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가 있는 맛집(313)]‘어촌싱싱회해물탕’ 이기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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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8.02.28 17:51:42 | 수정시간 : 2018.02.28 19:18:11
  • ‘착한 식당, 착한 음식’ 본보기…원칙 지키는 ‘전국적 유명 해물탕’

    바다를 매개로 한 2대 대물림… 통영서 드문 ‘해물탕’으로 유명세

    “좋은 음식은 좋은 식재료 맛 살리는 것”…가족의 정성으로 음식 만들어

    • 아버지 이창웅 씨와 '어촌싱싱회해물탕'의 운영자 아들 이기호 씨.


    우리는 ‘대물림’을 좋아한다. 식당 앞에 ‘3대 전승’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으면 믿고 찾는다. 경남 통영. 오래된 도시다. 음식도 좋다. 이곳에서 해물탕은 오히려 ‘새로운’ 메뉴다.

    통영 바닷가에서 ‘어촌싱싱회해물탕’을 운영하고 있는 젊은 사장 이기호 씨를 만났다. 일반적인 대물림은 전혀 아닌, 바다를 매개로 한 2대 대물림 집인 셈이다.
    • 어촌싱싱해물탕
    아버지와 아들, 부자가 따로, 또 같이 걷는 길

    인터뷰는, 아버지와 아들을 따로 진행했다. 오전 시간 아버지부터 만났다. 아버지는 통영의 해양 관련 기관에서 공무원으로 일했다. 육지에서 일했지만 일거리의 대상은 대부분 ‘바다’였다. 해산물 양식 관련 일을 많이 했다.

    음식점 일을 한 것은 아니다. 공무원이었고 이젠 본업에서도 은퇴했다. 소일거리로 하는 ‘바다 관련 일’은 있지만 식당과는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아버지를 먼저 인터뷰를 한 이유가 있다.

    몇 해 전 아들이 운영하는 식당이 ‘채널A 먹거리 X파일_착한식당’에 선정되었다. 묵묵한 60대의 남자가 인터넷에 그 사실을 알렸다. 포스팅 내용도 특이했다. 자랑하고 한번 오시라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기쁘지만, 아들이 지금과 같은 발걸음으로 꾸준히 걷기를 원한다는 소박한 바람을 담은 내용이었다. 내용이 참 특이하고 인상 깊었다. 하여, 언젠가 ‘어촌싱싱회해물탕’ 인터뷰를 하면 반드시 아버지를 먼저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들도 바다와는 인연이 깊다. 통영시의 바닷가에서 해물탕 집을 운영한다. 일터가 바다는 아니지만 늘 바다를 바라보며 해산물을 취급한다. 아버지는 이창웅 씨다. 아들은 이기호 씨. 아버지는 1954년생이다. 이미 밝힌대로 은퇴했다. 가끔 아들 가게에 나와서 둘러보곤 한다. 음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저 둘러보고 간다. 그것만으로도 아버지가 그리는 바다의 해산물의 이야기는 그대로 아들에게 전달된다.

    아들 이기호 씨는 이제 서른일곱 살이다. 아들은 통영에서 ‘전국적으로 유명한 해물탕 집’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

    ‘어촌싱싱회해물탕’은 통영시 도천동에 있다. 여객선터미널과도 그리 멀진 않다. 4차선 도로 건너편이 바로 바다다. 큰길에 노상 주차장이 있고 그 너머는 바다다. 가게에서는 늘 바다가 보인다.

    “처음 이곳에 자리를 정하고 식당 문을 열었을 때는 통행하는 사람도 거의 없고 약간 슬럼 분위기까지 풍기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다행히 저의 가게나 다른 가게들이 운영을 잘 해서 이제 제법 그럴 듯한 거리가 되었습니다. 나고 자란 고향이니까 통영이 발전하면 기분이 좋지요. 통영 발전에 저도 작은 힘을 보탰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더 좋고요.”
    • 어촌싱싱해물탕
    초등학교 때 조리사가 되기로 결심

    예전 행정구역으로 ‘통영시 광도면’. 이들 부자의 고향이다. 반농반어지역이다.

    아버지 이창웅 씨의 항렬들은 공부를 잘했다. 이창웅 씨도 공무원 출신이지만 형제들도 대부분 공무원 등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다.

    아들 이기호 씨는 다르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라면 끓이는 일은 제가 도맡아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제가 음식 만드는 일 하는 걸 아버지가 말린 적은 없습니다.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지요. 음식 만드는 일 하지 말고 공부하라는 말씀은 한 번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수협에 근무할 무렵, 아들 이기호 씨는 수협이 주관하는 ‘요리대회’에 출전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출전 사실도 상세히 몰랐다. 당연히 어떤 음식을 준비했는지도 몰랐다. 고2때 굴 요리로 대회에 참가했고 입선했다. 굴로 하트모양을 만든, 당시엔 참신한 아이디어였다. 입선을 하든 말든, 이미 음식 만드는 일에 푹 빠져 있었다. 고등학교 때 요리학원을 다녔다.

    충청도 홍성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했다. 전공은 호텔조리경영이었다. 그곳에서 요리를 공부하면 근사한 요리사가 될 것 같았다.

    “제대로 못한 것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해병대 입대 못한 것과 대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겁니다.”

    바닷가 출신이다. 해병대에 입대하고 싶었다. 신체검사 전, 민간 병원에서 평소 아팠던 부분을 진찰했다. 척추 뼈에 문제가 있었다. 해병대 입대는 불가능해졌다. 공익요원으로 근무했다.

    “공익요원 생활을 하면서 양식조리사 자격증 시험을 봤습니다. 자격증을 따면서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지요. 대학교도 시들해지고 결국 학교는 그만두고 주방 일을 시작했지요.”

    ‘공부’와는 멀어진 셈이다. 아버지와 다른 길. 아버지와 삼촌들은 모두 공부로, 시험으로 일생을 보냈다. 공무원 생활을 한 윗세대와는 달리 그는 주방에서 자신의 삶을 시작했다. 공부하고, 시험 치는 일과는 달랐다.

    “고향인 통영 일대의 크고 작은 식당에서 일을 해봤습니다. 한때는 서울의 일식 이자카야에서도 일 해보고, 제법 이름이 알려진 곳에서도 일했습니다. 2011년 무렵, ‘내 가게’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어촌싱싱해물탕
    끝날 때 끝나더라도 원칙을 지키자

    도시 이름 통영(統營)은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영’에서 시작했다. 삼도는 충청, 전라, 경상도를 이름이다. 이 3개 도의 수군들을 모두 통제하는 곳이 바로 삼도수군통제영이다. 통영은 애당초 큰 도시였다. 한때 약 1만 명 이상의 군사들이 통영에 머물렀다고 한다. 군대에는 문반 관리들도 있었다. 통영에는 문ㆍ무반 관리들이 많이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시장이 서고 시장이 서면 사람들은 좀 더 편리하게 식재료를 구하고 음식을 만든다. 많은 이들이 음식을 조리할 때 조리법은 발전한다. 통영의 음식은 뿌리가 깊다.

    “통영에는 의외로 해물탕이 널리 유행하지 않았습니다. 대도시에 해물탕이 흔할 때 정작 통영에는 해물탕이 없었습니다.”

    통영의 헛제삿밥에는 주로 반건 생선을 사용한 요리가 놓인다. 예나 지금이나 대구 반건조는 통영의 주요 해산물이다. 쏨뱅이 같이 다른 지역에서는 귀한 생선도 있고, 각종 복어같이 다른 지역에서도 흔한 생선도 흔하다. 지금도 서호시장과 중앙시장에는 숱한 생선이 선을 보이고 거래된다.
    • 싱싱한 해물.
    • 해물탕 나오기 전에 가벼운 죽을 먼저 내놓는다.
    싱싱한 해산물과 반건조 생선, 건조생선이 흔한 곳이다. 굳이 해물탕을 먹을 이유가 없다. 숱한 반건, 건조, 날 생선들을, 통영 일대에서 널리 구할 수 있었던 간장으로 졸이거나 찐다. 국물이 흥건한 탕을 굳이 택할 이유가 없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철저하게 생물 생선만 사용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이젠 생물을 사용하는 곳이 많이 늘었지만 제가 시작했던 2011년 무렵만 하더라도 국산 생물만 사용하는 곳은 거의 없었습니다. 해물탕의 경우 당연히 외국 수입산을 사용했지요. 이젠 상당수가 생물 생선을 사용합니다.”

    쉽지는 않았다. 지금의 가게 자리 부근은 횟집 골목이었다. 가게 이름이 ‘어촌싱싱회해물탕’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회는 익숙하지만 해물탕은 여전히 어색했다.

    통영 사람들은 해물탕을 어색하게 생각했다. 관광객들은 해물탕에 익숙하지만, 해산물이 흔한 통영 지역의 소비자들은 해물탕을 특이한 음식으로 생각했다.

    1년을 지나면서 곰곰이 되짚어 봤다. 적자였다. 힘들었다. 한때 가게를 외지 대도시로 옮길까, 라는 생각도 했다.

    “당시 사귀고 있던 여자 친구가 있었고, 가게 열심히 해서 돈 벌고, 또 그 친구랑 잘 지내고 싶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결국 헤어졌습니다. 가게를 잘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습니다. 끝날 때 끝나더라도 원칙은 지키고 다시 한 번 해보자고 마음을 곧추 세웠지요.”

    • 가게 바깥의 모습. 착한식당 28호점이다.
    ‘착한식당’으로 거듭나다

    2011년, 2012년이 그렇게 흘러갔다.

    2013년 4월, 기대치 않게 ‘착한식당’으로 선정되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조미료 사용하지 않고, 국내산 해물로 탕을 끓이는 것이 눈에 띈 것이다.

    “조미료가 몸에 나쁘다, 그렇지 않다, 말들이 많습니다. 저는 해물이 가진 원래의 맛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말은 쉽지만 해산물의 원래 맛을 보여주는 것은 만만치 않는 작업을 필요로 한다. 조개 하나, 가리비 하나까지 꼼꼼히 씻어야 한다. 문어 손질도 만만치 않다. 주말에 손님이 몰리기라도 하면 해산물 손질로 밤을 새기 일쑤다.

    “양쪽 팔이 다 고장이 났습니다. 통증도 있고 늘 부어 있고요. 긴 세월 가게 운영한 분들 보면 존경스럽습니다.”

    음식 만지는 일은 어머니도 도와주고 있다. 홀 일은 직원들에게 맡겨도 웬만큼 해낸다. 문제는 주방, 그중에서도 식재료를 장만하고 다듬는 일이다. 쉽지 않다. 종업원에게 맡길 일은 아니다.

    해산물은 어린 시절부터 눈으로 보고, 혀로 맛보고, 손으로 만져본 것들이다. 익숙하다. 어느 계절에 어떤 해산물이 좋은지 잘 안다. 해산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역시 잘 알고 있다.

    “좋은 음식은 좋은 식재료의 맛을 살리는 일이라 믿습니다.”

    ‘바다’는 부자의 공통 관심사이자 일터였다. 아버지 시대는 해산물 증산, 양식 등이 주요 관심사였다. 아들은 아버지가 정성을 쏟았던 바다에서 건져 올리는 해산물로 ‘착한 식당, 착한 음식’을 만든다. ‘착한식당’으로 선정되었을 때 아버지는 ‘아들이 올곧게 지금과 같이 운영하도록 하겠다’는 내용을 인터넷에 포스팅했다. 다행히도 아들은 젊다. 올곧은, 착한 음식은 이제 시작이다. 얼마나 더 발전할는지, 기대하는 이유다.

    글ㆍ사진=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dasani87@naver.com

    [통영의 맛집 4곳]

    수정식당
    혼자 가더라도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다. 해산물로 차린 ‘정식 밥상’이 정갈하다. 1인용 식탁에 회 몇 점과 더불어 탕, 밑반찬 등이 깔끔하다. 통영의 노포다.

    분소식당
    통영의 노포다. 시장 통에서 오랫동안 졸복 등을 내놓았다. 졸복, 도다리쑥국을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공로가 있다. 예전 맛은 아니지만 수준급 식당.

    비진도
    ‘어촌싱싱회해물탕’의 바로 옆집이다. 자연산 생선 등을 이용한 회, 구이 등이 아주 좋다. 봄철 도다리쑥국과 더불어 도다리 미역국도 좋다. 정갈한 밑반찬도 추천.

    통영맛집
    통영 토박이가 운영하는 식당이다. 볼락젓갈, 유곽비빔밥 등이 특이한 메뉴다. 작은 볼락을 잘 삭혀서 식탁에 내놓는다. 유곽은 조갯살을 넣어서 삭힌 비빔용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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