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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5 20:40:08 | 수정시간 : 2003.10.05 20:40:08
  • "만화 한류 큰 물결 일으키겠다"
    작가 10명 만화중심(주)설립, 중국 진출로 한국만화 영광 재현 노력







    열댓 평 남짓한 공간. 선풍기가 부지런히 돌아가지만 군데군데 헤진 비닐 소파를 가득 메운 이들이 뿜어내는 열기를 감당하기는 역부족이다.



    웃통을 훌렁 벗어제친 채 양반 다리를 하고 앉은 40대 아저씨, 탁자 위에 수십 권쯤 책을 쌓아 놓고 연신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20대 총각, 가뜩이나 비좁은 공간에 소파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고 벌렁 드러누운 떡대 좋은 ‘고삐리’, 꼬질꼬질한 손에 침을 묻혀 책장을 넘기며 키득거리는 꼬마 아이…. 10여년 전 ‘만화’라는 간판이 내걸린 가게에 들어서면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군상들이었다.




    장인의 자존심, 회사를 차리다





    절정은 올림픽이 개최됐던 1988년 무렵이었다. 90년대를 넘어서면서 국내 출판 만화 산업은 서서히 내리막 길을 걸었다. 혹자는 슬램덩크를 필두로 한 일본 만화의 유입 때문이라고 했고, 혹자는 초고속 인터넷의 급속한 확산과 PC방의 등장을 이유로 들었다. 한 때 1만3,000개 가량에서 2,000개 미만으로 줄어든 만화 가게는 스러져가는 국내 만화 산업의 현 주소다.



    그대로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나이 열 여섯부터 펜을 잡기 시작해 40년 가까이 만화에 몸을 바쳐 온 장인(匠人)의 자존심, 혹은 예의였다. 지난해 10월 동료 작가 몇몇과 술자리를 같이 했다. 의기투합했다.



    “뭉치자.” 힘을 합쳐서 무얼 하겠다는 건지, 또 무얼 할 수 있는 건지 막연했지만 의지 만큼은 결연했다. 불과 10개월 뒤 결실이 맺어졌다. 대한민국 만화중심 주식회사(이하 만화중심). 사명(社名)부터 범상치 않다. 그 한 가운데 ‘신의 아들’ ‘새벽을 여는 사람들’ ‘나는 왕이다’ ‘신이라 불린 사나이’ 등 숱한 히트작을 남긴 스타 만화가 박봉성(54)이 있었다.




    만화의 패러다임을 바꾼다





    자본금 3억5,000만원. 거창한 사명에 비해 어딘지 초라하다. 헌데 이미 빽빽이 들어찬 사업 내용을 들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그렇게 짧은 기간에 준비한 것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여기엔 박봉성을 비롯한 주주 작가들은 콘텐츠만 제공하고, 광고인 출신인 오영택씨를 사장으로 영입해 철저한 전문 경영 체제를 도입한 데 힘입은 바가 크다.



    사업의 출발은 8월12일 문을 여는 홈페이지(www.comiclife.net)다. 박봉성을 비롯한 10명의 ‘주주 작가’들이 제공하는 만화 콘텐츠는 기본이다. 만화 캐릭터를 이용한 새로운 형태의 게임 TCG(Trading Card Game), 만화 관련 쇼핑몰, 만화 유저들과 작가들을 위한 커뮤니티, 만화 명예의 전당 등 획기적인 코너들이 선을 보인다.



    그는 “온라인 포털 사이트를 통해 제공되던 콘텐츠를 한 곳에 통합시킴으로써 상당한 시너지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간 사실상 전무했던 만화 애호가들을 위한 쉼터가 마련되는 것이다”고 했다.



    만화중심은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2차 저작권’ 사업에도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다. “만화는 21세기 콘텐츠의 중심입니다. ‘리니지’ 등 오락 게임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무사’ ‘비천무’ 등 영화의 뿌리가 되기도 하죠. 특히 만화 캐릭터의 상품화는 시장이 무궁무진합니다.” 옆에 있던 오영택 사장은 헐리우드 영화 ‘스타워즈’의 경우 영화로 벌어들인 수입인 7억달러에 불과하지만 2차 저작권 시장은 무려 50억달러에 육박했다고 설명했다.



    그 첫 삽이 이른바 ‘구영탄 프로젝트’다. 고행석 만화의 주인공인 ‘구영탄’을 캐릭터로 재창조해 드라마, 음반, 출판 만화, 플래쉬애니메이션 제작 등으로 영역을 넓혀나간다는 계획. “가수 크라잉넛과 캐릭터 구영탄이 조만간 함께 내놓을 음반을 기다려 달라”고 주문한다.




    거대 중국 시장 진출 카운트다운









    만화중심이 무엇보다 신경을 쏟는 것은 대 중국 사업이다. “국내 만화 산업의 위기를 기회?만들기 위해 거대한 중국 시장을 발판으로 만화의 한류(韓流)를 일으켜 보자는 취지”다. 우리나라의 만화 마니아가 30만명 안팎이라면 중국은 200만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을 정도다.



    중국 정벌은 연말께 온ㆍ오프라인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시작된다. 소후, 시나, 163, 톰 등 중국 상위 4개 포털 사이트와 제휴를 맺고 만화 콘텐츠를 제공하고, 중국 내 2개 신문사와 제휴를 맺고 중국 최초로 일간지 만화 연재를 시작한다.



    또 중국의 세계적인 영화 감독 서극 최초의 TV드라마 ‘칠검하천산’ 제작에 맞춰 온라인 게임, 만화 제작, 캐릭터 등 모든 2차 상품의 독점개발권을 확보하고 1차적으로 12월에 만화 10권을 출시한다. 이 모든 것을 앞두고 10월 주주 작가 10명이 중국에 건너가 ‘한국 만화의 대 중국 진출’을 공표하기로 했다.



    그는 만화중심의 중국 공략이 성공할 것을 자신한다. 여기엔 자신을 포함한 국내 작가들의 실력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다.



    “중국 역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 만화 열풍이 불었죠. 하지만 일본 만화는 가격이 높고 특히나 이미 불법 복제를 통해 중국에 모두 노출이 된 상황입니다. 충분히 경쟁력있는 국내 작품을 통해 정면 승부를 한다면 수조원에 달하는 중국 만화 시장을 정복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만화중심은 당돌하게도 3년 후 중국 매출 목표를 연간 1,000억원으로 잡아 놓았다.




    한국 만화의 영광을 되살린다





    황재, 고행석, 김철호, 오일룡, 조명훈, 강촌, 황성, 야설록, 황승남…. 박봉성과 함께 만화중심에 참여하고 있는 10명의 주주 작가들이다. 국내 만화 산업이 위기에 봉착했다지만 이름 석자 만으로도 여전히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이들이다.



    그가 “만화가들이 수익 사업을 통해 돈을 벌려고 한다는 식으로 보지 말아달라”고 주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 만화 산업의 파이를 키우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는데 힘을 실어주는 과정으로 이해해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10명의 주주 작가들이 중심이 돼 활동을 하지만 점차 외부 작가나 신인 작가에게도 문호를 적극 개방할 작정이다.



    또 조그만 민간 기업으로서는 좀처럼 엄두를 내기 힘든 공익 사업도 준비 중이다. 연간 1억원을 투입해 국내에서는 최초로 ‘만화 백서’를 출간하고, 정기적인 ‘만화 공모전’을 통해 신인 작가들을 발굴해 생계에서부터 제작, 출판까지 일체를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이다.



    입문 이후 지금까지 250여종, 5,000여권의 작품을 내며 쉴 새 없이 달려오기만 한 박봉성은 요즘 모든 작품 그리기를 중단했다. 벌써 3개월 째다. “혈압이 높아지는 등 몸에 이상이 와서”라고 했다. 예전 같으면 달변이었을 그가 더듬더듬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걸 보면 분명 휴식이 필요할 듯 싶다.



    하지만 그는 만화중심에 만큼은 좀처럼 관심을 끊기 힘든 모양이다. “내 작품 속 주인공이 모두 전지전능한 캐릭터여서인가 보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그리곤 결국엔 이렇게 한마디를 덧붙인다. “만화중심이 어떻게 한국 만화의 영광을 되살려 나갈지 지켜봐 주십시오.” 만화 애호가들에 대한 관심의 당부이기도 했고, 자신에 대한 채찍질이기도 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입력시간 : 2003-10-05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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