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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6 14:12:05 | 수정시간 : 2003.10.06 14:12:05
  • 세상 속으로… 화려한 컴백
    펄 시스터즈 배인순, 다시 시작하는 노래인생







    "나머지 생은 좋은 일을 하고 살고 싶어요. 초보 사업가의 새 출발을 지켜봐 주세요." 펄시스터즈의 리더였다, 전 동아그룹 회장 최원석 회장과의 이혼 후 베일에 가려있던 배인순씨가 6년만에 사업가로 변신해 돌아왔다.



    1998년 떠들썩 했던 이혼 후 은둔에 가까운 삶을 살아온 그는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굳게 닫아 놓았던 삶의 빗장을 스스로 열어 젖혔다.



    바로 강남구 논현동의고(古) 가구점 겸 카페 'Date'의 CEO가 그의 새로운 직함.



    1층에 위치한 카페 뿐 아니라 2층에 타이식 샥스핀 전문요리점 '챠우만', 지하에는 라이브 카페까지 함께 열었다. "아직 가수 활도을 재개한 것은 아니고 일주일에 한두번 제 무대에서만 '커피 한잔'등 옛날 히트곡과 아름다운 외국곡을 불러볼 생각입니다."



    그 전초전인가. 지난 18일 35년만에 KBS 2TV방송 아침 토크프로 '행복채널'에 출연, '커피 한잔', '님아'를 들려주었다. 게다가 79년 동생 배인숙이 불러 히트했고 최근 MBC드라마 '앞집여자'배경곡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누구라도 그러하듯이'를 부르자 방청석에서는 환호가 터졌다.



    또 펄시스터즈 데뷔시절 이야기를 비롯해 결혼, 이혼 후 심경 등을 비교적 솔직하게 털어 놓아 눈물샘을 자극했다.




    나이 잊은 아름다움





    여러 차례 날짜와 시간을 거듭 조정한 끝에 어렵게 만난 배인순씨는 5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외부 접촉을 피하고 살았던 오랜 습성 탓인지 경계의 빛이 역력했다. 사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할때는 시종 심각한 모습을 드러냈던 그녀는 음악이야기를 꺼내자 비로소 함박웃음을 터트리며 즐거워 했다.



    한편의 드라마 속 비련의 주인공을 연상케 하는 고통스런 인생 역정을 지나온 50대의 그에게서는 소녀처럼 해맑고 의욕 넘치는 향기가 풍겨왔다. 고통을 즐거움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 바로 음악의 마력이 아닐까.



    그는 얼마 전 음악 스승이었던 신중현을 찾아갔다. "다시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했죠. 하지만 반대하셨어요. 펄시스터즈는 가요계에 한 획을 그은 중요한 그룹인데 어설프게 다시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그 이미지를 지키는 것이 나을 거라는 충고였어요."



    하지만 그가 라이브 무대까지 꾸며놓은 것은 1976년 최원석 동아건설 회장과의 결혼이후 오랜 기간 갈증을 느껴 온 노래와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인생의 깊이를 담고있는 멜로디가 좋은 작곡가의 곡을 받을 기회가 되면 음반도 내고 싶다. 인터뷰 증 들려 준 그녀의 노래는 예전 같이 파워 넘치는 창법은 아니지만 여전히 녹슬지 않은 부드러운 음색을 지니고 있었다.



    월남 파병 문제로 온 나라가 우울했던 60년대 말. 혜성처럼 나타난 자매듀엣 펄시스터즈는 166cm가 넘는 키에 균형 잡힌 몸매, 예쁜 용모, 호소력 짙은 가창력을 뽐내며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또한 여대생 가수라는 청순한 이미지에 구김살 없이 명랑한 성격이었던 배인순, 인숙 자매의 등장으로 가요계에서는 체질 개선의 바람이 닥쳤다. 바로 본격 비디오 시대가 화려한 서막이 올린 것이다.



    펄 자매는 67년, 미 8군에서 개최한 보컬그룹 오디션에 구경갔다가 얼떨결에 참가한 테스트에 합격, 베거스 버라이어티쇼에 발탁되며 가수의 길로 들어섰다. 68년1월, 첫 무대는 동양TV의 '쇼쇼쇼'. 이후 카지노의 대부로 유명한 전락원 사장의 눈에 들어 워커힐 쇼단의 일원으로 촉망받는 신인으로 성장했다.



    음악 스승은 록의 대부 신중현. 당신 베트남으로 떠날 결심을 하고 있던 신중현은 새롭게 작곡한 '님아','떠나야 할 그사람','커피 한잔'등 6곡을 펄 시스터즈에게 주며 창법을 지도했다.



    68년 데뷔음반이 세상에 나오자 난리가 났다. 직설적인 표현의 노랫말에 참전문제로 우울했던 젊은이들은 열광했고 기성 세대는 "이게 무슨 우리 노래냐, 말세가 왔다"며 혀를 차는 등 상반된 평가를 낳으며 새 바람을 일으켰다. 데뷔음반은 오디오 보급이 미미했던 당시 형편을 감안한다면 믿기 힘든 100만장 판매고를 올리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젊은 남자들은 펄 자매의 매력에 흠뻑 빠져 애간장을 태웠다.



    69년12월 MBC '10대가수 청백전'은 펄시스터즈 노래 인생에서 절정의 순간이었다. 가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최고의 영예인 가수왕 등극은 놀라운 사건이었다. 정식 데뷔 1년 남짓 만에 최정상에 군림한 가수란 유례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무대가 우리 노래랑 맞지 않으면 안 불렀어요. 당시 하나님 같은 PD와 싸웠던 가수는 우리 뿐이었지요." 71년 여름 허벅지가 드러나는 요염한 핫 팬츠를 처음으로 선보이며 남성 팬들의 애간장ㅇ르 녹였다. 펄 자매는 온 나라의 패션을 주도했을 정도였다.



    100번째 취입곡인 이봉조의 사랑의 교실. 입상은 못했지만 동경국제가요제 본선에 진출하는 영광을 안기며 일본 지출의 교두보를 마련해 주었다. 이후 펄 자매는 캐나다와 미국 진출을 시도했지만 76년 10월 배인순씨가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과 깜짝 결혼식을 올리며 펄시스터즈는 자동 해체되었다.




    화려함 뒤의 쓸쓸함









    배인순씨는 지금 혼자 살고 있다. 데리고 있던 막내아들까지 1년 전 최회장에게 보냈다. 인기 가수에서 재벌 그룹 회장 부인으로 그의 삶은 화려함으로 가득 차 보였다.



    하지만 이혼과 함께 최 회장과 미모의 아나운서 출신 최은영씨의 재혼까지 지켜보는 것은 그녀의 인생에서 처음 겪는 좌절이었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숨어 지내고 싶었어요. 이젠 다 잊어야죠. 언제까지 숨어 지내겠어요.?"



    그 동안 무수한 소문과 기사가 쏟아질때. 특히 금년 6월 장남의 결혼식 즈음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아픔을 겪어야 했다. "아들 결혼식에 참석 못하는 심정은 이혼할 때처럼 뼛속으로 파고 드는 고통이었습니다." 이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파경설과 최 회장과의 이혼 소송으로 세상일 떠들썩했지만 그는 조용히 합의 이혼을 택했다.



    "아이들을 위해 희생한 거죠. 법정에까지 가서 우리 부부의 불편하고 창피한 일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면서 또 한번 상처주기는 싫었어요."



    세간에는 그가 이혼하면서 거액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놀랄 정도로 적은 돈이에요. 그마저도 돈 관리 맡은 사람이 사기를 치는 바람에 대부분 날렸어요." 불행이 이어지면서 그녀는 수면제를 먹어도 잠을 못 잘 만큼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렸다 .그 바람에 한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또한 97년 5월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던 차량 접촉 사고도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외간 남자와 동승, 대낮 음주 운전사고를 벌였다'는 보도는 사실 여부를 떠나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2002년11월 이 사건이 무고로 밝혀지면서 세간의 오해는 벗었지만 그녀는 자살 충동을 겪을 만큼 큰 상처를 입었다.



    "재벌이 사는데 편리함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행복을 주지는 못했어요. 다 허세입니다. 그래서 다 벗어 던진 지금이 오히려 홀가분해요. 중년층이 모여 편안히 즐기는 장소로 카페를 꾸미고 싶어요."



    막 사업의 길로 접어든 그는 자신의 소박한 꿈을 이루는데 최선을 다해 새 일터를 가꿔 나갈 생각이다. 화려했지만 고통스러웠던 지난 인생을 잊고 소박한 꿈을 위해 순수했던 소녀시절로 돌아가려 한다. 사업의 성공으로 돈과 명예를 되찾겠다는 야망보다는 불우한 이웃을 돌아 보고도 싶다.



    여기에 가능하다면, 자신처럼 고통과 한을 겪는 중년의 마음을 달래 주는 멋진 가수가 되고픈 소녀 같은 꿈이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규성 가요 칼럼니스트 kschoi@hk.co.kr


    입력시간 : 2003-10-06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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