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변호사 덤핑시대] '士자'들은 지금 취업전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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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5.03.03 13:47:53 | 수정시간 : 2005.03.03 13:52:20
  • [변호사 덤핑시대] '士자'들은 지금 취업전쟁 중
    사법 연수생 30% 이상이 '백수'상태로 수료, 원하는 취업 '바늘구멍'
    변호사업계 불황으로 개업 엄두 못내, 로스쿨제 시행땐 취업난 가중






    사법연수원 34기인 이모(37)씨는 2월 18일 수료식 때 ‘죄인’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지방 출신인 이 씨는 3년 전 사법시험에 합격했을 때만 해도 동네에서 잔치가 열리면서 ‘영감님’ 소리를 들으며 주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었다. 그러나 이 씨는 현재까지 진로를 정하지 못 한, 이른 바 ‘백수’ 상태에 있다.

    임용 성적이 안 돼 지난해 말부터 중소 로펌이나 정부기관, 일반 기업 등의 문을 두드렸지만 아직까지 반응이 없다. 나이가 많은데다 다른 동기생처럼 석사학위나 특별한 자격증도 없고, 어학 실력도 뒤지는 탓이다. 이씨는 부득이한 경우 변호사 개업을 생각하고 있으나 변호사 시장이 워낙 불황인데다 연수원을 갓 나온 변호사는 외면당하는 현실 때문에 현재 연줄을 찾아 고용 변호사 자리를 알아 보고 있다.

    연수생 34기 중에는 이 씨와 같은 ‘백수’가 상당수에 이른다. 수료 당시 연수생 957명 중 진로가 결정되지 않은 채 연수원을 나선 인원은 320명(33.4%)이나 된다. 군 입대자를 뺀 순수 취업 대상자(813명)를 기준으로 보면 연수생 중 무려 39.4%가 일 자리를 정하지 못한 것이다. 이는 ‘사법 시험 합격자 1,000명 시대’의 첫 세대로 지난해 수료한 연수원 33기의 경우 수료생 966명 가운데 213명(22%)이 진로가 결정되지 않은 것과 비교해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다. 연수원 32기는 수료생 798명 중 169명(21.2%)이 진로 미결정 상태에서 수료식을 치렀다.

    사법연수원생들의 취업난은 사법 시험 1,000명 시대가 진행될수록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연수원 수료 후 진로 미결정자들은 뒤늦게 기업체나 사회 단체, 국가 기관 등에서 일자리를 찾고 나머지는 법무법인 변호사, 고용 변호사나 단독 개업 변호사로 ‘백수’딱지를 떼지만 ‘진짜 원하는’취업은 점차 어려워 지고 있는 상황이다.

    사법연수원에서 연수생들의 진로를 담당하고 있는 김현호 교수는 “연수원 수료후 3~6개월 안에 대부분 진로가 결정되기 때문에 연수생들에게 일반적 의미의 ‘실업’은 없지만 더 나은 직업을 갖기 위한 취업 경쟁은 매년 치열해지고 있다”며 “2월 초까지 200여명의 진로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연수원 34기 자치회장을 지낸 박춘희(41) 변호사는 “연수 기간 동안 성적이 우수한 300여명을 포함해 전체 연수생들의 최대 고민이자 화두는 진로였다”면서 “자치회에서 동기생들의 취업을 위해 정부 기관과 기업 등에 연수생에 관한 홍보물을 보내곤 했다”고 말했다. 김현호 교수도 “연수 과정에서 전문 기관을 방문할 때는 지도 교수들과 함께 연수생들의 취업 문제를 얘기하는 것이 일과처럼 됐다”고 전했다.

    사시 1,000명 시대는 취업 전쟁은 물론 취업 구조를 바꿔 놓고 있다. 연수생들은 판사ㆍ검사 등 안정적인 현직을 최우선으로 꼽고, 그 다음으로 대형 로펌 - 대기업 법무팀 - 중소 로펌 - 공공 기관 순이라는 게 연수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사법시험 합격자 300명 시대인 6~7년 전만 해도 현직 임용보다 대형 로펌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 수석 합격자인 서동우(연수원 16기, 법무법인 태평양), 한이봉(연수원 18기,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등 연수원 성적 상위권자들은 대형 로펌을 선택하는 붐이 일었다. 그러나 매년 사법 시험 합격자가 증가, 1,000명선으로 육박하면서 변호사 시장의 파이가 감소함에 따라 다시 현직을 우선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연수생들의 취업 구조는 피라미드 형태를 띠고 있다. 최상층부는 일부 현직과 대형 로펌이, 최하층부는 고용 변호사나 단독 개업한 연수생들이 차지한 가운데 대기업 법무팀과 중소 로펌, 공공기관 순서대로 층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취업영역 다양, 생소한 분야로 진출
    취업문이 좁아지다 보니 몸값을 낮추고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는 경우가 점증하고 있다. 종래에는 현직 임용이나 중ㆍ대형 로펌 취업에 전력했으나 최근에는 헌법재판소, 감사원, 금융감독원 등 공공 기관을 비롯해 민주노총, 조계종 총무원, 아름다운재단, 배구연맹 등 과거에는 생소한 분야까지 진출하고 있다.(상자기사 참조)

    한국배구연맹에 취업한 김용주(33, 34기) 변호사는 “연맹에 들어오기까지 다른 동기생들처럼 좀 더 나은 취업을 위해 고민했다”면서 “그러나 평소 스포츠에 관심이 있고 ‘새로운 길’에 대한 의욕과 앞으로 스포츠 영역이 확대되면 법률적으로 접근해야 할 분야가 많을 것 같아 연맹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또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의 정책 보좌관(5급)을 하고 있는 정영훈(35, 34기)변호사는 “연수원 시절 인권법학회에서 활동하면서 ‘인권’에 관심을 둬 왔다”며 “인권 측면에서 진보적 활동을 하는데 민주노동당이 이념에 부합하고 국가인권위나 민변 취업도 고려했지만 ‘입법’이 파급력이 크고 중요하다고 생각해 의원 보좌관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최근 연수생들이 변호사 개업보다 취업쪽으로 눈길을 돌리는 것도 두드러진 현상이다. 사법연수원 임시규 교수는 “변호사 업계의 불황 때문에 개업보다는 임용이나 취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연초에 법무팀 충원을 끝낸 삼성과 SK의 경우 각각 4명과 3명을 모집하는데 200명 이상의 지원자가 몰려 50대 1의 경쟁률을 웃돈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에 지원을 했다가 고배를 든 김모(31, 34기) 변호사는 “삼성의 경우 웬만한 로펌보다 연봉이 높고 인센티브 제도가 있는 데다 향후 법무팀을 강화할 것으로 알려져 지원했다”면서 “변호사 시장의 불황을 잘 알기 때문에 개업 대신 괜찮은 기업에 취업하려는 게 연수생들의 경향”이라고 말했다. 그는 “SK를 비롯해 몇몇 대기업에도 지원했다”면서 “다른 연수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연수생들이 개업 대신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등에 동시다발적으로 지원하면서 취업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지난 1월 원서접수를 마감한 삼보컴퓨터의 경우 87대 1의 경쟁률을 보였고 한화그룹은 76대 1, 미래에셋자산운용은 20대 1, 감사원은 15대 1, 외교통상부는 15대 1, 경찰청은 8.7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작년에 4명을 선발한 데 이어 올해 전국금속연맹에서 1명을 선발한 민주노총의 경우, 20여명의 연수생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해 2월에는 산업자원부에서 계약직 5급(사무관) 1명을 모집하는 데 3명이 몰려 ‘하향 지원’추세를 뚜렷이 보여 주기도 했다.

    이에 반해 소신이나 신앙에 따라 취업한 경우도 있다. 아름다운재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황필규(36, 34기) 변호사는 “연수원 인권법학회서 국제 인권법 관련 공부를 한 게 계기가 돼 이곳에서 일하게 됐다”면서 “이주 노동자와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앞으로 국제 기구나 다른 국가와의 연대를 모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수원 33기인 김형남(40)ㆍ김봉석(32) 변호사는 조계종 총무원을 지원한 이색적인 경우로 “신앙 생활과 일상 생활을 함께 하고 싶어 내린 선택”이라고 말했다.

    기업 법무팀이나 로펌, 공공 기관, 사회 단체 등 어느 곳에도 취업하지 못한 연수생들은 고용 변호사로 들어 가거나 개업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고용 변호사의 경우 월 수입이 300만원대인 것이 보통이고 지방은 200만원대인 곳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 사무실의 고용 변호사로 들어간 김모(31, 33기) 변호사는 “수입이 없는 달의 경우는 월급을 나중에 받은 적이 있다”며 “변호사 업계의 실상을 보고 취업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연수원을 갓 나와 개업한 변호사는 적자를 보기 일쑤고 사무실 운영비조차 버거운 경우가 적지 않다.

    박춘희 변호사는 “요즘 같은 불황기에 연수원을 갓 나와 단독 개업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내 오빠(박인제 변호사) 사무실에서 변호사 일을 하고 있다”며 “사법 시험 1,000명 시대를 실감한다”고 말했다. 올 초 연수원을 마친 김영주(32, 34기) 변호사는 “나이도 있고 해서 변호사를 지원했는데 운 좋게 중형 로펌에 취업했다”며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한 동기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사건수임 감소로 변호사업계 위기
    법조계에서는 사법 시험 합격자가 크게 늘면서 사시가 명예와 부를 보장하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고 말한다. 사시 합격자는 1998년 이후 500명으로 늘었고 매년 순차적으로 증가해 2001년부터 1,000명씩 쏟아져 나오고 있다. 2월 18일 기준으로 국내 변호사는 모두 7,283명으로 5~6년 후면 변호사 1만명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10년 전만 해도 “40세에만 사시에 합격해도 본전은 뽑는다”고 했지만 이제 옛 말이 됐다. 사시 1,000명 시대에 따라 사건 수임이 감소하면서 변호사 업계에 위기가 닥친 것이다.

    4,000여명의 변호사가 활동 중인 서울의 경우 지난해 변호사 한명이 수임한 사건 수는 본안 사건을 기준으로 월평균 3건으로 사무실 유지도 어려운 상황이다. 변호사 개업 15년 차인 한 중견 변호사(47)는 “사법 시험에 합격했을 때만 해도 결혼 중매가 여러 곳에서 왔고 수입도 괜찮은 편이었는데 요즘 후배들에게는 전설같은 얘기가 됐다”고 말했다. 충남 천안에서 변호사 개업한 지 10년 차에 접어 드는 이준연(43) 변호사는 “초창기만 해도 변호사가 적어 서울에 비해 수임 단가가 싸도 사건을 많이 맡으면 사무실 운영에 문제가 없었는데 10년 사이 변호사가 3배 가량 늘면서 사건 수임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사법개혁추진위원회가 2008년부터 도입하기로 한 로스쿨 제도가 실시되고 법률 시장이 개방되면 변호사 시장이 또 한 번 요동칠 것으로 전망한다. 변호사 업계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견해와 함께 변호사 시장이 넒어지고 활성화될 것이라는 반론도 있지만 대다수 개업 변호사들에게 두려움을 주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법연수원 김현호 교수는 사시 1,000명 시대의 취업난과 관련,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세계화’기치 아래 변호사를 양산했지만 이를 활용할 대책이나 방안은 소홀했다”면서 “지금부터라도 정부 각 부처와 공공기관에서 사법시험 합격자를 수용해 법률 전문가로 육성, 국가 경쟁력을 강화한다면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김 교수는 변호사 업계 불황의 이유를 사시 합격자의 증가로만 몰아가는 데는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법률 시장의 구조적이고 시스템적인 미비가 근본적인 이유인 만큼, 이에 대한 치유가 시급하다는 강조다.

    연수원 출신 변호사의 고된 실상

    법조 타운인 서초동에서 지난해 연수원 동기와 개업을 한 박모(35, 32기) 변호사는 최근 ‘진로’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한달 수임 사건이 2~3건에 불과해 사무실 운영비(1,500만원)조차 감당하지 못한 게 벌써 몇 달째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약사를 하는 부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사무실을 지탱하고 있지만, 사법 시험 1,000명 시대가 지속되면서 머잖아 로스쿨 제도가 시행되고 법률 시장까지 개방되면 도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박 변호사는 “2년 전 선배 변호사 밑에서 고용 변호사로 있을 때가 차라리 편했다”며 “‘개업하면 최소 6개월은 굶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선배의 말을 뒤늦게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때 기업 취업도 시도했지만 ‘대리급 대우’라는 말에 뜻을 접었고, 고향(충남)에 내려가 개업할 생각도 했지만 그 곳 선배 변호사로부터 지방 실태를 전해 듣고 단념한지 오래다.

    박 변호사는 최근 살아 남기 위해 전문 변호사를 기대하며 서울지방변호사회 연수 프로그램에 나갔다가 같은 처지의 연수원 동기들과 선후배 변호사를 만난 뒤 변호사로서 생존하는 것에 두려움마저 느낀다고 털어 놨다. 그는 요즘 다시 고용 변호사로 되돌아 갈 것인지, 아니면 특수 법무대학원에 진학해 전문성을 갖출 것인지 등의 길을 놓고 이런 저런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사법 시험 합격자 1,000명 시대의 진로는

    사법 시험 합격자 1,000명 시대의 첫 기수는 사법연수원 33기로, 2004년 수료 당시 인원은 966명이다. 이들 중 군법무관 입영자 87명과 공익법무관 대상자 60명을 제외한 819명 수료생 가운데 112명이 예비판사로, 77명이 검사로 임용됐다.

    단독ㆍ공동 개업이 191명, 개인ㆍ합동 사무소 취업은 155명, 법무 법인에는 세종 8명, 광장과 김&장이 각 7명, 화우ㆍ정평이 각 6명, 태평양 3명 등 모두 177명이 취업했다. 1998년 수료생 31명 중 변호사를 택한 인원이 97명이지만, 2003년 수료생(연수원 32기) 798명 중 383명이, 33기도 절반이 넘는 523명이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공공 기관에는 경찰청 7명, 금융감독원 6명, 법률구조공단 6명, 감사원ㆍ헌법재판소 각 2명, 재경부ㆍ교육부ㆍ예금보험공사 등 각 1명으로 모두 36명이 취업했다. 기업은 삼성 5명, LG 8명, 대한항공 2명, 포스코ㆍ한화그룹 각 1명씩 40여 곳에 모두 46명이 취업했고, 사회 단체에는 아름다운재단 4명, 조계종 총무원 2명, 민주노총 4명 등 모두 16명이 취업했다.

    올해 연수원을 나선 34기 수료생은 957명. 2월 21일을 기준으로 예비 판사 96명, 검사 85명이 임용됐고 군법무관 입영자는 147명이다. 1월 31일 현재 단독ㆍ공동 개업은 143명, 개인ㆍ합공 사무소 취업은 66명, 법무 법인에는 세종이 12명으로 가장 많고 화우 7명, 김&장 6명, 태평양 6명 등 70여 곳에 138명이 취업했다.

    34기 연수생 수료 당시 진로가 미정인 연수생이 320명으로 33기에 비해 100여명이 많았다. 그런데도 단독ㆍ공동 개업을 선택한 수료생은 143명으로, 지난해 191명에 비해 크게 줄었다. 법무 법인에의 취업 또한 33기 177명보다 적어 변호사 시장의 불황을 반영했다.

    공공 기관쪽으로는 감사원ㆍ경찰청 각 10명, 법률구조공단 8명, 법제처 4명, 외교통상부와 공정거래위원회 각 3명 등 50명 가량이 취업할 예정이다. 지난 해에 이어 기업체 진출은 계속 늘어 삼성이 4명, SK 3명, SKT와 KT, LG필립스 각 1명씩 등 26명의 취업이 확정된 상태고 앞으로 50명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사회 단체로의 진출도 활발해 민주노총, 아름다운재단, 배구연맹 각 1명씩, 국회의원 보좌관 4명, 휴먼터치 1명 등 15명이 취업했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


    입력시간 : 2005-03-0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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