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가 있는 맛집(332)] ‘곰탕수육전문’ 김정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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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8.07.12 16:37:05 | 수정시간 : 2018.07.12 16:48:48
  • 제대로 된 곰탕, 수육으로 단기간에 명성

    직업으로 선택한 ‘곰탕’에 모든 것 쏟아…한우, 국산 식재료만으로 수준급 맛 내

    • '곰탕수육전문'의 곰탕


    ‘곰탕수육전문’. 처음 듣는 이들은 “곰탕과 수육을 전문적으로 내놓는다는 건 알겠는데, 가게 이름이 뭐야?”라고 묻는다. 가게 이름이 ‘곰탕수육전문’이다. 서울 마포구 현석동에 있다. 신수동 옆이고, 마포먹자골목의 서쪽 끝 부분을 막 지나면서 자리한다.

    노포는 아니다. 주인의 업력이 긴 것도 아니다. 갑작스럽게 주목받고 있는 가게. 생뚱맞다.

    자동차 딜러에서 곰탕 전문점 주방으로

    ‘곰탕수육전문’ 김정길 대표. 1972년생이다. 업력이 짧다. 2013년부터 강남 ‘대치동 하동관’ 입사(?)를 두고 ‘실랑이’가 있었다. “견습생으로 입사해서 곰탕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다. 주방에 받아 달라”는 게 김 대표의 이야기. 상대는 완강했다.

    “이제까지 한 번도 곰탕 만드는 법을 외부인에게 알려준 적이 없다”는 게 ‘대치동 하동관’ 측의 거부 이유였다. 그 무렵부터 셈해도 경력은 불과 5년 정도.

    서울 은평구 태생이다. 은평구 언저리에서 초ㆍ중ㆍ고교를 다녔다. 2005년, 건축 일을 하시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4남1녀의 막내. 일찍부터 사회에 뛰어들었다. 기아자동차 판매, 영업 일을 했다. 나중에는 수입 차 딜러로도 일했다.

    ‘대치동 하동관’과의 인연도 ‘자동차’로 시작됐다. ‘대치동 하동관’에 차량을 소개하고 판매했다. 자동차 딜러로 신임을 얻었다.

    “사회생활을 비교적 일찍 시작했습니다. ‘하동관’이 수하동에 있을 때부터 드나들었지요. 2005년 무렵이었습니다. 그 후 수하동 ‘하동관’이 명동으로 이사하고, 나중에는 집안 식구 중 한 분이 대치동에 ‘하동관’을 냈지요. 저는 ‘대치동 하동관’에서 일을 배웠습니다.”

    평소에 ‘음식 만드는 일’을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만들 줄 아는 음식도 없었다. 평범한 직장인. 제법 잘 나가는 자동차 딜러였다.

    • '곰탕수육전문'의 수육


    “수하동의 예전 ‘하동관’에 손님으로 드나들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곰탕은 행복한 음식이었습니다. 곰탕집을 운영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때이지요. 직장생활을 그만둔 건 대부분의 직장인들 특히 영업직 사원들이 느끼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좋다. 수입도 제법 높고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나중에는? 미래에도 이럴까? 과연 지금같은 상황이 계속될까?’라는 생각이 들지요. 저뿐만 아니라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생각입니다.”

    ‘그러면 뭘 할지?’라는 생각이 연이어 들었다. 음식이나 음식 만드는 일 더구나 음식점을 운영하는 일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막상 음식 만들고, 음식점 운영하는 일을 떠올리니 그게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희한하게도 직장 다니면서 ‘요리학원의 쿠킹 클래스’를 다녔고요. 그저 취미생활 정도였는데 막상 식당을 한다고 생각하니 ‘아, 내가 요리학원 다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취미로 음식 만드는 일은 좋아했습니다.”

    대단한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었다. 머릿속에 생각만 빤할 뿐, 실제 만들 수 있는 음식도 없었다. 가족이나 주변에서 음식 만들고 음식점 운영하는 이도 없었다. 물어볼 곳도 의논할 대상도 마땅치 않았다.

    8년, 8개월, 10개월 그리고 이제 1년 반

    수하동의 ‘하동관’이 생각났다. ‘곰탕, 행복한 음식’. ‘대치동 하동관’으로 달려갔다. 2013년 무렵. ‘곰탕 끓이는 일을 가르쳐 달라’고 떼를 썼다. 100년에 가까운 역사, 독보적인 곰탕 전문점이다. “단 한 번도 외부인을 주방에 들인 적이 없다”는 말이 되돌아 왔다. 그리 호락호락하게 곰탕 끓이는 비법, 방법을 알려줄 리 없었다.

    • 김정길 대표


    8개월의 실랑이. 일방적인 구애였다. 매달리고 또 매달렸다. 도와 달라, 가르쳐달라고 매달렸다.

    “운이 좋았지요. 당시 ‘대치동 하동관’은 몇 군데 추가입점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강남구 삼성동의 백화점이나 다른 곳에 가게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분점이지요. 곰탕을 대규모로 끓여낼 생산라인이 필요했습니다. 경기도 광주에 공장을 세울 예정이었고요. 그 생산라인에 투입할 인력이 필요했습니다. 그 자리에 제가 들어간 거죠.”

    덤으로 좋은 일도 얻었다. 공장에 급하게 투입할 인력이니 ‘빨리 가르치라’는 지시도 있었다. 채소 다듬는 일 같은 기본적인 일부터 고기 삶는 일 등 크고 작은 공정을 열심히 배웠다. 10개월의 기간.

    자동차로 맺은 인연이 8년, 곰탕 끓이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졸랐던 기간이 8개월, 그리고 곰탕 끓이는 법을 배운 기간이 10개월. 가게 문을 연 지 1년 반이 지났다.

    “아무리 더해도 짧은 시간이지요. 배운 그대로 곰탕을 해내는 것만 해도 벅찹니다. 한 가지 깨우친 건 있습니다. 제가 몸이 아파서 잠깐 동안 일찍 퇴근했던 적이 있습니다. 몇몇 손님들이 맛이 달라졌다고 항의를 했습니다. 이제 겨우 며칠 한 셈입니다. 시야가 좁지요. 배운 그대로 흉내 내고 있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9시에 출근, 국물 끓이고, 고기 썬다. 손님을 치르고 저녁 9시까지 고기 삶고, 끓이고 솥 청소를 한다.

    ‘곰탕수육전문’. 한눈을 팔 틈도 없다. 짧은 시간 배운 솜씨다. 한우와 국산 식재료만 사용한다. 좋은 곰탕, 수육을 내고 싶다. 가게 이름을 ‘곰탕수육전문’으로 정한 이유다.

    글ㆍ사진=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dasani8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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