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패션 일번지엔 진짜 멋쟁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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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7.10.30 11:52:08 | 수정시간 : 2007.10.30 11:53:29
  • 패션 일번지엔 진짜 멋쟁이가 없다
    [전세화 기자의 Fashion and the City] 압구정동은 연예인 패션 따라잡기 본거지
    트렌드는 다양, 독창성은 부족

    얼마 전 ‘패션 1번지’로 불리는 서울 압구정동 일대에서 야외 패션쇼와 연예인이 참여하는 트렌드 파티 등의 행사로 이뤄진 대규모 패션 축제가 열렸다.

    이 행사는 압구정동이 한국의 유행을 선도하는 패션 명소의 위상에 변함이 없음을 웅변하는 자리였다. 압구정동이 최고의 패션 명소인 이유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하고 자유로운 스타일이 압구정동 일대에서 발견되는 가장 큰 특징이다.

    앞이 트인 미니스커트 속에 반바지를 입거나 가슴이 깊숙이 패인 원피스를 입은 여성, 독특한 디자인의 멜빵바지에 하이힐을 신은 여성이 거리 곳곳에서 눈에 띈다. 압구정동에는 연예기획사가 많아 길거리 캐스팅을 꿈꾸는 연예인 지망생들이 거리를 누비는 것도 한 요인이라고 패션 관계자들은 말한다.

    압구정동 일대의 패션은 또한 유행의 첨단을 보여준다. 로데오 거리나 가로수길에 들어서면 인터넷쇼핑몰이나 잡지화보를 찍고 있는 모델들을 심심치 않게 구경할 수 있다. 이들이 입은 옷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여성들을 겨냥한 최신 스타일이다.

    혹간 보이는 모델 뿐만이 아니다. 압구정동 거리에서는 최신 유행 스타일이 늘 대세다.





    이곳은 트렌드를 선도하는 상점가도 형성돼 있다. 로데오 거리와 가로수길을 중심으로 한승주, 조성경, 우영미 등 국내 유명 디자이너 부띠끄가 즐비하다.

    특색 있는 디자인을 소량 생산하는 디자이너숍은 차별화 된 스타일을 추구하는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외국영화 속 무도회 장면에서나 봤던 롱 글로브, 레이스가 달린 롱부츠처럼 일반 상점에서 찾아보기 힘든 소품들도 많다.

    버블 스타일의 블라우스와 셔링이 많이 들어간 스커트 같은 공주 패션에서 최고급 명품 패션과 첨단의 트렌디한 패션, 일상적인 옷과 비일상적인 옷, 미국 스타일과 유럽스타일, 그리고 10대에서 직장인까지 각양각색의 트렌드가 공존하는 곳이 압구정동이다.

    압구정동 일대 쇼핑가는 디자이너숍은 물론 백화점과 프라다, 질샌더 등 명품관들 그리고 비교적 국내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외국명품수입 보세숍을 총 망라하고 있다.

    ‘라뚤’ 브랜드를 생산하는 디자인숍 ‘디자이너 조성경’의 이혜숙 홍보팀장은 “압구정동 패션의 힘은 다양성을 빼놓고는 논할 수 없다”며 “명동이나 홍대 등 서울의 다른 어떤 곳에서도 여기처럼 개성 넘치는 다양한 패션스타일이 모여 있는 곳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롭고, 유행을 선도하며, 독특하고 다양한 스타일이 있는 곳. 이것이 패션 1번지 압구정동의 현주소다. 이만하면 세계적인 수준의 패션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도 압구정동의 멋쟁이들을 보면 어쩐지 씁쓸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압구정동 패션에서 독창성과 주체성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압구정동이야말로 할리우드와 국내 연예인들의 스타일을 모방하는데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유행을 선도하는 곳이라고 하지만 압구정동 유행의 원동력은 할리우드나 국내 연예인들의 모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흔히 압구정동 패션을 가리켜 ‘연예인 패션’이라고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실제 이곳은 패션잡지나 인터넷에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연예인 패션 따라잡기’ 동호회나 연예인패션 쇼핑몰에서 연예인 스타일을 벤치마킹하는 현상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 로데오 거리에서 패션샵을 운영하는 상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하나 같이 “이곳은 연예인 패션의 축소판”이라고 말한다.

    디자이너숍들을 둘러봐도 독특한 디자인은 많지만 할리우드나 외국 스타일을 벤치마킹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몇 년 째 지속되는 ‘잇백(It Bagㆍ 스타들이 드는 명품가방 중 유행하는 것) 열풍’이나 미국 인기 시트콤 ‘섹스앤더시티’의 영향인 슈즈 붐 등이 이 지역의 유명인 따라하기 현상을 잘 말해준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듯한 자유롭고 과감한 패션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입은 사람에게서 자신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기 고유의 주체성이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연예인 스타일을 추종했기 때문일까. 자신감은 확실한 자기스타일을 가졌을 때 우러나온다. ‘튀는 옷=개성’은 결코 아닌 것이다.

    다양한 트렌드, 다양한 스타일의 패션이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나 이것 역시 진정한 개성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세계 트렌드는 다양하고 빠르게 변하고 있다. 루이뷔통, 이브생로랑, 바네사브루노 등 명품들도 개성 있고 쉽게 싫증을 느끼는 소비자 취향에 부응하기 위해 소수를 대상으로 개성 있는 디자인을 시즌마다 바꿔가며 내놓고 있다. 소수를 위한 ‘마이크로트렌드(micro-trend)’가 세계적인 추세다.

    힐러리 클린턴의 자문위원이자 사회조사분석가인 마크 펜은 그의 저서 ‘마이크로트렌드’에서 마이크로트렌드를 창조하는 것은 인터넷과 TV에서 다수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1% 미만의 인구라고 지적했다.

    결국 소수만이 누리는 개성 있는 스타일이라고 해도, 미디어에서 영향력 있는 1%, 즉 유명인의 스타일을 무의식적으로 따른다면 그것은 개성이 아니다.

    로데오 거리에서 만난 40대 초반의 한 여성은 “압구정동은 패션 리더들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마음 속의 열정(passion)을 발산하는 진정한 패션 리더는 없고 유명인의 스타일을 쫓아가기 바쁜 것 같다”고 말했다.

    주류에 반기를 들 줄 아는 용기 있는 아웃사이더가 없는 압구정동 패션은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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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시간 : 2007/10/30 11:52




    글 전세화 기자 candy@hk.co.kr
    사진 임재범 기자 happyyj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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