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아빠 은퇴까지 함깨 노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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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1.13 15:01:17 | 수정시간 : 2003.11.13 15:01:17
  • "아빠 은퇴까지 함깨 노래할 것"
    최초의 부녀 포크듀엣 탄생
    라나에로스포 한민, 13번째 파트너로 친딸 박윤정과 함께 무대에






    국내 최초로 부녀 포크 듀엣이 탄생했다. 주인공은 1970년에 결성되어 33년 동안 최 장수 혼성 포크듀엣으로 군림하고 있는 라나에로스포(개구리와 두꺼비라는 뜻의 이태리어).

    오리지널 멤버는 한민과 은희였다. 흥미로운 것은 지난 33년 간 교체된 이 혼성 듀엣의 여성 파트너만도 10명이 넘는다는 사실. 2년 전 12번째 파트너와 결별한 한민은 최근 새로운 여성 파트너를 맞이했다. 13번째의 파트너는 다름 아닌 친딸인 박윤정씨다.

    리더 한민(본명 박윤기)씨는 지난 30여 년 동안 ‘여복 터진 남자 가수’로 참새들의 입방아와 뭇남성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아 왔다. 1970년 결성 때부터 2003년 현재까지 확인된 여성 파트너 만 해도 은희, 최안순, 오정선, 강인원 등 12명이나 된다. "남들은 여복이 많다고 부러워했지만 당사자인 나는 파트너 교체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그의 마지막 소망은 은퇴까지 함께 할 수 있는 파트너 찾기였다.


    "은퇴까지 함께 할 파트너"



    그의 사연 많은 파트너 교체 인생을 옆에서 보아 왔던 친딸 박윤정씨가 안타까운 마음에 용기를 냈다. 윤정씨는 사실 단국대학교 기악과에서 거문고를 전공한 국악도 출신. 대학 시절 중앙국악관현악단에서 활동하다 현재는 강동구립 예술관현악단의 단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아빠의 마지막 파트너가 되어 은퇴까지 지켜드리고 싶어요. 가수가 된 사실보다는 아빠와 함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해요"

    리더 한민은 단국고 1학년 때 처음 기타를 배워 군복무를 마친 68년, 종로 세기음악학원에서 기타강사로 사회에 첫발을 디뎠다. '커플즈'라는 듀엣으로 음악 활동을 하려 여자 파트너를 찾던 중 같은 음악학원 올갠 선생인 작곡가 김학송의 소개로 하사관 출신 김은희를 만나 혼성듀엣 '라나에로스포'를 결성했다. 결성 6개월 후인 71년 1월, 데뷔 음반을 발표했을 때 첫 여성 파트너 김은희는 이미 미 8군을 거쳐 주목받는 솔로 포크 가수로 독립을 해 있었다.

    두 사람의 데뷔 곡 '사랑해'는 지금도 동창회나 석별의 모임에서 서로를 단합시키는 불멸의 연가로 애창되며 국민 가요가 되었다. 거기에는 역사적인 사연이 있다. 1972년 8월, 평양에서 개최된 최초의 남북적십자 회담 때 이범석 남측 수석 대표와 김태희 북측 대표단장이 손을 맞잡고 '사랑해'를 부르는 진풍경이 벌어졌던 것. 남북 대표가 손을 잡고 합창한 최초의 노래가 '아리랑'이나 '우리의 소원'이 아닌 '사랑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시 큰 화제가 되었다.

    그렇게 주목을 받게 된 라나에로스포의 두 번째 파트너는 2개월도 못 넘기고 독립해 나간 숙명여대 작곡과 출신 장여정. 세 번 째는 예그린 합창단 출신 최안순으로 2집 취입 후 6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솔로로 독립한 최안순은 '산까치야'를 히트시키며 은희에 버금가는 인기를 모았었다.

    네 번 째는 서울합창단에서 소프라노파트를 맡았던 이경란. “두렵지만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인사만 남기고 사라졌다. 5대는 미모의 동아방송 성우였던 오정선. 역대 여성파트너 중 1년 6개월 간 함께 활동한 최장수 파트너였다. 오정선은 “노래를 하면 할수록 실력이 모자라서…혼성 듀오는 결혼할 사이면 좋을 것 같다”는 아리송한 말을 남기고 팀을 떠났다.

    6대는 TV드라마 '꿈나무'의 주제가를 불렀던 유리씨스터즈의 동생 강인원. 이때가 1973년 말. 한민은 그룹 피노키오의 리드 기타 권오진 등을 영입하며 5인조 포크 록 그룹 Young & 라나에로스포를 결성해 음악적 변신을 시도하기도 했다. 7대는 허니비 씨스터즈의 리더였던 조성자.

    8대는 '여고시절'등 6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출신 이애순이었다. 음색이 섹시했던 이애순과는 ‘고독’ 이란 타이틀의 앨범을 발표하며 남대문 프린스 살롱을 주무대로 활동했지만 살롱 앞 다방 주인과 눈이 맞아 잠적해 버렸다. 9대는 교회 성가대원인 유경숙. 유경숙은 신장이 162cm인 한민보다 처음으로 작은 157cm의 파트너였다. '자신보다 작은 여자와 팀을 해야 오래 간다'는 점괘가 나온 때문이었다.

    10대는 한민 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한 월남전 고엽제 후유증을 주제로 한 소설을 발간하기도 했던 안혜숙. 11대는 하사와 병장 이동근의 소개로 만난 영등포여고 출신 윤수정. 80년 트로트 가수로 변신한 한민이 음악 디렉터 공부를 위해 일본을 다녀온 뒤 2001년 초 안양의 라이브업소에서 만난 파트너가 12대 김희진.

    이들은 독집 CD를 발표하며 라나에로스포의 재기를 과시했었다. 하지만 1년을 넘지 못했다. 한민은 “함께 음악을 할 만하면 솔로로 나가버려 괴로웠다”며 “특히 혼성 듀엣이라 결별 이유를 애정 문제로 바라보는 눈길은 더욱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음악적으로는 은희와 최안순을 최고로 평가했다.


    너무 힘들어 엄마 붙들고 울기도



    윤정씨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파트너 언니들하고 노래 연습하는 것을 보고 자랐다. 그래서 쉽게 생각하고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막상 해 보니 힘들고 겁도 난다" 자상한 아버지도 평소와는 달리 연습할 때 너무 엄하게 대해 속이 상했던 것이다. "엄마를 붙잡고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윤정씨는 자신의 끼를 보여줄 파워풀한 노래가 아닌 조용한 포크 음악이 사실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옛 노래들인 국악과 포크 두 음악의 접목을 시도해 함께 지키고픈 꿈을 꾸며 열심히 기타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어요. 딸아이가 내 마지막 파트너가 될 줄을 꿈에도 몰랐습니다. 처음에는 딸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 안쓰럽고 기분이 묘했지만 1년 정도 지나보니 진짜 파트너로 느껴진다"고 대견스러워 한다. 그동안 언론에 적극적으로 딸과의 활동을 공개하지 않았던 것은 애착을 가지고 활동하는 거문고 연주활동 또한 지켜주기 위해서였다.

    최초의 부녀 포크 듀엣으로 탄생한 라나에로스포의 첫 무대는 작년 어린이대공원 야간개장 오픈식이었다. 이 후 불우이웃 돕기 행사와 공연을 위주로 활동을 해 오고 있다. 내년부터는 전국 투어를 계획하고 있다. 한민은 "이제는 돈과 관련된 밤무대 음악 활동보다는 본연의 포크 음악으로 불우한 이웃들을 돕는데 보람을 찾고 있다"며 3년쯤 후에 은퇴할 뜻을 내비쳤다.

    그의 소망은 딸 은영씨가 좋은 두꺼비(남자파트너)를 만나 대를 이어 라나에로스포를 이어주는 것이다. "아버님의 뜻을 받들 생각이에요. 좋은 파트너를 만나 새로운 이미지의 듀엣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이전에도 '타타타'로 유명한 가수 김국환이 아들과 혼성 포크 듀엣 '바블껌' 출신의 이규대가 딸 예솔이와 함께 단발적으로 음반을 발표한 적은 있었다. 함께 노래를 하는 정식 팀이라기보다는 어린이의 목소리를 이용한 프로젝트성 활동이었다. 만약 박윤정씨가 대를 이어 라나에로스포를 이끌어 가는 일이 실현된다면 국내 가요사상 초유의 ‘대를 이은 그룹’이 될 전망이다.



    글. 사진 최규성차장 kschoi@hk.co.kr


    입력시간 : 2003-11-1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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