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산시(山西)성 서기 장바오순(張寶順), 언론인 출신… 은폐 관행 척결 앞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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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7.01.10 13:05:13 | 수정시간 : 2007.01.10 13:06:41
  • 산시(山西)성 서기 장바오순(張寶順)
    언론인 출신… 은폐 관행 척결 앞장

    중국 5세대 '떠오르는 별' 누구인가 <17> 신화사 부사장 역임한 團派 핵심… 행정가로도 높은 평가 받아





    민주사회에서 언론은 제4부로 존중을 받고 그 위상도 높다. 서방 최고지도자의 이력 속에 언론활동 경력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의 한 명으로 꼽는 로널드 레이건은 방송 스포츠기자로 사회 첫발을 내딛었다.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 윈스턴 처칠의 정계진출 발판은 보어전쟁 당시 종군기자로서의 명성이었다. 프랑스의 첫 사회주의자 대통령이던 프랑수와 미테랑도 출발은 변호사 겸 저널리스트였다.

    일본에서도 전후 총리들 중에는 언론인 출신의 이시바시 단잔(石橋湛山)이 끼여있다. 이시바시는 언론인으로 동양경제신보(東洋經濟新報)사의 사장을 맡은 뒤 정계에 투신, 총리까지 오른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현 일본 총리의 아버지로 총리 문턱에서 급사한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전 외상도 마이니치(每日)신문 정치부 기자로 활약하다 정계에 입문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언론기관의 위상은 낮다. 선전과 프로파간다가 더 중시되기 때문이다. 언론기관은 선전부서 하부기관으로 치부되어 왔다. 중국에서 서방사회와는 달리 언론인 출신 정치 지도자가 가뭄에 콩처럼 드문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 같은 실정을 감안할 때 장바오순(張寶順) 산시(山西)성 서기는 이채로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 출신의 단파(團派) 핵심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그는 1993년부터 5년간 신화통신사 부사장을 역임했다. 신화통신사는 중국의 유일한 통신사이다.

    장바오순의 이런 이력에 주목하는 것은 이후 그가 사실 전달이라는 언론의 기본을 제대로 체득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98년 산시성 부서기에 임명된 그는 2004년 산시성 성장, 2005년 산시성 서기에 오르는 등 산시성에서 9 년째 근무하고 있다. 산시성은 황토 고원지대로 석탄이 많이 매장된 곳인데 최근 들어 탄광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경제성장에 따라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면서 안전 설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철야작업이 다반사로 이루어지는 탓에 사고가 꼬리를 물었다. 사고가 나면 관행적으로 은폐가 이루어졌다. 문책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장바오순은 달랐다. 그는 부서기 시절부터 은폐 관행 척결에 주력했다. 사고가 나면 현장으로 달려가 기자들과 접촉, 진상 파악에 주력했으며 언론의 사실 보도를 오히려 권장했다. 2006년 5월 산시성 다통(大同)시의 한 탄광에서 침수로 44명이 갇히는 대형 참사가 빚어졌을 때 탄광측은 4명만이 매몰됐다고 허위보고 했으나 곧바로 들통 난 것은 그간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은폐 척결 노력과 무관하지 않다. 이 탄광사고는 진상이 밝혀지면서 지난해 최대의 탄광 참사로 기록됐다. 중앙의 관심이 커지는 것은 불가피했다.

    이 사고는 장바오순에게도 적지 않은 정치적 타격이 되어 그가 연임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의 나오기도 했다. 민주사회에서조차 자신이 믿는 바를 상대방이 믿도록 설득(때에 따라서는 강제)하는 선전(프로파간다)과 언론활동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가운데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한 장바오순의 자세는 지극히 이채롭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낙마 전망에도 불구하고 10월 31일 산시성 당대회에서 서기에 연임됐다.

    베이징올림픽을 1년 앞두고 중국 당국은 언론 기능에 대한 재인식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서방기자가 처음으로 자오쯔양(趙紫陽)의 비서였던 바오퉁(鮑彤)을 인터뷰하도록 허용했는가 하면 기율검사위와 조직부 등 공산당 주요 부서에 대변인제를 도입했다. 중국 당국이 이처럼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지만 적지 않는 과도기적 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때에 장바오순은 중국 지도부에선 선구자적인 존재가치를 지닌다 하겠다.

    장바오순은 1950년 2월생으로 올해 57세이며 허베이(河北)성 친황다오(秦皇島) 출신이다. 문화혁명 때인 68년 친황다오 부두노동자로 출발, 공청단에서 들어가 정치적으로 성장했다. 37세 때인 87년 인민대학에 입학, 마르크스 레닌주의 이론을 전공했으며 92년에 지린(吉林) 대학 경제관리학원 들어가 경제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장쑤(江蘇)성 서기 리위안차오(李源潮)와 동갑인 장바오순은 리커창(李克强) 랴오닝(遼寧)성 서기가 공청단 후보서기로 있을 때 후진타오, 리위안차오 등과 함께 그의 상관이었다. 이런 연유로 장바오순은 후진타오의 후계 전망을 하는 경우, 리커창, 리위안차오 다음으로 자주 언급된다.

    장바오순은 지방지도자로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2005년 성급 지도자 평가에서 당시 산시 성장이던 그는 왕치산(王岐山) 베이징 시장, 한정(韓正) 상하이 시장(당시 직책, 현 상하이 대리서기), 리위안차오 등과 함께 우수 평가를 받았다.

    산시성은 환경오염이 심각한 곳이어서 ‘오염대성(汚染大省)’ 이라는 오명을 들어 왔다. 지난달 18일 산시성의 환경실태를 상세히 조사한 장쑤쥔(張蘇軍) 사법부 부부장을 단장으로 한 중앙정부의 조사단은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렸다.

    “(산시성의 환경보호 업무가) 신속하고 강도 높게 추진되었으며 조치시행이 실질적이었고 효과도 좋았다(行動快, 力度大, 措施實, 效果好)”.


    입력시간 : 2007/01/10 13:05




    이재준 객원기자 중국문제 전문가 webmaster@china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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