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쪽방동네 사람들] 삶의 끝자락에 서서 세상과 벽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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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1.20 14:12:24 | 수정시간 : 2003.11.20 14:12:24
  • [쪽방동네 사람들] 삶의 끝자락에 서서 세상과 벽쌓기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음지의 그들
    "세상은 당신들의 천국일 뿐"






    11월 12일 오후 7시. 잔뜩 움츠리던 하늘은 끝내 빗물을 쏟고 만다. 서울역 광장 여기 저기 앉아 있던 사람들이 쫓기듯 주섬주섬 대합실로 몰려 들기 시작한다. 중앙 분수대 턱에 걸터앉는 이, 그들의 일상과는 무관한 얘기로 가득한 텔레비전 앞에 다가 앉는 이, 술에 취해 이도 저도 할 여력이 없는 이….

    할 수만 있다면 굴러 다니는 신문지를 깔고 아예 바닥에 드러누울 태세다. 대합실의 빈 자리를 찾아 여행객 대열에 합류 해 보는 사람도 꾀죄죄하기는 마찬가지.

    꼬질꼬질한 트레이닝복에 등산화, 터질 듯한 가방을 맨 양기철(가명, 34)씨. 한 시간을 꿈쩍도 않고 분수대에 걸터 앉아 있다. 옆에 가까이 다가 섰지만 관심 밖이다. “오늘 어디서 주무실거요?”옆 사람이 아는 체를 하며 던진 물음. 그러나 초점 없이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다. 그게 전부다. 아무런 대꾸가 없다.

    그리고 얼마쯤 지났을까? 대화 비슷한 게 이어졌다. “식사했소?”-“예, 형씨는?”-“대충…”. 저녁 끼니를 때우기 위해 역사를 빠져 나가는 동안 그는 서너 명과 안부를 주고 받는다. 의례상 주고 받는 보통 사람들의 인사와는 다르다. 정말 식사를 했는지의 여부가 그들에겐 중요한 인사다. 점심도 못 먹었다는 한 사람을 끌어 들인다.

    집이 이곳인 그들은 노숙자 생활 사흘이면 이런 식으로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다.


    "기자양반, 소주나 한잔 사쇼"



    “거어…기자 양반. 비도 그치고 쌀쌀해지는데 오뎅 국물에 소주나 한 잔 합시다.” 가판대 옆으로 신문지 몇 장을 깔고 앉았다. 그들이 ‘길싸롱’이라 부르는 곳이다. 서울역 광장 포장마차에서 사 온 오뎅 국물 3,000원 어치와 소주 두 병에, 그들의 팍팍한 삶은 빗장을 풀었다.

    연거푸 들이킨 몇 잔에 제법 취기가 오르고, 꼭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중학교를 중도에 그만 두고 여기 저기서 일을 했지. 홀어머니가 세상을 등지면서 시작된 방황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데, 벌써 11년째요. 저 세상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이 생활 만큼은 벗어야겠다, 천번 만번 고쳐 먹는 마음이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구먼.” 그의 사연은 계속된다.

    “(아무도) 이런 모습의 나를 거들떠 보지도 않지만 설사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속셈이 있었다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았다. 이미 부도난 사업체가 내 명의로 등록되어 있더라.” 그러나 자신을 이용한 세상을 원망할 힘조차 없다. 세상 끝 자락에서 아무리 고함을 지른들 누구 하나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신의 몸 하나 가누기도 어려운 터에 그럴수록 힘만 더 빠진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상과의 벽이 하나씩 하나씩 쌓여 간다.

    밤 11시 30분. 행인들이 옷깃을 여미며 발걸음을 재촉하는 시간. 몇몇은 하나 둘씩 어딘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제 한 시간 뒤엔 세 시간 동안 서울역 구내는 전면 통제다. 발길은 자연스레 근처의 회현역, 을지로입구역으로 향한다. 길싸롱에도 더 이상 손님이 없다.

    비슷한 시각 서울역 앞 지하보도. 껌뻑거리는 할로겐 램프 아래로 술에 절은 노숙자들이 쓰레기통처럼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지하보도 중앙에 늘어선 기둥과 기둥 사이의 ‘아랫목’에는 열 너댓명의 노숙자들이 일찌감치 자리를 틀고 잠을 자고 있다. 이불을 덮은 이 보다는 박스나 신문지 몇 장에 몸을 맡긴 이들이 더 많다. 지하보도는 이미 그들의 코고는 소리와 야릇한 악취로 가득하다. 행인들은 또각거리는 구둣발 소리만 낼 뿐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술에서 깬 한 노숙자가 자리를 털고 일어 섰다. “추워서 깼다”는 그의 다음 행선지는 을지로 입구. 고아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중국집에서 면 뽑는 일과 배달을 10년 정도 했다는 이국행(가명, 38)씨.

    10여년 전 교통사고로 일을 접어야 했다. 어느 동네라도 번지수만 주沮嗤?5분내로 찾아갈 수 있다는 비상한 공간 지각력을 자랑하는 그지만, 온전치 못한 몸의 그를 받아 주는 곳은 없었다. 그간 잡역 일용직을 전전하길 여러 해. 모아둔 돈도 병원에서 다 날린 터다.

    IMF 전만 하더라도 일거리가 많아 월 20일만 일해도 월셋방에서 살 수 있었지만, 요즘은 일거리를 잡지 못하는 날이 더 많다. 하루 벌어 사흘을 입에 풀칠하고 사는 격이니, 팔 하나 옆으로 제대로 뻗지 못하는 6,000원짜리 쪽방도 부담스럽다. 이날 이렇게 길에 나 앉은 것도 일감을 못 구했기 때문이다.


    밤새 추위에 떨다 첫 전철에 몸을 싣고



    그날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 을지로입구역. 부쩍 을씨년스러운 날씨지지만, 지하 1층으로 내려서니 온기가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한산한 길거리와는 달리 이곳은 수 많은 사람들로 북적댄다. 100명은 족히 넘어 보인다. 아직 전철 시간이 남아 있어 가끔씩 행인들이 눈에 띄지만, 대부분은 노숙자다. 계단 몇 개를 사이에 두고, 지상과 지하 1층은 마치 아무 상관 없다는 듯 서로에게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

    한 가운데 도드라져 둥그렇게 놓인 대리석 벤치. 그 위엔 40여명의 노숙자들이 이미 잠들어 있다. 따뜻한 열기가 나오는 것일까. 더러는 커피 자판기를 에워싸 누웠다. 같이 온 이씨와 함께 아직 자리를 마련하지 못한 몇몇은 서성거린다. 어딜 돌아봐도 노숙자들이다. 바닥과 벽면이 만나는 곳이라면 빈틈이란 없다.

    서성거리던 그들은 결국 계단 출구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신문에서부터 포대, 에어컨 커버까지 덮개도 다양하다. 아예 대형 냉장고 박스를 갖다 놓고 들어가 자는 이도 있다.

    좀처럼 누울 생각은 않고 서성거리는 한 사람이 유난히 시선을 끈다. “여기서 이불 없으면 못 자요. 자게 되더라도 삭신이 쑤셔 못 일어나요.”아직 이곳 생활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탓이기도 했다. 박수만(가명ㆍ37)씨가 겨우 잠을 청하는 곳은 새벽 전철. 2호선 첫차에 몸을 싣고 두 세 바퀴를 돌면 4~5시간은 곤히 잘 수 있다.

    그는 1년 전만 해도 월급 300만원을 받는 유명 한식점 주방장이었다.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칼을 다시 쥘 수 없어 주방일은 접고 전단지 떼는 공공근로 생활에 접어 들었다.

    그를 이 생활로 내몬 것은 카드로 결제한 치료비 2,000만원. 그래서 그는 한국 국적을 얻으려는 불법 체류 중국 여자와 위장 결혼을 하는 것을 심각히 고려중이다. “450만원은 준다네요. 이혼 경력 하나 남는 게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그까짓 게 뭐, 대수겠어요?”

    얼마쯤 흘렀을까. 노숙자 중의 하나가 일어나 잠자리를 정리한다. 그 바람에 옆에 자던 이도 몸을 뒤척인다. 시계가 있을 리 만무한 그들이니, 옆 사람이 일어나면 따라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일어나고 또 따라가다 보면 밥은 굶지 않는다고 했다.

    바깥은 아직도 어둡다. 그러나 그들은 화장실에서 간단히 세면을 마친 뒤, 노련하게 검표 게이트를 뛰어 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곤 돌고 도는 2호선 첫차에 노곤한 몸을 싣는다. 한 바퀴, 두 바퀴…, 남루하다 못해 비루하기까지 한 그들의 일상이 또 하루치의 쳇바퀴질을 시작했다. 날이 훤해지고 을지로 입구역엔 수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지만, 열명 남짓한 노숙자들은 취생몽사의 꿈에서 좀체 깨어날 것 같지 않다.

    명품족들의 호들갑도, 캥거루족들의 어리광도, 심지어는 아침의 태양마저도, 그들에게는 ‘당신들의 천국’일 뿐이었다.



    정민승 인턴 기자 prufrock@empal.com


    입력시간 : 2003-11-20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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