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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0.07 14:16:53 | 수정시간 : 2003.10.07 14:16:53
  • 걸쭉한 사투리가 흥행의 절반
    대중문화의 중요한 흥행코드로 등장한 사투리, 희화화 경향도





    “고저 닥치고 공부나 하시라요”(영화 ‘남남북녀’) “빨리 거시기 해 불자” “계백이 갸가 무섭데이”(영화 ‘황산벌’) “빨리 하란 말이유”(드라마 ‘명랑소녀 성공기’) “합니데이. 했다아이 함메”(강산에 노래 ‘명태’)

    대중문화에 사투리 마케팅 전쟁이 일고 있다. 조연이나 단역, 특히 삼류인생을 그리는 표현적 상징이자, 표준어의 강력한 힘에 몰려 변방의 언어쯤으로 인식되던 사투리를 걸쭉하게 구사하는 주연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하고 있다. 좀처럼 사투리 사용을 보기 힘든 사극을 비롯한 각종 드라마에서도 구수한 지방 사투리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연기자가 스타로 부상하고 있다.

    심지어 사투리 노랫말까지 등장해 사투리는 이제 대중문화의 주요한 코드이자 확고한 흥행 공식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개봉을 앞둔 영화 ‘황산벌’에선 주연인 박중훈이 백제의 계백장군으로 나와 전라도 사투리로, 정진영은 신라의 김유신역으로 경상도 사투리로, 그리고 이원종이 고구려의 연개소문으로 나와 평안도 사투리로 영화를 이끌어 간다. 그야말로 대본이 모두 사투리 대사로만 처리된 진기한(?) 영화다.

    영화 ‘남남북녀’에서는 여자 주연을 맡은 김사랑이 북한 여대생역으로 나와 북한 사투리를 구사한다. 이뿐인가. 목포 등지에서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차인표, 조재현 주연의 영화 ‘목포는 항구다’ 에선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 대사가 종횡무진 스크린을 가로지른다.


    영화ㆍTV 드라마 사투리 열풍



    안방 극장 역시 사투리 열풍이 휘몰아치기는 마찬가지. 궁중어투로 일관하는 사극에서 사투리의 잦은 사용은 금기시됐으나 ‘다모’에서의 이문식이 지역 주민조차도 혀를 내두를 만큼 원숙한 전라도 사투리 사용으로 주연 이서진 하지원에 버금가는 인기를 얻었다.

    드라마에서 사투리 사용은 주로 가정부, 깡패, 조폭 등 조연이나 단역들이 구사하는 언어였으나 ‘명랑소녀 성공기’에선 주연으로 나선 장나라가 극전개 내내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했으며 ‘위풍당당 그녀’에선 주연인 배두나가 경상도 사투리로 대사를 했다.

    비교적 다른 분야에 비해 웃음의 유발 기제로 사투리를 많이 사용했던 코미디에서도 요즘 사투리의 위세는 대단하다.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며 유행어가 돼버린 “내 아를 낳아도”의 진원지 ‘개그 콘서트’에선 코너 ‘생활 사투리’를 통해 표준말과 전라, 경상 사투리를 유머스럽게 소개해 선풍을 일으켰고 ‘폭소클럽’에선 강원도 사투리가 소개되고 있다.

    시트콤 ‘달려라 울 엄마’에선 ‘사투리 삼자매’로 통칭되는 오세정, 정주희, 김말숙이 경상, 전라, 강원지역을 대표하며 각 지역 사투리로 연기를 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또한 각종 오락 프로그램에서 방송위원회의 지적과 시청자 단체의 줄기찬 비판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개그맨 김제동과 강호동은 아이러니하게 요즘 최고 인기MC로서 각광받고 있다. 방송의 사투리 붐은 올해 EBS어린이 대상의 극본공모에도 나타났다.

    EBS가 9월 18일 발표한 입선작 중 경기 김포 고촌초등학교 6년생 김효선이 쓴 ‘옆집 똥고집 아저씨’에는 “좋아하는 이 생겼노” “기현이 야만 밥 잘 먹으면 끝 아이가” 등 경상 사투리의 표현들로 가득 차있다.

    노래도 예외는 아니다. 강산에가 지난해 발표한 5집 앨범 ‘강영걸’중 ‘명태’ 라는 노래에는 함경도 사투리가 랩으로 사용됐고 ‘와 그라노’는 경상도 사투리 노랫말이다. 지난 추석 기간 방송된 KBS ‘한가위 스타커플 총집합’에선 가수 남진 등이 나와 노랫말을 사투리로 바꿔 불러 시청자들에게 관심을 끌었다.

    또한 고속도로 휴게실 등에선 기존 노래를 사투리 버전으로 바꿔 불러 테이프로 내놓은 것들이 사람들의 호응 속에 판매호조를 보이고 있다. 이밖에 사투리를 보급하고 장려하는 인터넷 사이트까지 생겨났는가 하면 사투리 동호회 성격의 까페가 수백 개에 달한다.


    지역문화 빠진 '무늬만 사투리'



    이처럼 대중문화에서 사투리가 예전의 구색 맞추기나 재미를 위해 양념같이 구사되던 부차적인 차원을 넘어서 본류를 이루며 흥행의 대단한 코드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과연 지금 일고 있는 사투리의 붐의 문제는 없는 것일까.

    우리의 언어 생활과 언어 행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대중매체를 오랫동안 지배한 것은 표준어였다. 표준어는 서울말을 기준으로 하는 거였고 장기간 지속된 표준어의 획일화 정책은 언어의 다양성 상실로 이어졌고 이 같은 현상은 대중매체의 발달과 더불어 가속화됐다.

    하지만 사투리는 우리가 살던 예전의 방식과 지방의 특성이 살아 있는 언어로 표준어와 병행해 우리의 언어를 풍부하게 하는 보고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미국 같은 나라는 사투리에 해당되는 흑인 영어를 우리와 달리 폄하하지 않고 제 2의 영어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중심의 표준어의 지배력이 무섭게 그리고 확고하게 자리잡으면서 표준어 이외의 사투리를 구사하는 행태나 사람들은 촌스럽고 무식하며 그리고 비주류로 간주되는 인식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의식과 사회전반에 깊은 똬리를 틀었다. 표준어의 일방적인 지배 논리는 지방어를 금기시하는 분위기를 조성했고 결국 지방을 서울화하자는 논리마저 은연중에 유포됐다. 이때부터 대중문화 속에서 사용되는 사투리는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간에 특정 지역과 특정 직업을 천시하는 기제로 활용됐다.

    표준어의 획일화에 균열이 간 것은 표준어의 보루였던 방송에서 신세대를 중심으로 사투리가 당당하게 사용된 때문. 여기에다 인터넷의 도입으로 표준어 가 중심이 된 언어의 탈문법화가 시도되고, 채팅과 휴대폰의 문자 메시지를 통해 구체적으로 그리고 광범위하게 드러나면서 청소년들만의 방언이 하나의 언어체계로 구축됨과 동시에 지역 사투리 역시 부상하게 됐다.

    지역주민에게 생활언어로서의 의미를 갖는 사투리는 젊은이들에게는 표준어로 지배되는 획일적인 서울문화에 대한 반발과 이에 대한 낯설음에서 오는 신선감 그리고 재미로 작용하면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형성하는 새로운 언어로 각광받게 된 것이다.

    또한 지방분권화의 영향과 점차 강해지고 있는 탈권위, 탈서울의 경향으로 지역 문화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자연스럽게 사투리 사용이 급증하게 됐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문화산업이 틈새시장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사투리가 매력적인 웃음과 개성의 아이콘으로 부상하는 가운데 사투리를 구사한 영화 ‘친구’ ‘가문의 영광’ , 드라마 ‘명랑소녀 성공기’ ‘피아노’ 등의 대단한 성공이 곁들여지면서 대중문화 영역에서 분야에 상관없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사투리 마케팅에 나선 것이다.


    특정지역ㆍ직업 폄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이러한 대중문화에서 일고 있는 사투리 이상과열 붐은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 언어는 삶과 생활 정신이 농축된 결정체다. 사투리에는 각 지역의 특성과 주민들의 생활과 정신이 깃들어 있다.

    문제는 현재 영화, 드라마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 사투리는 언어 속에 녹아있는 정신이나 문화는 간 데 없고 단순히 웃음을 유발하는 말하자면 ‘무늬만 사투리’인 것이다. 대중문화에서 구사하고 있는 사투리는 표준어에 밀려 사라졌던 언어를 복원시키는 기제도 아니며 언어의 지평을 확장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투리의 희화화만을 조장해 사투리가 갖는 의미를 왜곡하고 협소하게 만드는 경향이 농후하다.

    또한 대중문화에서 구사되는 사투리는 여전히 특정 지역과 특정 직업을 폄하하는 이데올로기의 선봉으로서 잘못된 고정관념을 개선하기는커녕 심화시키는 성격이 강하다.

    이밖에 공식적인 언어(표준어)를 사용해야 하는 대중매체의 장르나 분야에서조차도 무분별한 사투리의 남용으로 장기간 많은 노력을 기울여온 바른 언어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방송 등 대중매체에서 과도한 그리고 잘못된 사투리의 무분별한 사용은 곧바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언어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올바른 언어체계를 파괴시키고 있다.

    언어는 사회와 그 구성원의 역학관계에 따라 새로 생겨나고 성장하며 사멸한다. 이러한 언어의 변화는 철저히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인식이 공감한다는 전제하에 전개되야 한다. 돈을 버는 일이라면 물불을 안 가리는 요즘 대중문화 종사자들은 이제 사투리의 무늬만 차용할 것이 아니라 그 사투리에 배어 있는 의미와 지역의 정신 복원에 눈을 돌려야한다. 그것이 대중문화 종사자의 존립 의미이고 대중에 대한 예의이니까.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knbae24@hanmail.net


    입력시간 : 2003-10-07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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