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시네마타운] 미셸 공드리 감독 '수면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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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7.01.09 13:08:33 | 수정시간 : 2007.01.09 13:08:33
  • [시네마타운] 미셸 공드리 감독 '수면의 과학'
    분열증 연인의 로맨스 '완벽한 동화' 꿈꾸다









    ‘꿈은 너의 운명이다(Dream is destiny)’라는 문구는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의 <웨이킹 라이프>에서 주인공 소년이 맞닥뜨린 자신의 삶에 관한 예언이다. 어쩌면 <웨이킹 라이프>의 소년보다 이 예언이 더욱 잘 맞아떨어지는 인물이 바로 <수면의 과학>의 주인공 스테판이 아닌가 싶다. 미셸 공드리의 세 번째 장편영화 <수면의 과학>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점은, <휴먼 네이처>와 <이터널 선샤인>이라는 두 편의 전작들과 달리 스스로 각본을 썼다는 사실이다. <휴먼 네이처>, <이터널 선샤인>에서 걸출한 괴짜 작가 찰리 카우프만과 절세 호흡을 자랑했던 공드리는 이 영화에서 카우프만 없는 자신만의 세계를 처음으로 펼쳐보였다.

    분열증 연인의 로맨스

    여섯 살 때부터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던 스페인 청년 스테판(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아버지가 암으로 사망한 뒤 어머니(미우미우)를 찾아 혈혈단신 파리로 온다. 어머니의 배려로 직장도 얻었지만 그는 발명가이자 화가인 그의 취향과 전혀 상관없는 달력 회사에서 기계적인 노동에 종사한다. 어머니와 함께 살던 옛집에 몸을 의탁한 그는 옆집에 새로 이사온 소녀 스테파니(샤를로트 갱스부르)를 만난다.

    처음에는 그녀의 친구 조이에게 마음이 끌렸지만, 섬세하고 여린 스테파니의 호의에 스테판 역시 조금씩 마음을 열고,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그의 머리 속은 그녀로 인해 한층 혼란스러워진다. 혼란스럽기로 말하자면 스테파니도 마찬가지이다. 스테판은 정신분열증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엉뚱한 행동과 말을 일삼아 그녀를 혼란에 빠트린다. 스테판과 스테파니의 로맨스는 이렇듯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친다. 과연 스테판과 스테파니는 정상적인 연인 관계로 살아갈 수 있을까?

    짧은 경력으로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오른 미셸 공드리의 영화는 천재적 이야기꾼인 찰리 카우프만과 따로 떨어져 생각할 수 없었다. 카우프만의 시나리오가 기존의 드라마 구조를 해치지 않는 선상에서 기발한 아이디어와 세계관을 구현해냈다고 한다면, <수면의 과학>은 카우프만이 전제했던 드라마 구조에 대한 강박을 벗어나는 영화다.

    스테판이 파리로 와서 직업을 구하고 스테파니를 처음 만나는 순간까지 드라마는 비교적 정상적으로 진행되지만, 그 이후 이야기는 이렇다 할 전개를 보여주지도, 절정의 순간을 통해 이야기적 쾌감을 주지도 않는다. 공드리는 스테판과 스테파니가 머무는 현실 세계, 스테판의 뇌 속 세계, 스테판의 꿈이라는 세 개의 시공간을 왔다갔다하며 스테판의 의식 구조를 파헤치는 데 전력을 기울인다.

    <수면의 과학>은 <휴먼 네이처>와 <이터널 선샤인>에서 등장했던 배우들 못지않은 매력적인 배우들의 연기가 볼 만한 영화다. <아모레스 페로스>, <이투마마>, <나쁜 교육>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통해 나이에 걸맞지 않은 폭 넓은 연기를 선보였던 스페인 출신 배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이 영화에서 과대망상광이라는 또 하나의 미지의 캐릭터에 도전한다. <귀여운 반항아>의 반항적인 소녀로 각인돼 있는 샤를로트 갱스부르 역시 여전히 신선한 매력을 지닌 여주인공 스테파니 역을 연기한다.

    파리를 무대로 진행되는 <수면의 과학>은 관광 엽서에 등장할 법한 낭만적인 파리의 풍경을 잡아내지는 않지만, 현대화된 대도시에서 볼 수 없는 아기자기하고 좁다란 파리의 골목과 옛 정취가 그대로 남아있는 낡은 집 등 파리라는 공간의 특징을 잘 집어내고 있다. 미셸 공드리는 스테판의 꿈을 표현하는 시퀀스들의 특수 효과를 전부 수공예로 보여주는 특별한 방법을 사용했다. 셀로판지로 만든 물, 색종이로 만든 도시의 풍경, 플라스틱으로 만든 거대한 모형 손 등 마치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시퀀스들의 매력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볼거리이다.

    퇴행과 판타지 사이에서 줄타기

    <수면의 과학>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주인공의 의식 세계에 치중하는 과정에서 인물들의 의식 바깥 세계에 대한 인식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주인공 이외의 다른 인물들은 마치 스테판의 꿈 속에서만 살아 숨쉬는 인형처럼 여겨지며, 스테판은 바깥의 어느 누구와도 진정으로 소통하지 못한다.

    샤를로트 갱스부르나 미우미우 같은 개성 넘치는 배우들이 등장함에도 그들이 명성에 걸맞는 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영화의 구조가 오로지 스테판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도록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관객들조차 꿈과 현실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몽상가 청년 스테판과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극중 인물과 동일한 심리 상태를 경험하게 만드는 이 같은 수법은 완전한 동화를 바라는 감독의 연출 의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 희생되는 것은 스테판의 현실을 이루는 다양한 존재들의 무게다.

    미셸 공드리는 찰리 카우프만이 숙지하고 있었던 관계의 문제, 냉혹한 현실에 맞닥뜨린 꿈꾸는 인간의 정신보다는 자신이 꿈꿔왔던 세계를 구현하는 데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따라서 <수면의 과학>은 스테판과 스테파니의 로맨스를 다루고 있다기보다는 스테판 혼자서 상상하는 연애담에 가깝다.

    혼자만의 상상이나 꿈을 영화 속에서 이미지로 발견하는 것은 물론 매혹적인 경험이다. 그러나 그것이 바깥과 전혀 소통하지 않는다면 퇴행 이상으로 이 영화를 봐주기는 힘들다. <수면의 과학>은 퇴행과 판타지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한다. 꿈을 꾸는 동시에 현실을 인식하는 것이 영화의 미덕이라면, <수면의 과학>은 너무 지나치게 한쪽으로 기운 나머지 다른 한쪽을 잃어버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입력시간 : 2007/01/09 13:09




    장병원 영화평론가 jangping@film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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