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시네마타운] 김기덕 감독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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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7.05.01 16:00:00 | 수정시간 : 2007.05.01 16:00:00
  • [시네마타운] 김기덕 감독 '숨'
    죽음과 절망의 끝에서 그들이 택한 욕망의 탈출구는?

    집행을 앞둔 사형수와 행복을 잃어버린 한 여자의 판타지







    김기덕 감독의 <숨>이 조용하게 개봉했다. 전작 <시간> 개봉 당시 한국 영화문화의 저열함을 지적하면서 거센 논쟁을 낳았던 ‘이슈메이커’ 김기덕이 ‘예술가’로 돌아온 것이다.

    <숨>은 놀라운 속도로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늘여나가고 있는 김기덕 감독의 열네 번째 장편영화다. 96년 <악어>로 데뷔한 그는 11년 동안 실로 숨가쁘게 달려왔다. 자신의 영화를 더 이상 한국에서 개봉하지 않겠다는 폭탄 선언과, 뒤이어 나온 사과인지 자탄인지 헤아리기 힘든 발언에 이르기까지 김기덕은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한국 내에서의 행보와 달리 국제영화제에서의 잇단 수상으로 해외에서 순조롭게 스타 예술가로 입지를 굳힌 그는 신작 <숨>으로 60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며 마침내 세계 3대 영화제 경쟁부문에 모두 진출한 한국 감독이 됐다.

    사형수에게 희망을

    <숨>은 2억5,000만원이라는, 한국의 영화 제작 현실로 봤을 때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초저예산으로 완성된 영화다.

    영화의 완성도나 예술성의 측면에서뿐 아니라 제작방식과 생존전략에서도 김기덕은 기왕의 한국영화가 가지 않는 새로운 길을 탐색하고 있는 중이다. <숨>은 김기덕의 영화 중에서도 간결하고 멜랑콜리한 기운을 전해주는 영화다.

    그의 영화에 늘 등장했던 원초적인 욕망과 비현실적인 설정은 여전하지만, 김기덕은 자기 판타지 안에 잠겨 있는 대신 그 판타지를 주재하는 ‘감독’으로서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사형 집행일을 얼마 앞두지 않은 사형수 장진(장첸)은 목을 찔러 자살을 기도한다. 연(지아)은 벌써 몇 번째 자살을 시도한 장진이 병원에 실려갔다는 뉴스를 유심히 지켜본다.

    그녀는 바람을 피는 남편(하정우)과 소원해진 채로 어린 딸에게 애정을 쏟고 있는 주부다. 연은 남편과 다투고 난 후 충동적으로 새벽길을 달려 장진을 찾아간다. 생면부지의 남자와 면회한 연은 죽음을 앞두고 있는 그에게 사계절을 선물하기로 마음먹는다.

    사계절에 맞는 의상과 소품을 가지고 감옥에 찾아가 면회실을 온통 그 계절에 맞게 꾸미고 그를 위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장진은 감옥 안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어린 죄수의 질투 어린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연과의 만남을 고대한다. 한편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장진에게 더 이상 연이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여느 김기덕 영화와 마찬가지로 <숨>의 이야기 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간결한 이야기 줄기만을 만들어 놓고 줄거리를 따라가는 것보다 특유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마음을 쏟는 김기덕의 연출방식은 이 영화에서도 이어진다.

    <숨>에서 가장 눈에 띠는 장면은 연이 장진을 위해 벌이는 퍼포먼스다. 그녀는 한겨울에 봄, 여름, 가을에 어울리는 계절복을 입고 찾아가 면회실을 계절 사진들로 가득 채운다. 봄꽃 사진으로 면회실 벽을 도배하고 봄 원피스를 입고 장진 앞에서 봄 노래를 부르는 연의 모습은 기괴하면서도 한편으로 사랑스럽다.

    <숨>은 이처럼 기이한 퍼포먼스를 영화 전반에 걸쳐 등장시키고 있는데, 죄수들이 벽에 그리는 그림, 음악을 작곡하고 조각품을 만드는 연의 남편은 흡사 정신 세계를 형태로 표현하는 예술가의 퍼포먼스를 연상시킨다.

    김기덕의 과거와 현재

    장진을 위한 연의 퍼포먼스가 흥미로운 것은 그 퍼포먼스를 지켜보고 주재하는 ‘시선’의 존재 때문이다.

    보는 자와 보이는 자가 서로를 의식하고 있는 교도소 면회실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교도소 보안과장을 연기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김기덕 감독 자신이다.

    감독이자 배우인 김기덕은 CCTV 화면을 통해 장진과 연을 바라보고 그들의 만남을 주재한다. 그리고 관객들은 연의 퍼포먼스를 바라보고 있는 보안과장의 실루엣을 본다.

    두 사람을 보는 김기덕의 시선과 그런 김기덕을 보는 관객의 시선이 중첩돼 있는 셈이다. 이러한 이중의 시선은 감독이 관객을 위해 마련해 놓은 의도적인 거리두기이자, 자신의 판타지에 대한 스스로의 거리두기로도 보인다.

    전작 <시간>에 이어 김기덕은 영화 속에 관찰자를 심어두었고, 자신이 그 전능한 관찰자로 등장하면서 판타지를 바라보는 초월적인 시선의 존재를 새겨넣고 있다.

    <숨>은 한편으로 김기덕의 과거와 현재를 볼 수 있는 가장 상징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시간>에 이어 <숨>에도 출연한 배우 하정우는 김기덕 영화의 새로운 페르소나로 볼 수 있을 만큼 일관된 캐릭터를 지니고 있다. 두 영화에서 공히 유약한 바람둥이 예술가를 연기하고 있는 그는 이제껏 김기덕 영화의 페르소나로 여겨져 온 하층 계급의 폐쇄적 인물을 대변하는 조재현과 보기 좋은 대조를 이룬다.

    <숨>의 주인공은 조재현 캐릭터의 연장선상에 있는 장첸과 지아이지만, 그 중심을 조금씩 흐트리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인물인 하정우의 존재감도 묵직하게 느껴진다. 김기덕은 장첸이 갇혀있는 교도소와 지아와 남편이 거주하는 예술적 분위기가 넘치는 헤이리 집을 동일한 비중으로 다룬다.

    숨막히는 질투와 죄의식의 공간인 두 곳에 갇혀 있는 인물들은 퍼포먼스를 통해 조금씩 잔인한 현실을 받아들인다. 언뜻 해피엔딩처럼 보이지만 이 영화의 끝은 세 남녀의 운명이 앞으로도 결코 변하지 않을 거라는 무거운 진실을 전해준다.

    김기덕 감독은 자신이 짊어진 고통스러운 현실의 무게를 덜어주는 것이 ‘예술의 힘’이라고 역설하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숨>은 김기덕의 현재를 비쳐주는 명징한 거울 같은 영화다.


    입력시간 : 2007/05/0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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