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가 있는 맛집(286)] ‘중앙회관’ 하숙영 대표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플러스 네이버 북마크 싸이월드 공감 기사 구입 프린트 기사메일
입력시간 : 2017.07.29 09:06:22 | 수정시간 : 2017.07.29 09:06:22
  • 전주 비빔밥의 ‘핫플레이스’…장(醬), 신선한 재료, 정성이 비결

    비빔밥 고장 전주의 새 명소로 각광…좋은 식재료와 갓 지은 밥으로 ‘비빈 밥’

    10대 소녀 때 비빔밥과 인연…40대 후반 ‘중앙회관’ 주인으로 명성 쌓아가

    어머니 전통 방식으로 담근 각종 장류 공급…하숙영 사장 손님상 돌며 정성

    전주비빔밥은 ‘힘’이 세다. 누구나 ‘비빔밥은 전주’라고 말한다. 전주비빔밥에는 두 개의 얼굴이 있다. 세계로 향하는 대표 한식 전주비빔밥이다. 또 다른 얼굴은 터무니없이 짧은 전주비빔밥의 역사다. 요즘 전주에서 비빔밥 전문점으로 핫플레이스가 된 ‘중앙회관’의 하숙영 대표를 만났다.

    나이 마흔여덟 살, 비빔밥은 32년째

    하숙영 대표. 1970년생. 이제 ‘겨우’ 48세다. 전주비빔밥의 역사는 이미 60년을 넘겼다. 고향도 전주가 아니다. ‘젊은 나이에’ 어떤 경로로 전주에서 비빔밥 집을 운영하고 있을까?

    “고향은 경기도 파주, 연천 부근입니다. 아버님이 군인이셨습니다. 아버님 따라 여기 저기 다녔는데, 저는 경기도에서 태어났지요. 어머님도 경기도에서 오래 사셨고 지금 진안에서 사시면서 ‘중앙회관’의 된장, 고추장, 간장 등을 ‘공급’하는 일을 하고 계시고요.”

    모녀가 비슷하다. 자매처럼 스스럼없다. 하 대표의 어머니 지장명 씨는 1949년 생, 올해 69세. 진안에서 각종 장류를 담그고 매만진다. 도심에서는 전통 방식으로 장을 담그는 일이 불가능하다. 공간, 공기와 햇살, 바람이 적절치 않다. 식당은 좋은 재료를 모아서 ‘조립’하여 음식을 내놓는 공간이다.

    진안군은 전북에서도 상당히 외진 곳이다. 산이 깊다. 군 면적의 대부분이 산지다. 들판은 드물다. 각종 농산물이 맛이 깊다. 흔히 말하는 ‘고랭지 농산물’이 가능한 곳이다. 장을 담그더라도 그 맛의 깊이가 다르다.

    “여러 가지로 힘들어서 진안으로 갔습니다. 마침 친분이 있는 분도 있고. 그곳에 가서 살고 있었지요. 진안 생활도 이제 30년을 넘겼습니다. 10년 전부터 딸이 식당을 한다고 해서 아예 그곳에서 정착하며 ‘장은 내가 담가 주마’라고 하고 지금껏 각종 장 담그는 일을 하고 있지요.”

    어머니 지장명 씨의 ‘진안’은 딸의 전주 ‘중앙회관’에 식재료를 공급하는 보급 기지다.

    전주의 ‘중앙회관’. 주말에는 대기 줄이 생길 정도로 손님이 많다. 하숙영 대표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본다. “왜 이렇게 손님이 많은가?”라고.

    “얼마 전에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게 도움이 되고, 또 이전부터 전주 현지 손님들이 많았습니다. 방송에서도 어머님이 일하는 진안의 장독대를 보여주었는데 결국 장맛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식은 장맛이고, 우리는 전통 방식으로 장을 담가서 사용하니까, 그 맛을 보고 손님들이 꾸준히 찾는 것이겠지요.”

    갓 지은 밥으로 비빔밥을 비비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일 수 있다. 비빔밥과는 관련이 없는 이야기다. 이야기를 시작하다가 깊게 묻지는 않았다.

    10대 후반의 소녀가 전주에 일을 하러 왔다. 그녀가 일한 곳은 전주의 비빔밥 전문점 ‘ㅅ’이다. 그곳에서 21년 간 일했다. 10대 후반의 소녀는 그 가게에서 마흔을 바라보는 중년의 여자가 되었다.

    듬성듬성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다. 가끔 연도와 나이 등을 맞추다가 보면 슬며시 말을 흐린다. 대략 짐작으로 이리저리 햇수, 연도 등을 짜 맞춘다.

    10대 후반, 경기도에서 전주의 비빔밥전문점으로 일하러 왔다. 처음 한 일은 주방 일이다. 주방의 보조 일이었을 테다. 세월이 흐르면서 주방 일을 배우고 나중에는 홀에서 손님 맞는 일도 했다. 결혼도 전주비빔밥 전문점 ‘ㅅ’에서 일할 때 치렀다.

    “20년 가까이 주방일, 홀 일을 하면서 내 가게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 음식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내가 하면 더 잘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아무리 마음대로 음식을 만든다고 해도 이미 그 가게에는 정해진 음식이 있고 주인이 따로 있으니 주방에서 마음대로 음식을 만들 수도 없고.”

    몇 해 전, 전주비빔밥을 두고 ‘비빈 밥’과 ‘비빌 밥’ 논쟁(?)이 벌어졌다. 원래 비빔밥이 과연 비벼서 나오는 것인가, 아니면 손님이 비벼서 먹는, 앞으로 비빌 밥인가, 하는 논쟁이었다. 식객들, 비빔밥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제법 진지한 논쟁이었다.

    이 ‘논쟁’에 대한 해답은 없다. 지금도 전주의 전주비빔밥 전문점들 중에는 ‘비빈 밥’으로 내놓는 곳이 있고, ‘비빌 밥’ 형태로 내놓는 곳이 있다. 대도시에서는 ‘비빈 밥’이 드물다.

    왜 전주에는 ‘비빈 밥’ 형태가 지금도 남아 있을까? 해답은 엉뚱한데 있다. 전주비빔밥의 출발이 바로 ‘비빈 밥’ 형태였기 때문이다.

    전주비빔밥은 1950, 60년대 무렵 상업화된다. 비빔밥은 그 이전부터 전국적으로 존재했다. 역사로 따지면 경남 진주의 진주비빔밥이 전주비빔밥보다 앞선다. 진주의 비빔밥집 중에는 100년의 역사를 넘긴 곳도 있다. 울산의 ‘함양집’도 진주비빔밥 갈래다. 역시 100년 가까운 역사다.

    전주사람들이 비빔밥 먹은 역사가 진주보다 짧다는 뜻은 아니다. 음식 상업화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진주는 삼남(三南)의 가장 큰 도시다. 오늘날 남한에서 서울(한양)을 제외하고는 가장 큰 도시였다. 일제강점기에도 마찬가지. 부산에 경상도의 도청 소재지 자리를 넘겨주기 전까지 진주는 여전히 큰 도시였다. ‘음식의 상업화’가 진주에서 먼저 시작된 이유다.

    ‘비빈 밥’의 장점을 살리다

    전주비빔밥은 1960년대 언저리에 상업화를 시작한다. 궁핍하던 시절이다. 보릿고개가 남아 있던 시절. 곡물이 귀했다. 찬밥, 더운밥 가리기 힘들었다. 어려운 시절, 상업화의 시작이 전주 ‘중앙회관’이었다. 찬밥도 버리지 못했다. 그렇다고 전주의 밥집이 손님상에 찬밥을 내놓기도 힘들었다. 찬밥을 비빔밥 비빌 때 이용했다. 콩나물국밥도 마찬가지. 더운밥 찬밥 가릴 필요가 없다. 뜨거운 국물에 넣고 말면 편하게 먹을 수 있다. 이 찬밥이 바로 전주비빔밥 ‘비빈 밥’의 시작이다.

    긍정적인 면도 있다. 점잖은 체면에 밥을 비빈다고 용을 쓸 필요가 없다. 잘 비벼서 내오면 편하게 먹으면 된다. 게다가 뜨거운 불판 위에서 밥을 비비면 비빈 밥이 아니라 볶은 밥이 된다. 비비면서 뜨거운 열로 볶으니 금상첨화다. 맛도 아주 강하게 변한다. 곡물에 장을 섞고 한편으로 가열처리 하면 곡물은 극상의 맛을 낸다. 볶고 비빈 밥은 맛있고 강하다. ‘비빈 밥’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까칠한 손님도 있다. ‘비빈 밥’은 찬밥이라고 내치는 이도 있다.

    “오랫동안 비빔밥 전문점 주방과 홀에서 일하면서 ‘비빈 밥’에 대한 손님들의 반응을 봤습니다. 좋아하는 분들도 있고, 꺼리는 분들도 있고요.”

    쉽게 이야기하지만, 전주비빔밥의 주요한 포인트를 깨달았다. 비빈 밥을 찬밥이라고 싫어하는 이가 있다. 반대로 편하다고 좋아하는 이도 있다.

    ‘숟가락 신공’이라고 부른다. 하숙영 사장이 손님상을 돌아다니면서 밥을 비벼준다. 우선 찬밥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하여 일일이 솥 밥을 내놓는다. 손님들은 누구나 정성스럽게 지은 자신의 솥밥을 먼저 본다. 주인이 옆에 서서 밥을 비빈다. 갖가지 반찬으로 예쁘게 만든 비빔 재료들 위에 솥 밥을 퍼 넣고 비비기 시작한다. 불과 1∼2분. 비빈 밥이 완성된다.

    오늘날 전주 ‘중앙회관’의 묘한 비빈 밥은 이렇게 완성되었다.

    예전 전주 ‘중앙회관’은 전주 노포였다. 1960년 문을 열었다. 서울로 진출했다. 1974년 신세계백화점이 주최한 ‘전국 팔도 민속음식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신세계백화점 내에 ‘중앙회관’을 열었다. 전주비빔밥의 서울 진입이었다. 1981년 충무로에 ‘전주중앙회관’을 열었다. 서울 ‘전주중앙회관’이다.

    비빔밥도 역시 장맛이다

    원주인은 가게 ‘전주중앙회관’을 팔고 서울로 떠났다. 오늘날 전주의 비빔밥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 데는 ‘중앙회관’의 공이 크다. 하숙영 대표가 ‘중앙회관’을 얻기 전, 이미 ‘중앙회관’은 여러 사람의 손을 탔다. ‘중앙회관’의 유명세 덕분에 장사가 되리라 믿었지만, 전주의 깐깐한 손님들은 이름 보고 음식점을 찾지는 않았다. 여러 손을 거친 후, ‘중앙회관’을 맡았다. 2008년의 일이다. 21년간의 비빔밥 전문점 주방 스태프, 홀 스태프 경력. 더하여 나만의 비빔밥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

    “지금 자리에 가게를 얻고 ‘중앙회관’을 시작했는데, 좀 더 좋은 자리에, 좋은 조건으로 가게 터가 나와서 그쪽으로 옮겼지요. 2년 정도 운영해서 제법 손님이 모일 때였습니다. 지금 자리에서 나가면서 보증금이나 이런 부분들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어요. 보증금도 못 받고 우선 이사부터 나갔지요.”

    보증금 반환이 미뤄지는 사이, 불쑥 전 건물에 차압, 경매가 시작됐다. 보증금은 돌려받지 못했지만 건물에 빚이 있어 하숙영 대표는 3순위였다. 가게 이사하고 나서 제법 잘 된다 싶었는데 결국 다시 원래 건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차압, 경매가 시작되면서 전 건물을 아예 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래저래 도와주는 분들이 있어서 어렵게 건물을 낙찰 받았습니다.”

    까다로운 전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간단하다. 장(醬)과 신선한 재료, 그리고 정성이다. 지금도 여전히 ‘비빈 밥’을 고집한다. 진안에서 친정어머니가 담가준 장으로 음식을 만든다. 장을 담그는 계절이면 한 달 내내 틈이 날 때마다 진안으로 달려간다. 어머니를 선배, 동료 삼아 같이 장을 담근다. 2년, 3년 묵힌 된장, 간장으로 비빔밥을 내놓는다. 크고 작은 반찬에도 모두 진안의 농산물과 묵은 지, 장들이 숨어 있다.

    비빔밥 업력 32년. 하숙영 대표의 비빔밥은 무던하다. 별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그저 “이런 비빔밥도 있어”라고 말한다. 물론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비빔밥도 맛이 더 깊어질 것이다. 마치 오래 묵은 된장ㆍ고추장처럼.

    글ㆍ사진=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dasani87@naver.com

    [비빔밥 맛집]

    시장비빔밥-전북 익산

    특이한 ‘비빈 밥’의 형태로 제공된다. 비빈 밥이지만 밥과 장류, 된장, 고추장 등을 비빈 것이 아니라 잘 곤 고기 국물과 비빈 형태다. 국물에 토렴을 해서 밥알이 촉촉하다.

    천황식당-경남 진주

    국내 최고最古의 비빔밥 전문점이다. 업력이 100년을 넘긴다. 이 일대는 진주 성내 나무전거리였다. 이른 아침 시장에 온 사람들을 위해서 문을 연 식당.

    함양집-울산광역시

    울산에 있지만 이름은 함양집이다. 진주문화권인 경남 함양에서 온 이들이 문을 연 비빔밥 전문점. 고급스런 육회와 더불어 보탕국이 일품이다. 계란지단도 아주 좋다.

    황소한마리육개장-경기도 남양주 별내

    짧은 업력이지만 고추장을 넣지 않고 비비는 품위 있는 비빔밥 집이다. 된장, 고추장 대신 간장을 넣고 밥을 비빈다. 육개장 전문점인데 비빔밥도 육개장만큼 좋다.

  • <저작권자 ⓒ 한국미디어네트워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HOM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