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與, 충청의 맹주 '뚝심남' 추대… 野, 강한 여전사 '저격수' 선택
  • ● 새누리-이완구·새정치-박영선… 새 원내사령탑 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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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com
입력시간 : 2014.05.12 14:14:31 | 수정시간 : 2014.05.12 14:14:31
    지난 8일,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원내대표로 새로운 인물을 내세웠다. 새누리당은 3선의 이완구 의원, 새정치연합 역시 3선의 박영선 의원을 선택했다. 19대 국회 3기를 이끌어갈 두 신임 원내대표는 이제 당 대표에 이어 당내 서열 2위로 올라섰다.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이뤄지는 주요 법안 처리나 여야 협상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일을 맡는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같는다. 하지만 두 원내대표 앞에는 어려운 숙제가 놓여 있다. '세월호 침몰 참사' 이후 얼어붙은 정국의 난제를 풀고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지방선거에서도 존재감을 보여줘야 한다. 기대와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두 사람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새누리 방패는 '뚝심' 李

    원내대표직을 놓고 고심을 거듭하던 새누리당의 선택은 '뚝심 있는 남자' 이 원내대표였다. 그는 단일후보로 출마해 투표 없이 동료 의원들의 박수 속에 합의 추대됐다. 영남 중심의 새누리당에서 탄생한 첫 충청 출신의 원내대표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정책위의장에 선출된 주호영 의원과 함께 뛴다.

    이 원내대표는 1950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대전중·양정고를 거쳐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했다. 1974년 행정고시(15회)에 합격해 충남 홍성군청에서 서기관으로 근무했고, 이후 충남 홍성 경찰서장과 충북·충남 경찰청장을 지낸 '경찰통'이다.

    이 원내대표가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든 건 1996년이다. 그 해 치러진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소속으로 입후보에 고향인 청양에서 국회의원이 됐다. 1997년 대선 당시 김종필(JP) 전 총리가 이끄는 '자유민주연합'으로 당적을 옮겼고, 2000년 16대 총선에서 재선했다. 자민련에서 대변인, 원내총무 등 주요 당직을 거쳤다. 그러던 중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 재입당 해 철새 정치인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듬해,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 입당한 의원들이 금품을 받았다는 '이적료 파문'으로 이 원내대표도 곤욕을 겪자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충청권을 대표하는 인물인 이 원내대표는 '포스트JP'라 불린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충남지사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후 여권에서 충청권 목소리를 대변해왔다. 그가 정치인으로서 한 단계 도약한 건 2009년 이명박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몸을 던져 반대하면서다. 참여정부의 대표 정책인 '세종 행정복합도시' 건설을 놓고 이명박정부가 수정안을 추진하자 여야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중 이 원내대표는 수정안에 강하게 반발하며 지사직을 사퇴했다. 당시 원안을 고수한 박근혜 대통령은 이 원내대표의 강직한 모습에 감명 받았고, 이를 계기로 두 사람 사이엔 '공통분모'가 생겼다.

    이 원내대표의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다. 이 원내대표는 19대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중 다발성골수종(혈액암) 판정을 받고 정치일선에서 물러났다. 부인 이백연씨가 '이완구 카페'를 통해 전한 투병생활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씨는 "간간히 들려오는 항암치료가 쇼라는 말에 (남편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 모습을 뵐 땐 너무 가슴이 아팠다"고 소회를 밝혀 주위를 안타깝게 하기도 했다. 이 원내대표는 골수이식과 항암치료로 혈액암을 극복한 후 지난해 4월 재보선에서 7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정치인생 2막을 연 이 원내대표는 이제 확실한 '친박'으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2009년 박 대통령과 한배를 탄 후 신박으로 분류돼왔다. 혈액암 완치 판정을 받은 직후인 지난 대선에서는 새누리당 충남도당 공동 선대위원장을 맡아 활약했다. 새누리당 내에서 차기 총리 후보군으로 분류되고 있고, 일각에서는 대권 주자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번 원내대표 선출 과정을 보면 이 원내대표에 대한 박 대통령과 당내 주류인 친박계 의원들의 두터운 신임을 엿볼 수 있다. 앞서 원내대표에 출마할 것으로 예상됐던 남경필 의원이 경기도지사 출마로 마음을 바꾸고 이주영 의원이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입각했다. 정갑윤 의원 역시 출마를 접으면서 이 원내대표의 1인 독주체제가 만들어졌다. '원조 친박'으로 불리는 최경환 전 원내대표에 대한 청와대의 신임이 두터운 만큼 이 원내대표 역시 당청관계를 원활히 하는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새정치연합 창은 '저격수' 朴

    새정치연합의 원내대표 선거는 신당 창당 후 의원들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는 자리여서 관심을 모았다. 고심을 거듭하던 의원들은 '저격수'이자 '여전사'로 불리는 박 원내대표를 선택했다. 이는 그가 '선명야당'을 강조한 만큼 대여공세에 앞장서고 현재 당 지도부인 김한길, 안철수 대표 견제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박 원내대표는 1960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수도여고와 경희대 지리학과를 졸업한 뒤 서강대 언론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2년 MBC에 아나운서로 입사한 뒤 1983년부터 기자로 활동했다. 이후 MBC의 간판 앵커로 이름을 알렸고 방송국 최초 여성특파원, 최초 여성 경제부장 등으로 이름을 알렸다.

    박 원내대표는 2004년 MBC 선배였던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의 러브콜을 받고 대변인직을 수락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당시 박 원내대표는 정치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방송앵커 출신에 서글서글한 인상 때문에 유권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정 전 의장의 유세 현장엔 노란색 투피스를 차려 입고 지원에 나서서 눈길을 끌기도 했다.

    17대 총선에서 비례의원으로 여의도에 입성한 박 원내대표는 직접 '저격수'로 나섰다. 경제부 기자 생활을 한 15년 경험을 살려 17대 국회 기획재정위원으로 재벌개혁에 앞장섰고 경제 이슈를 주도하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2007년 대선에서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의 약점이 된 'BBK 사건' 저격수로 나서 활약했다.

    박 원내대표는 국회 활동에 늘 적극적이었다. 박 원내대표는 18대 총선에서 서울 구로을에서 재선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로 활동하면서 임기 4년 내내 이명박정부 공격의 선봉에 섰다. 특히 함께 법사위에서 활동하던 박지원 의원과는 '박남매'불리며 대여 공세에 앞장설 정도였다. 박 원내대표의 활약은 뚜렷하다. 이명박정부가 내세운 천성관 검찰총장,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를 낙마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사법개혁특위 검찰소위원장을 맡아 검찰개혁도 주도했다.

    박 원내대표는 새정치연합의 대표적인 차세대 주자다. 2011년에는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당 정책위의장을 맡아 '3+1(무상급식+의료+보육 및 반값등록금)' 등 보편적 복지 정책을 만들었다. 같은 해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파문'으로 사퇴하면서 보궐선거가 치러지자 민주당 후보로 나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선의의 경쟁을 벌였다. 2012년에는 전당대회를 통해 최고위원에 뽑혀 한명숙 대표와 함께 '첫 여성 선출직'으로 지도부에 입성했다. 박 원내대표에 대한 동료 의원들의 두터운 신임은 19대 국회에서도 확인됐다. 여성으로서 첫 법제사법위원장 자리에 오른 것이다. 비법조인 출신으로서는 이례적인 결과여서 관심을 모았다.

    수많은 정치인이 있지만 국회 내 활동으로 돋보이는 정치인은 드물다. 박 원내대표는 정치인 가운데서도 의정 활동을 통해 일 잘하는 정치인으로 평가 받는다. 하지만 '저격수'라는 별명에서 짐작하듯 저돌적이고 강경한 이미지 탓에 '독불장군'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지난해 12월 말 '외국인투자촉진법'이 법사위에 상정됐을 당시 박 원내대표가 강하게 반대해 정부, 여당과 갈등을 빚었다. 새누리당에서는 법사위원장이 법안처리에 발목을 잡는 등 '월권을 행사한다'는 비판이 나온 바 있다.

    박 원내대표는 당 내에서 비교적 계파색이 옅은 인물로 꼽힌다. 정치 입문 초기에는 정동영계로 분류됐지만, 의정활동을 거듭하면서 당내 주류인 친노계나 동교동계와도 허물없이 지냈다. 박 원내대표는 이번 원내대표 선거에서 초재선 의원을 중심으로 혁신모임 등과 486 소장파들과 정세균계의 지지를 받았다. 투표 결과 친노계 지원을 받은 노영민 의원, 소장파를 대표하는 최재성 의원, 당 지도부의 지원을 받은 이종걸 의원을 크게 앞섰다.

    신임 원내대표 당면 과제

    두 사람은 걸어온 길이 다르지만 공통점이 많다. 일단, 정치인으로선 강직한 이미지를 갖고 있고 지역사회에서 신뢰도 높아 대중성을 자랑한다. 중견 정치인으로 차곡차곡 자신의 입지를 다져온 것도 인상적이다. 그러나 두 원내대표 모두 강성으로 분류되는 만큼 19대 국회 후반기 여야관계 실타래가 순탄하게 풀릴지 관심이 모아진다.

    이 원내대표는 충청권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깨고 신박의 한계를 넘어 중앙당 장악하느냐가 향후 정치적 입지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 원내대표를 '원조 친박'으로 볼 수 없는 만큼 청와대에 목소리를 낼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있다. 친박 대표주자인 최경환 전 원내대표의 경우 청와대와의 교감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원내대표는 원내대표 선출 소감 발표 자리에서 "건강한 당·정·청 긴장관계가 필요하다"면서 "대통령에게 어려운 고언의 말씀을 앞으로 드릴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박 원내대표는 당선 후 인사말에서 "당당한 야당, 존재감 있는 야당"을 만들겠다고 박혔다. 헌정사상 첫 교섭단체 여성 원내대표로 정치권의 유리창을 깬 것으로 평가 받는다. 하지만 내부 상황은 녹록치 않다. 새정치연합 내 팽배한 계파갈등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과제다. 당장 박 원내대표가 지도부와 친노계, 혁신계와의 갈등을 조율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원내사령탑으로서의 협상력도 주목 받고 있다. 여야 원내대표의 협상이 원만하지 않을 경우 교착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정치권에서는 두 원내대표 모두 강성인 만큼 '강대강' 기류로 흐를 것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이 원내대표는 '야당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고, 박 원내대표 역시 투사형 정치인에 가깝다.

    당장 두 원내대표는 세월호 참사 수습을 위한 국정조사 및 특별검사제 도입 등을 놓고 맞서고 있다. 이 의원내대표는 '수습 이후 국조, 특검 도입 반대'입장을 강조하는 반면 박 원내대표는 '국조 및 특검 조속한 도입'을 내세우고 있어 입장차가 크다. 박 원내대표가 주장하는 5월 국회 개원문제를 이 원내대표가 어떻게 처리할지도 관심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두 원내대표의 정치력에 높은 기대를 표하기도 한다. 이 원내대표는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고, 박 원내대표 역시 정치력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만큼 협상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얘기다.

    두 원내대표는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6월 지방선거와 7월 재보궐선거를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 여야 모두 내부사정은 좋지 않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동반 하락하고, 새정치연합은 신당 창당 이후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양당 모두 지탄을 받고 있는 만큼 두 원내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도 갈릴 것으로 보인다. 당장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서 흘러나온 내부 잡음을 수습하고 국민 지지를 회복하는 게 공통적인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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