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커버· '중국 조기유학 러시' 약인가 독인가] 넓은 문호에 이집저집 '중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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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7.05.14 14:04:11 | 수정시간 : 2007.05.14 14:27:09
  • 넓은 문호에 이집저집 '중국행'… 무작점 짐싸면 십중팔구 실패
    [커버· '중국 조기유학 러시' 약인가 독인가]
    입학 쉽지만 일정수준 안되면 한국 학생들끼리 수업… 현지서 사교육도

    금융기관에 다니는 직장인 류 모(39) 씨는 얼마 전 중국 베이징으로 인사 발령을 받았다.

    현지 근무 기간은 1년. 하지만 그는 파견 기간이 끝난 뒤에도 계속 중국 근무를 자원, 가족들과 함께 몇 년 더 머물 요량이다. 자신의 경력 관리와 함께 하나뿐인 아들(12)의 교육을 위해서다.

    “벌써 오래 전부터 중국 근무를 별러 왔다. 개인적인 경력에도 도움이 되지만 내 아이에게 드넓은 세상을 일찍 경험하고 색다른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건이 허락되면 아이가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중국에 체류할 계획이다.”

    중국 조기유학 붐이 수년 전부터 확산되면서 요즘 류 씨처럼 자녀를 중국에서 공부시키려는 30, 40대 학부모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 중국 대륙으로 옮겨가는 현실을 피부로 느끼면서 자녀의 미래를 중국에서 찾겠다는 것이다.

    1년에 5,000만~8,000만원 정도 드는 영미권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2,000만원대의 유학 비용, 한국과 가까워 자녀를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점도 한국 학부모들이 중국 조기유학을 선호하는 또 다른 이유다.

    게다가 중국 진출 기업들이 폭증하면서 주재원 자녀들도 자연스레 조기유학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통상 중국 주재원들은 과장에서 부장급으로 한창 10대 자녀를 양육하는 연령대가 다수를 차지한다.

    현재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 숫자는 대략 3만5,000여 개. 아울러 중국 조기유학을 떠난 학생 숫자는 2만~3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영미권 자본으로 설립한 국제학교 선호

    자녀의 중국 조기유학을 희망하는 부모들은 특히 ‘국제학교’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 그중에서도 영미권 국가의 자본이 설립해 운영하는 국제학교가 첫손가락에 꼽히는 선호 대상이다.

    모든 수업을 원어민 교사들이 영어로 진행하는 데다 커리큘럼이나 수업 방식도 우수한 편이다. 게다가 중국어도 함께 배울 수 있어 미국과 중국의 양강 체제로 재편되는 오늘날에 자녀를 ‘양수겸장’의 글로벌 인재로 키우는 데 안성맞춤이라는 생각도 한몫하고 있다.

    베이징에 있는 영국(홍콩)계 국제학교(CIS)에 다니는 정민(가명ㆍ13) 군은 다국적 기업의 중국 지사로 발령을 받은 엄마와 함께 중국에 유학을 온 지 만 2년이 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건너와 현재 중학교 1학년 과정을 밟고 있다.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은 영어, 수학, 과학, 역사, 지리, 미술, 음악, 체육 등으로 단출하다. 모든 수업을 영어로 받는데 하루에 1시간은 중국어 과목으로 편성돼 있다.

    정민이의 하루 일과는 무척 빡빡하다. 아침 7시20분에 스쿨버스를 타고 등교해 오후 4시 무렵 하교하지만 그 뒤로 각종 과외, 학원 수업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과외 1순위는 중국어다.

    국제학교에서는 중국어 수업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그밖에 한국에 돌아올 때를 대비해 수학과 논술을 따로 배운다. 드럼, 클라리넷 등 악기 연주도 강사를 초빙해 익히고 있다.

    이렇게 정민이가 중국에서 유학하는 데 드는 비용은 학교 수업료 1,800만원과 과외 비용을 합쳐 연간 2,500만원 안팎이다. 물론 엄마와 함께 생활하면서 지출하는 비용은 제외한 것이다.

    결코 만만치 않은 경제적 부담이지만 부모는 정민이의 중국 조기유학에 대체로 만족하고 있다. 당초 하나뿐인 아들에게 넓은 세계를 경험하도록 하는 게 주목적이었는데 중국어와 영어 실력까지 상당히 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국제학교에 유학을 시킨다고 해서 모두 정민이와 같은 성과를 얻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린 나이에 중국어를 쓰는 나라에 가서 영어로 수업을 받고 아울러 한국 교과과정까지 따로 배워야 하는 ‘3중고’를 무난히 이겨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한 시중은행의 베이징 지점에서 근무하는 정 모(43) 씨는 아내, 두 자녀(13세, 9세)와 함께 아예 베이징으로 둥지를 옮겼다. 가족 모두가 함께 외국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아이들에게 자연스레 유학 기회를 줄 수 있는 흔치 않은 호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당초 예상과 달랐다. 아이들을 싱가포르계 국제학교(BISS)에 보냈지만 영어를 익히기에도 버거워 중국어 공부는 아직 못 시키고 있는 형편이다. 더욱이 아이들의 영어 실력도 기대만큼 늘지 않고 있다. 한국 학생들이 너무 많아 끼리끼리 어울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문제도 생기고 있다. 정 씨는 “한국 학생들이 많다보니 그 안에서 서열을 따지고 텃세를 부리기도 한다”며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일반 중국 학생들과 달리 국제학교를 다니며 생활수준도 높다보니 중국과 중국인을 얕보는 등 편견을 갖는 것 같다”고 걱정을 털어놓았다.

    중국 조기유학을 통해 자녀의 글로벌 감각도 길러질 수 있겠거니 했던 기대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결과다.





    유사 국제학교 난립, 입학전 꼼꼼히 살펴야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국제학교를 향한 한국 학생들의 행렬은 더욱 길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입학 신청을 해도 6개월~1년씩 대기해야 하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늘어나는 한국 학생을 수용하기 위해 건물을 증축하는 학교도 눈에 띈다.

    현재 중국의 외국계 국제학교는 베이징에 15개교, 상하이에 8개교 정도가 운영되고 있고 지방 대도시들에도 한두 개씩은 있다. 이밖에도 한국 학생들의 국제학교 유학이 러시를 이루면서 중국계 자본이나 한국계 자본이 설립한 국제학교도 속속 문을 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중에는 한국 학부모들의 요구를 만족시켜주기 위해 영어와 중국어 학습 비중을 거의 반반으로 맞춘 이른바 ‘쌍어(雙語)학교’도 생겨나고 있다. 일반 국제학교가 영어에 치우친 단점을 보완한 것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허술한 교과 과정과 시설만 갖고 국제학교 간판을 내건 ‘유사 국제학교’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 까닭에 자녀를 중국에 조기유학 보낼 때는 반드시 부모가 학교를 직접 방문해 교육 여건을 살펴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국제학교 유학과는 별개로 중국 일반학교에 유학을 가는 학생들도 크게 늘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사실 중국 조기유학생 가운데 대다수는 ‘국제부’ 과정을 인가 받은 순수 중국학교로 입학하고 있다.

    국제학교는 부모 중 한 사람이 중국에 체류해야 하는 조건이 붙지만 중국학교는 유학생 혼자 와도 받아주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학부모들 입장에서는 까다롭지 않다. 아울러 요즘 관심이 크게 높아진 중국 대학 진학을 위해서는 중국 중ㆍ고교 과정을 배우는 게 필수다.

    최근 중국 교육당국은 한국 유학생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수많은 학교에 국제부 인가를 내주고 있다. 베이징에서만 국제부가 설치된 학교가 73개교나 된다. 뿐만 아니라 지방 도시나 농촌 지역에도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에 따르면 중국학교가 외견상 한국 유학생들에게 문호를 활짝 열어놓은 듯하지만 실제 입학해서 공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무엇보다 중국어능력 평가시험인 한어수평고시(HSK) 점수가 일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중국 학생들과 합반(중국에서는 ‘차반’이라고 표현) 수업을 받을 수조차 없게 돼 있다.

    그러다 보니 중국어가 처지는 한국 유학생들은 이른바 ‘학력반’에 모여 사실상 한국의 교실과 다름없는 분위기에서 공부를 하다가 졸업하는 경우도 허다한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 대학 진학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외를 받아야 한다는 점도 국내 사교육 현실을 무색케 하는 대목이다. 현재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다수의 입시 학원들이 성업 중이다.

    이처럼 중국유학은 자칫하면 한국의 교육 여건을 중국에서 고스란히 답습하는 황당한 경우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때문에 중국유학을 떠나더라도 그 전에 반드시 현지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고 아울러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는 건 실망밖에 없을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충고다.



    입력시간 : 2007/05/1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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