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엠코르셋 문영우 대표 "추락하는 사업으로 수없는 자살 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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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7.10.29 12:44:22 | 수정시간 : 2007.10.29 13:27:48
  • 엠코르셋 문영우 대표 "추락하는 사업으로 수없는 자살 충동"
    [Success Story] 역경을 딛고 선 CEO들, 브랜드 차별화로 승부
    죽기 살기로 일에 매달려 부도업체 살려내





    지난 10월초 한 경제일간지에 “탤런트 이혜영씨 속옷사업도 대박”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미싱도로시 브랜드는 CJ홈쇼핑을 통해 당일 4억5,0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이후 매 방송마다 평균 4억3,000만원이라는 매출기록과 함께 매진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성공 요인은 스타 연예인의 이미지 효과 외에 원단 섭외부터 모델까지 직접 담당하는 이씨의 적극적 활동, 파트너 회사인 엠코르셋과의 유기적 협력시스템 등이다.’

    이 기사에 등장한 엠코르셋은 속옷시장에서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회사다. 이 회사의 문영우 대표가 여기서 소개할 주인공이다.

    체격도 좋고 어투도 시원스러운 데다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는 전형적인 ‘부산 사나이’인 문영우 대표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절대 하지 않고 대신 마음이 당기면 화끈하게 밀어붙이는 성격이다.

    ■ 100일 만에 당구 400점 친 승부 근성

    그는 고교 시절 당구를 치지 않겠다고 결심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친구들이 당구를 치는 동안 ‘게임돌이’ 노릇을 하는 것이 지겨워 마음을 바꿔 먹었다. 그로부터 불과 3개월 보름 만에 애버리지 400점을 쳐서 친구들을 놀라게 했다. 한때 내기 당구로 용돈을 벌어 썼을 정도의 실력을 자랑했다.

    문 대표의 ‘승부사 기질’을 읽을 수 있는 다른 에피소드도 많다. 한 번은 일본어가 꼭 필요해서 3개월 동안 죽자 살자 공부한 덕에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에 오르기도 했다. 골프 역시 바빠서 자주 치지는 못하지만 입문한 지 1년 만에 싱글을 기록하기도 했다.

    화승 나이키에 다니던 그는 ‘큰 물’에서 놀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삼성에 경력사원으로 입사를 한다. 그리고 그는 삼성에서 엄청난 경험과 지식을 쌓았다. 사실 오늘날의 그를 만든 사관학교인 셈이다.

    ■ 삼성에서 선진 경영기법 배워

    삼성에서 그는 스포츠사업부의 상품 MD(머천다이징) 업무를 했다. 다른 부문과 달리 그 부문에는 영어 잘 하는 사람이 적어 얻게 된 행운이다.

    그는 LA기어 같은 초일류 회사와 함께 일을 하면서 마케팅을 비롯한 선진 경영기법을 많이 배운다. 브랜드의 중요성도 절감한다. 당시 삼성에 브랜드가 40개 정도 있었는데 그는 브랜드 전략을 만들기도 했다.

    얼마나 몰입해서 일을 했는지 30대 초반에 십이지장이 터져 병원으로 실려간 적도 있다. 그래서 배에 큰 흉터가 있다. 덕분에 삼성에서 계속 특진을 한다. 여기서 다양한 경험을 한 것이 나중에 사업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삼성에서 그는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된 계기를 맞았다. 벤처투자 회사 골든게이트를 만들고 그 본부장이 됐던 일이다. 삼성물산은 돈, 정보, 네트워크 등 모든 것을 가진 조직이다. 그는 회사측에 벤처투자 회사를 만들자는 제안을 했고 회사가 이를 받아들였다.

    그는 1년 동안 30개 벤처에 300억 원을 투자했고 1,000억 원 이상의 평가이익을 냈다. 그가 사업을 하기로 결심한 것도 이 과정에서 사업에 눈을 떴기 때문이다.

    자신이 투자한 회사에 콩 놓아라 팥 놓아라 자문과 잔소리를 하던 그는 어느 날 회의가 들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책임도 지지 못하는 말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럴 바에는 아예 나도 사업을 해보면 어떨까?

    결국 그는 2002년 사표를 내고 사업을 시작한다. 여러 아이템을 놓고 고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는데 할리우드 스타 멜 깁슨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왓 위민 원트?(What women want?)’란 영화를 보게 된다. 그 순간 시쳇말로 필이 꽂혔다. 바로 저거다 하는 확신이 든 것이다.



    그래서 속옷사업을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하지만 사업은 말 그대로 장난이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친구와 친지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준 종자돈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몇 달 만에 부도를 맞았다.

    하루에 두어 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하고 일을 했지만 성과는 나지 않았다. 1년 동안 150%의 인력이동이 있었다. 직원들이 다 바뀌고 또 반이 바뀐 셈이었다.

    그런 일을 겪어내는 과정이 어떠했겠는가? 당시 한강 잠수대교를 건너야 집에 올 수 있었는데 차를 몰다가 몇 번이나 한강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마음을 바꿔 먹었다.

    다시 죽기 살기로 일에 매달렸다. 그렇게 1년쯤 지나자 시장에서 약간의 반응이 왔다. 그러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사정도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그 후 문 대표가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브랜드 차별화였다. 속옷시장에서 온라인 유통을 생각한 것도 차별화하지 않으면 오프라인의 강자와 싸워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그는 온라인 속옷시장의 강자가 되었다. 르페를 시작으로 키스 리퍼블릭(KISS-REPUBLIC), 미싱 도로시(MISSING DOROTHY) 등으로 브랜드를 확장했다.

    그는 이제 일반 의류에까지 진출할 계획이다. 온라인을 평정한 다음 오프라인에 도전장을 낸다는 것인데, 이미 홈플러스 등에 15개의 매장을 입점시켰다. 내년에는 중국에도 진출한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현재 오프라인 속옷시장은 신영와코루, 남영 L&F, 좋은 사람들 등 몇몇 강자가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 시장에서는 엠코르셋이 최고의 강자다.

    엠코르셋은 코오롱이 1995년 설립해 한때 마케팅 비용만 30억 원을 쏟아 부은 회사였다. 하지만 변변히 힘을 쓰지 못하던 것을 문 대표가 2003년 1월 인수했다.

    하지만 그 해 4월 1차 부도를 냈다. 돌아온 어음 대금 지불이 하루 늦었는데 이 일로 2년 동안이나 제1금융권에서는 돈 한푼 빌리지 못해 악전고투를 했다.

    첫해 18억 원 매출에 5억 원 손실을 봤지만 이후 2004년 100억 원 매출에 6억~7억 원 이익, 2005년 140억 원 매출, 2006년 200억 원 매출 달성을 하는 등 경영상태가 점차 호전됐다. 올해는 300억 원 정도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이제는 안정 궤도에 들어선 셈이다.

    사람들은 부자를 보면 부러워하고 질투를 한다. 하지만 그런 부를 누리기 위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고 하지 않는다.

    문 대표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아내에게 3년간 자신을 찾지 말라고 주문했다. 남편 노릇을 당분간 포기한다는 선언이었다. 고맙게도 아내는 한 번도 “언제 들어오는지, 지금 어디 있는지, 어젯밤은 왜 안 들어왔는지” 등을 묻지도 않았단다.

    3년이 끝나던 날 그는 2년을 더 연장해 달라고 아내에게 부탁했다. 올해 말이 종료일이다. 그는 이만큼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다.

    한근태 교수

    사람은 뿌린 대로 거둔다. 지금의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복수이다. 반대로 지금의 성공은 젊은 시절 뿌린 땀과 노력의 결실이다. 문 대표를 보면서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들었다.

    ■ 필자 한근태 프로필

    ▦ 한스컨설팅 대표

    ▦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 환경재단 운영위원

    ▦환경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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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시간 : 2007/10/29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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