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삐따기의 영화보기] 예술 영화 운동의 본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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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8.05.14 07:00:12 | 수정시간 : 2018.05.14 07:00:12
    72. 시네마테크 프랑세즈(The Cinémathèque Française)

    1936년 9월 프랑스 파리 루 드 베르시 51번가( 51 Rue de Bercy)에서 출범한 ‘다큐 및 극영화를 보유한 세계 최대 필름 보관소 organization that holds one of the largest archives of film documents and film-related objects in the world’이다.

    전세계에서 수집한 영화를 매일 정규적으로 상영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영화학자 앙리 랑글로이스(Henri Langlois), 조르쥬 프란주(Georges Franju)가 공동 설립했다.

    <기차 도착> 상영을 통해 영화 역사를 주도한 루이 뤼미에르는 ‘영화는 미래를 담보하지 못한 발명품’이라고 주장할 정도로 초창기 영화인들은 영화 필름은 상영 후 바로 소각하거나 폐기하는 1회 용품으로 대했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비평가 리카르노 카누도(Ricardo Canudo)는 ‘영화는 인류가 발명한 7번째 예술 장르이며 문화 및 상업적 보관 가치가 있다’고 역설한다.

    예술로서 필름의 보존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숨어 있는 영화 발굴 작업이 가시화되고 체계적인 수집, 보관, 상영이라는 업무를 수행할 필름 보관소 출현 움직임이 태동됐다고 전해진다.

    이런 작업을 선도한 앙리는 2차 대전 와중에 파리를 점령한 독일군 수뇌부가 1937년 이전 촬영된 수천편의 영화를 소각 시키라는 소식을 듣고 친구 조르쥬와 함께 필름 보호 작전을 시도해 양질의 영화들이 사라지는 것을 차단하는 공적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 이후 프랑스 정부는 수집된 필름을 정기적으로 상영할 수 있는 공간을 '메시네 거리 the Avenue de Messine’에 설치한다.

    1940-1950년 사이 로베르 브레송(Robert Bresson), 르네 끌레르(René Clément), 앙리-조르쥬 클루조(Henri-Georges Clouzot), 자크 베커(Jacques Becker) 등이 필름 보관소를 즐겨 찾으면서 문화 명소가 되는데 일조한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역할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60년대 중반 유럽 예술계를 강타한 ‘뉴 웨이브 감독 Directors of the New Wave Directors of the New Wave (la Nouvelle Vague)-알랑 레네(Alain Resnais), 자크 리베트(Jacques Rivette), 프랑소와 트뤼포(François Truffaut), 장-뤽 고다르(Jean-Luc Godard), 끌로드 샤브롤(Claude Chabrol), 로저 바딤(Roger Vadim), 자크 도닐-발크로즈(Jacques Doniol-Valcroze), 피에르 카스트(Pierre Kast) 등이 이 공간에서 제공한 수백편의 각국 작품을 감상하고 풍부한 영화적 상상력을 구현한 것으로 알려진다.

    1963년 6월 시네마테크는 앙드레 말로 문화부 장관(André Malraux, Minister of Culture)의 기금 지원을 받으면서 프랑스 정부 기관으로 편입된다.

    1968년 2월 재정부 장관(the Ministry of Finance)으로 자리를 옮긴 말로(Malraux)는 정부 운영 지침을 위반 했다는 이유를 들어 창립자 앙리를 전격 해고 하는 조치를 단행한다.

    급기야 정부의 탄압 행위에 대한 예술인들의 거세 반발이 제기된다.

    감독 알렉산더 아스트뤽(Alexandre Astruc), 끌로드 베리(Claude Berri), 로베르 브레송(Robert Bresson), 끌로드 샤브롤(Claude Chabrol), 아벨 강스(Abel Gance), 장-뤽 고다르(Jean-Luc Godard), 에릭 로메르(Eric Rohmer), 장 로치(Jean Rouch), 프랑소와 트뤼포(François Truffaut), 연기자중 장-피에르 라우드(Jean-Pierre Léaud), 끌로드 제이드(Claude Jade), 장 마레(Jean Marais), 프랑소와 로세이(Françoise Rosay), 외국 영화인 중 찰리 채플린( Charles Chaplin),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등이 부당한 정부 간섭에 대한 반발에 동참한다.

    프랑스 정부의 예술 억압에 대한 반발 움직임은 급기야 젊은 세대들까지 가세하면서 1968년 5월 유럽 전역을 강타하는 반정부 시위 운동으로 확산된다.

    한편 예술인들의 집단 반발 여파로 프랑스 문화부는 앙리 랑그로이스를 1968년 4월 다시 복귀 시키는 조치를 취한다.

    이후 앙리는 각국에 산재한 필름을 비롯해 촬영 대본, 의상, 포스터, 소품 등을 수집, 전시하면서 시네마테크가 영화 교육의 본산지 역할을 해낼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한다.

    1980년대 프랑스를 주축으로 해서 유럽 각국 영화계에서 진행된 필름 보존 캠페인 ‘질산염은 기다리지 않는다 Nirrate won't wait’가 펼쳐진다.

    영화 초창기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질산염 필름은 오래지 않아 부식이 진행돼 1895년부터 1930년대까지 제작된 영화의 80%, 1950년전까지 영화의 약 50%가 사라진 것으로 집계된다.

    앙리의 영화 수집 열의 덕분에 프랑스 시네마테크는 약 4만편의 각국 영화를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경기(영화칼럼니스트) www.dailyo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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