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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6 11:45:20 | 수정시간 : 2003.10.06 11:45:20
  • 성문화의 화려한 외출
    동양성문화박물관, 아시아 각국의 성관련 유물 전시







    녹슨 양동이에서 스며 나오듯 내리던 비가 그치자 하늘은 모처럼 ‘가을 본색’을 드러낸다. 높고 파랗게. 어디론가 떠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날씨를 핑계 삼아 밖으로 나선다. 그렇지만 딱히 갈 곳이 마땅치 않다. 이럴 땐 옹달샘 표면을 부유(浮遊)하는 늦가을 낙엽처럼 이는 바람에 몸을 맡기는 수 밖에 없다. 가끔은 그게 최선의 선택이 되기도 하니까.



    서울 종로구 삼청동으로 가는 길엔 플라타너스가 도열하듯 늘어서 있다. 파란 하늘에 두 팔을 드리우고 선 자태가 매혹적이다. 일렁이는 바람에 온 몸을 부대끼며 애무하는 플라타너스의 몸짓에 묘한 연상이 인다.



    그 때 눈에 들어온 것은 ‘불끈 선’남성 심벌. 보통이 아니다. 굵기는 줄잡아 어른 몸통의 두 세배, 길이는 한 키를 넘는다. 하긴, 수직으로 서서 여체 대신 집채의 한 귀퉁이를 떠받치고 있는 물건이니, 그렇게 심한 사이즈는 아니다.



    저 남근이 ‘받들어 모시고’ 있는 집엔 무엇이 있을까? 누가 저 집을 찾을까? 몇 계단 디디고 올라서자 만나는 현관문. 들어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현관문에 장난기가 가득하다. 여러 사람의 손때 묻은 거무튀튀한 ‘목근’이 손잡이를 대신하고 있다. 부족한 성의식의 소치일까. 손잡이를 잡자 때아닌 오르가슴이 느껴질 지경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깔끔하게 차려 입은 큐레이터가 손님을 맞는다. 건물 밖에서 상상하던 것 보다 밝고 진지한 분위기다. 그래서 ‘포르노박물관’이나 ‘섹스박물관’과 같은 표현보다는 약간은 점잔을 빼는 듯한 ‘동양성문화박물관’(asiaerosmuseum.com)이란 말이 어울린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17-1번지. 경복궁 민속박물관 맞은 편에 있는 평범한 카페처럼 보이나 내부를 박물관 형태로 단장했다.




    민속신앙에 얽힌 성의 모습 한 눈에





    내부에는 성문화 박물관답게 다양한 성문화유물로 그득하다. 다양한 체위에 갖가지 성행위 장면을 묘사한 춘화와 노골적인 성행위 조각상, 남녀 모조 성기, 성희 묘사 노리개 등등. 개인 차는 있겠지만 어떤 나쁜 감정이나 욕정을 북돋울 만큼 화끈하지도, 그렇다고 지저분하지도 않다. 지하1층·지상3층, 총 150평 규모의 전시장에 모인 성 관련 유물은 모두 200여점. 이 유물들은 한국을 비롯해 중국·일본·네팔·티베트·인도 등 아시아 각국에서 수집한 것들이다.



    1층에는 한국의 민속신앙에 나타난 성 관련 유물과 티베트 불교·힌두교와 관련된 에로틱한 유물들이 모여 있다. 기원 전 112년에 사망한 중국의 왕 유승의 무덤에서 나왔다는 청동 모형 성기는 현대의 성기구 못지않게 정교하다.



    남녀의 적나라한 성행위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티베트 밀교의 19세기 ‘마하칼라 금동 합환상’은 포르노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금동 합환상은 ‘남성과 여성이 지혜와 자비를 서로 조화시켜야만 완전해진다’ 는 관념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후텁지근한 실내 공기 때문인지 연방 부채질을 해대는 60대 노신사의 관람 태도가 사뭇 진지하다. 한 작품 한 작품 가까이 다가가 뚫어지게 쳐다본 뒤 한 걸음 물러나 허리를 펴고 부채질 하기를 반복하는 그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 듯 하다. 조심스럽게 말을 걸자,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최근 한 사회인 클럽에서 여자 친구를 만났는데, 도저히 안(?)돼서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이미 비뇨기과에 가서 남성 호르몬 주사도 맞고, 정력제도 복용했지만 다 소용이 없었다. 의사가 색다른 자극이 필요하니 한번 찾아가보라고 했다.”



    그의 표정은 영화 ‘죽어도 좋아’에서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살아가야 할 새로운 이유’를 이제야 찾은 듯 밝다. 생기가 넘친다. 그리곤 덧붙여 조심스레 충고했다. “한 사람과 평생토록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은, 다시 말해 한 사람만을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정치 권력이 영원할 수 있다고 믿는 만큼이나 억지이고 환상이다. ‘한 사랑’에 얽매이질 말라.” 결론은 그게 건강하게 장수하는 비결이라니 믿어야 할지, 믿지 말아야 할지….




    30~40대가 주 관람층, 커플도 많아





    2층엔 다정하게 팔짱을 낀 커플이 춘화들 속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22세의 여성에게는 이른 감이 없지는 않지만, 34세의 남성이라면 결혼을 염두에 두었을 법도 한데, 결혼할 사이는 아니고 단지 호기심에 이곳을 찾았다는 두 사람은 띠 동갑 커플이다.



    부부나 결혼을 약속한 커플들만 이런 곳을 찾을 수 있다는 뉘앙스가 다분히 실린, ‘결혼할 사이냐’는 질문에 ‘결혼을 약속한 커플만 이런 데 올 수 있나요?’라고 되묻는 듯한 표정이 여성의 얼굴에 떠올랐다.



    ‘결혼은 미친 짓 아녜요?’라며 비아냥거리는 것 같기도 하다. 쓸데 없는 질문이 두 사람의 심사를 뒤집어놓았는지, 더욱 밀착하는 띠 동갑 커플 앞에는 실제보다 엄청나게 큰 남성을 지닌 고대 일본인들이 한창 쾌락에 빠져 있다.



    2층에는 한국·중국·일본의 춘화(春畵)와 춘의(春意) 등을 전시 중이다. 남녀가 뒤엉켜 있는 모습을 세밀히 그린 성묘사가 1층 전시실보다 한층 더 노골적이다. 엽전 모양에 다양한 체위의 성행위 모습을 새긴 조선시대의 별전도 전시돼 있다. 재료의 다양성도 놀랍다. 종이뿐 아니라 도자기, 상아, 뼈 등을 사용해 만든 것도 있다.



    “호기심에 와 봤는데 생각보다 진지한 분위기네요. 그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기상천외하고 다양한 모양의 전시품들이 재미 있는데요.”직장 동료들과 부근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박물관을 찾았다는 이모(46)씨는 성행위 모습을 도자기로 빚은 춘의 앞에서 한동안 발걸음을 멈췄다. 다양한 재료로 만든 춘의는 대상의 사실성보다는 기지와 해학이 넘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5월 이 박물관을 개관한 김영수 관장은 “주요 고객은 30~0대 입니다. 주로 커플 형태로 찾아오는데, 관람 자세가 진지하지요. 무슨 섹스나 포르노, 이런 생각을 갖고 오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의 성문화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면서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는 분들이 많습니다”고 말했다.



    정민승ㆍ인턴기자


    입력시간 : 2003-10-0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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