이다.



    현재 대구에 섬유제조공장을 둔 중소 섬유무역업체를 운영하는 김씨는 “우선 경기가 외환위기 당시 보다 더 어렵고 인건비까지 올라 중소기업하는 사람들에게는 ‘돌을 어깨에 지고 산을 넘으라’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한 숨을 내쉰다. 오죽 했으면 대기업들까지 한국을 떠나 중국이나 동꼐틔?공장을 옮기겠냐는 말이다.



    특히 “대구의 경기는 어느 지역보다 더욱 심각하다”며 무엇인지 가슴에 울화가 치미는 모습이다. 그는 “최근 2~3년 전까지 만해도 제품 판매 마진이 15% 정도를 유지했지만 불황이 닥친 지난해부터는 5%도 채 안 될 정도로 남는 게 없는 장사”라고 손사래를 친다.



    사업하는 사람치고 “장사 잘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김 씨는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중소 기업들의 사업 환경에 대해 목청을 높인다. “중소 제조업체들에 대한 정부 지원책은 둘째 치고 오히려 탈세를 유도하는 정부 정책 때문에 ‘열심히 일만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분홍빛 희망은 커녕 현실이 암담하고 비관적으로 느껴질 뿐”이라고 정부를 성토했다.








    "대한민국에 희망은 있는가"





    평소 골프를 좋아하는 김씨는 지난 6월 프로골퍼 자격증을 땄다. 그냥 골프가 좋아서가 아니다. 앞으로 뉴질랜드에 이민 가서 꿈에 그리던 골프 스쿨을 운영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다. 뉴질랜드는 이민자들에 대해 제조업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따라서 국내에서 하던 섬유제조 사업을 뉴질랜드로 이전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씨는 지난해 초부터 이민을 가기로 마음을 먹고 가족과 친구 들과 세밀하게 이민 계획을 세우며 2005년까지 서두르지 않고 필요한 제반 여건을 하나씩 준비해 가고 있다.



    이민을 마음먹게 된 결정적 이유는 아이들 교육 때문이지만, 스스로 미지에 대한 도전과 새로운 삶을 개척해 보고 싶은 욕망도 컸다. 골프 스쿨 운영도 이미 친구 2명과 함께 오래 전부터 계획을 세워온 이민 생활 프로그램이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에다 골프 레슨은 물론이고 골프 연습장과 숙박시설이 포함된 골프스쿨을 세워 친구들과 직접 레슨을 하며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제2의 인생이 시작되는 셈이다. 한국 교민 2,000여명이 살고 있는 오클랜드시 외곽에 한화 8억~10억원 정도만 투자하면 꽤 괜찮은 부지에다 설비와 시설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김씨는 구체적인 계획안까지 설명했다. 김씨는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자신만의 이유가 있지만 저는 제가 좋아하는 골프를 치면서 가족들과 항상 가까이 생활할 수 있고 오염되지 않은 보다 나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교육시킬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이민 가는 이유가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올 12월 캐나다 토론토로 자녀 2명과 함께 우선 떠날 예정인 강혜숙(35)씨는 이민을 결정하게 된 계기를 남들과 같이 “자녀 교육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자녀교육도 문제지만 “항상 부딪치며 사는 피곤한 일상의 삶에 지쳤다”는 표현이 한층 적합하다. 강 씨의 남편 송기철(38)씨는 우리나라의 대표기업으로 꼽히는 S전기에서 연구개발(R&D) 담당 과장을 지냈다. 하지만 14년간 근무한 연구직에 대한 보상 제도나 자기 개발 기회는 아무리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이라도 야박한 것이 현실이다. 이 같은 환경에서 자기 생활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찾기란 더더욱 어렵다.



    기업은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졌다.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에 회사에 남아 있으면 도둑)’에 이어 ‘삼오정(35세 정년)’이라는 말까지 나올 만큼 고용이 불안하다. 따라서 해외를 나갈 수 있는 기회나 안정되고 희망 있는 사업거리만 생긴다면 누구나 고개를 빼고 들여다 보고 싶은 것이 요즘 인지상정이다.



    송 씨는 40대를 앞두고 이젠 자신의 사업을 가져야 겠다는 마음이 앞섰지만 영업전선에 한 번도 발을 들여놓지 않은 연구생으로써 엄두가 나지 않았다. 또 서울 강남 한복판인 도곡동에 살다 보니 교육비 등 이런 저런 생활비만도 월 평균 450만원 정도가 들어가는 현실에서 “이대론 안되겠다”는 생각 끝에 먼저 이민 가 있는 동생의 뒤를 쫓아 캐나다 이주를 결심하게 됐다.



    지난 3월 회사를 그만두고 영주권을 신청해 놓은 송씨는 영어 공부와 더불어 이민 이후의 사업을 구상하느라 빠듯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강 씨는 “이웃과 주변에서 우리가 이민 간다는 것을 너무나 부러워 한다”며 “사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가정의 경우, 이민에 대해 ‘한 번 가 볼까’하고 생각할 정도지만, 중ㆍ고교 자녀를 둔 가정은 ‘꼭 가야 한다’고 서슴없이 나서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강남에서는 이제 이민 가정이 그다지 큰 뉴스 거리가 못 된다. 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이웃집이 이민 간다면 ‘또 떠나는구나’라고 할 만큼 당연시 돼 있다.



    강씨는 “요즘 강남 엄마들 사이에서는 자녀들에게 돈을 물려주는 것 보다는 선진국 시민권을 물려주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재산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라며 멋적게 웃는다.



    하지만 ‘이민 그 후’의 생활에 대한 걱정은 강씨 역시 마찬가지. 강 씨가 이주하게 될 캐나다 토론토 시의 노드욕은 높은 교육 수娩熾?벌써 ‘토론토의 8학벙?繭箚?불릴 만큼 한국 이민 가정의 자녀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다. 어쩌면 서울 강남의 8학군을 그대로 옮겨놓은 곳인지 모른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할 것이 때문이다. 또 최근 들어 캐나다에서 역(逆) 이민 오는 가정을 볼 때면 남 얘기같이 들리지 않을 때도 있다.



    따라서 현재 살고 있는 강남 도곡동 아파트는 월세를 주고 갈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 강 씨는 이민 생활을 고려해 요즘 자녀에게 우리 전통 악기인 장구와 단소 등과 함께, 체스를 가르치고 있다. 부모의 욕심은 끝이 없다. “한 1년 동안은 아이들 뒷바라지 하는 데 눈코뜰 새 없을 것 같아요”라는 그녀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제 자신의 생활을 위해 외국인들을 위한 영어교사 교육 프로그램을 공부해 볼까 한다”고 말했다.




    이민 이후…간과해선 안돼





    호주 이민을 꿈꾸는 정재훈(31)씨는 호주 퀸스랜드주 센트럴 퀸스랜드대 정보기술(IT)학과에서 학사 과정을 마친 유학생 출신이다. ‘IT열풍’ 이 한창이던 졸업 당시 정씨는 현지에서 취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1남 5녀의 막내로써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그냥 귀국해야만 했다.



    하지만 서울의 현실은 냉담했다. 취업난 속에서 마땅히 구직도 어렵고 30세를 넘다 보니 신입 채용 조건에서 번번히 밀려나고 말았다. 최근 누나와 함께 한방 비누 제조업에 나서 직접 영업과 판매에 나서고 있지만 자신이 계획하던 꿈과는 현실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점을 누구보다 실감하고 있다.



    정씨는 다시 호주로 돌아 갈 준비를 하고있다. 유학생 출신의 대학 동창생들은 현지에서 취업해 버젓하게 생활하고 있는데 자신만이 외톨이가 된 듯한 느낌에 자꾸 뒤쳐진다는 생각이 든다. 정 씨는 “사교육비를 물쓰듯 하며 대학을 졸업한 뒤, 외국어 시험에서 만점 가까운 점수를 받고서도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곳이라면 누군들 떠나고 싶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지금 세계 각국은 새로운 지식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끌어들이기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갈수록 길어지는 젊은이들의 한국 탈출 행렬은 우리가 이 전쟁에서 무방비 상태라는 사실을 선명하게 일러준다. 미래지향적 지식을 쌓고 경제의 주축이 되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이 땅에서 보람과 희망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만이 그들을 붙들 것이다.



    장학만 기자 local@hk.co.kr


    입력시간 : 2003-10-0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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