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시몽의 논술 가로지르기] 동물을 옹호한다!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플러스 네이버 북마크 싸이월드 공감 기사 구입 프린트 기사메일
입력시간 : 2007.08.13 15:05:43 | 수정시간 : 2007.08.13 15:06:52
  • [시몽의 논술 가로지르기] 동물을 옹호한다!


    지구촌의 다양한 문화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론 각 문화가 지닌 상대성에 유의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각 사회의 문화마다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것이지, 어떤 사회의 문화이든 무조건 옳다는 식의 극단적 주장은 아니다. 아무리 각 문화가 지닌 고유의 가치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존엄성과 같은 인류 보편적 가치 기준에 위배되는 행위는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

    -법문사, 『고등학교 사회․문화』

    문화의 반대 개념은 자연이다. 사람들이 거미줄을 보고 감탄을 하긴 하지만, 그걸 문화적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새들의 아름다운 지저귐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볼 때, 자연은 인간 밖에 있으며, 인간과는 구별되는 어떤 것인 반면, 문화란 자연에 직면한 인간이 자연과의 대결 속에서 만들어낸 모든 것을 의미한다.

    결국, 문화라는 말 속에는 이미 인간중심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문화는 인간의 전유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개미들의 버섯 재배는 본능에 따르는 자연적인 것이지만, 인간의 버섯 재배는 자연을 이용하는 문화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과서에 나오는 ‘문화상대주의’라는 앞에는 ‘인간’이라는 수식어가 빠져있다.

    인간은 동물들과 문화상대주의를 논하지 않는다. 교과서에 따른다면, 인육을 먹는 풍습은 그것이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 기준에 위배되기 때문에 문화상대주의가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동물의 고기’를 먹는 풍습에는 문화상대주의가 적용된다. 이에 따라 한국의 식견(食犬) 풍습은 문화상대주의적 입장에서 옹호될 수 있다.

    사람은 동물이 아니므로, 달리 말해 동물과는 구별되는 ‘존엄한 존재’이므로 인육을 먹어서는 절대로 안 되지만, 동물은 아무런 의심 없이 ‘일용할 양식’으로 취급된다. 삼겹살이나 갈비를 먹을 때,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우리가 고기를 먹을 때,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식당에서 우리가 대면하는 건 살아있을 때의 모습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고깃덩어리들이기 때문이다.

    고기를 먹을 때마다, 그 고기의 원래 주인이 도살당하는 장면을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태연히 고기를 씹기는 어려울 거다.

    이런 이유에서 고기를 파는 음식점에서 살아있을 때의 동물을 연상시키는 사진들을 찾아보기란 어렵다(만약 그런 음식점이 있다면 매상을 위해서 사진들을 치우는 게 좋을 거다).

    또한 오늘날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해서, 자신의 손으로 직접 동물을 도살하는 사람은 없다. 만약 육식을 위해, 직접 자신의 손으로 동물을 죽여야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육식을 포기할지도 모른다. 이는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는 않지만, 고기는 먹고 싶다는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조들은 ‘백정’이라는 ‘청부살해업자’들을 고용했다. 백정들이 받았던 천대는 그들이 생명을 탈취하는 전문가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백정이라고 하더라도 아무 감정 없이 도축하지는 않는다. 맹자의 생각대로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맹자는 살아있는 생명을 보면 그것이 죽는 것은 차마 볼 수 없기 때문에, 짐승이 도살당하면서 지르는 비명 소리만 들어도 그 고기를 차마 먹지 못 한다고 하면서, 측은지심을 인정(仁政)과 왕도정치의 근본이라고 보았다.

    동물을 학대하는 인간들에게 분노하는 것도, 동네를 배회하는 도둑고양이들을 위해 먹이를 던져주는 것도 모두 측은지심이 드러나는 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본성은 동물을 잔인하게 도살해서 요리해 먹는 쪽이 아니라 동물의 생명이라고 해도 소중히 생각하는 쪽으로 발달했다. 예전에 “인간이라고 잘난 척 마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썼듯 다른 존재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은 도덕심의 핵심이다. 포장된 고기를 요리해 먹는 것은 동물대량학살을 묵인하는 것이다.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고 해서, 도덕적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어떤 이들은 잡식성 동물인 인간이 다른 동물을 식용으로 먹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또 약육강식의 자연에서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동물을 포식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한 동물의 고기가 지금까지 인간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현대인들은 굳이 육식을 하지 않아도 필요한 영양분들을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다. 즉, 생존을 위한 육식이란 핑계에 불과하다. 육식은 다양한 영양 공급처를 획득하기 어려웠던 원시 시대의 유산이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해왔던 대로 하려는 게 인간의 습성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존재의 생명을 앗아가면서까지 유지해야할 습관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겠는가?

    피복으로 사용되는 동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굳이 동물의 가죽이나 털로 된 옷을 입지 않아도 겨울을 버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류 업체들은 모피 코트나 밍크 코트 한 벌을 만들기 위해 수십 마리의 동물을 아무렇지 않게 죽인다.

    이처럼 인간의 욕심을 위해, 동물들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의 기저에는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며, 인간을 위해 동물을 이용하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이런 생각이 극적으로 표현된 사건이 올해 5월 22일에 일어났다. 이천시 ‘군부대 이전반대 비상대책위원회’는 국방부 정문 앞에서 군부대 이전반대 규탄대회를 열면서 살아있는 아기 돼지의 사지를 밧줄로 찢어 죽이는 잔인한 짓을 저질렀다.

    이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비판했고, 죽은 돼지의 넋을 위로하는 천도제가 열리기도 했다. 아마도 그런 만행을 저질렀던 사람들은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거나, 느꼈다 하더라도 자신들의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돼지에게 “영광으로 알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한쪽에서는 동물들이 수난을 당하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동물이 상전 대접을 받으면서 살고 있다. 애완동물을 기르는 많은 사람들이 애완동물을 진짜 가족처럼 취급한다.

    그들은 인간보다도 더 인간적인 대우를 받는다. 특히 강아지들은 애완동물 중에서도 귀족계층에 속한다.

    유명 스타들은 자신의 애완견을 위해서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는다. 애완견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이 각광을 받고, 심지어는 결혼식도 성대하게 열린다. 아래 기사를 보자.

    마돈나의 호화 별장이 ‘군터 4세’에게 750만 달러(83억 4,000만원)에 팔렸다. 군터 4세는 아버지인 ‘군터 3세’로부터 거액을 물려받았다. 아버지 군터 3세는 지난 92년 사망한 독일의 카를로타 리벤슈타인 백작으로부터 무척이나 총애를 받아 무려 6,500만달러의 재산을 상속받았다.

    별 생각 없이 읽는다면 대부분 군터 4세가 인간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군터 4세는 개다. 이정도면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인간 사회의 계층 구조에 새로운 계층이 하나 끼어든 셈이다.

    이처럼 현재 인간 사회에서 동물의 지위는 극과 극에 처해 있다. 수많은 인간들이 굶어 죽고 있는데 개들이 사치를 누리는 것도 문제지만, 아무런 반성 없이 인간을 위해 동물들을 이용하는 것도 문제다.

    프랑스의 한 여배우가 한국의 보신탕 문화를 ‘야만적’이라고 비난했을 때, 개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을 포함한 많은 한국인들이 분기탱천했다.

    “너희는 말고기나 달팽이 고기도 먹으면서 왜 우리만 가지고 난리냐”는 한국인들의 생각은 문화상대주의적인 관점에선 타당하지만 여전히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개든 말이든 동물이기는 매한가지 아닌가?).

    개가 애완동물이기 때문에 먹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보신탕 반대론자들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개는 반려동물이며, 혐오식품이므로 먹어서는 안 되고, 돼지는 먹어도 된다는 발상은 인간의 종(種)차별주의를 드러낸다.

    인류는 인종차별, 성차별 등 인간 사회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차별들과 싸워왔다. 이제는 다른 종들에 대한 차별, 착취에도 신경을 써야할 때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부터 육식을 하더라도 우리의 ‘일용한 양식’이 되기 위해 도살당한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도록 노력해보자.

    ● 심원 약력






    - 1977년생

    - 서울대 종교학과 졸(2004년)

    - 서울대 대학원 언론정보학과 졸업(2006년)

    - 현 TOPIA논술아카데미 강사

    - TBS 교통방송 <윤은기의 굿모닝서울> 문화 평론 프로그램‘이반의반격’진행

    - EBS 손석춘의 <월드FM> 문화 평론 프로그램‘이반의 천변풍경’진행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입력시간 : 2007/08/13 15:05




    심원 TOPIA 논술 아카데미 선임연구원 i2u4us@naver.com

  • HOM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