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가 있는 맛집(314)] ‘케이솔트- 청수식품’ 정무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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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8.03.06 00:36:08 | 수정시간 : 2018.03.09 00:51:15
  • 국산 천일염 가치 대단, 약용ㆍ식용… ‘맑고 깨끗한 소금’으로 시판

    고된 과정 거쳐 순수 천일염 돼…1100도로 볶아내 유해 성분 제거

    대기업 소금과 질적으로 달라…HACCPㆍ할랄(halal) 인증받아

    日 전문가 천일염 예찬, ‘한국소금에 미친 남자’책 펴내기도

    • 정무창 대표이사. 원래 기계 전공이었으나 현재는 재제염 전문 회사의 대표직을 맡고 있다.
    소금, 천일염은 혼란스럽다. 유해균부터 미네랄 함유에 대한 이야기까지. 전남 무안의 ‘케이솔트-청수식품’을 찾았다. 천일염을 재료로 한 재제염 공장이다. 보기 드물게 소금 공장이 HACCP(식품위해요소 중점관리기준)과 할랄(halal) 인증을 받았다. 대표 정무창 씨를 만났다. 소금, 천일염, 환원염 이야기를 들었다.

    소금, 혼란스러운 역사

    한반도의 소금은 혼란스럽다. 오해도 깊다. 이유가 있다. 국산 천일염의 역사는 불과 100년. ‘신안 천일염’의 역사는 불과 10년이다. 1907년 인천 주안에서 국산 천일염이 시작되었다. 주안염전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후 소금은 ‘혼란기’를 겪는다. 전매제도로 통제하다가 ‘광물질’로 규정했다. 식염(食鹽) 천일염 ‘중흥(?)’은 불과 10년이다. 소금은 늘 혼란스러운 존재였다. 부족했기 때문이다. 소금 부족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한반도도 마찬가지. 소금으로 속임수를 쓰는 이들도 많았다.

    고려 후기, 조선시대를 통틀어 한반도의 소금은 자염이었다. ‘천일염은 전통 소금’이라는 표현은 틀렸다. 1000년 이상 동안 우리는 자염을 먹었다. 굳이 전통 소금을 찾자면 자염이다.

    자염은 구운 소금이다. 바닷물의 염도를 높인 다음, 가마솥에 넣고 끓인다. 소금 굽는 일은 무척 힘들다. 군인이나 승려들까지 동원했다. 소금 굽는 일은 ‘막장’의 일이었다. 나무도 귀했다. 소금 굽는 곳 주변은 민둥산 천지였다.

    소금이 귀하니 정부는 염세를 귀하게 여겼다. 전매제도를 시행한다. 소금에 세금을 매기고 이 세금을 정부 재정으로 사용한다. 전매제도가 느슨해지면 염전을 운영하는 부패세력도 나타난다. 권력자들은 귀한 소금으로 잇속을 챙겼다.

    1907년 인천 주안의 천일염 염전이 문을 여는 날, 매국노 이완용 등 당시의 조정 고급관리들이 대거 현장에 참석했다. 소금 부족으로 중국(청나라)에서 소금을 수입하던 시절이다. “이제 소금을 수입하지 않고 오히려 수출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일제는 자신들이 이미 식민지로 삼았던 대만과 일본에는 정제염 공장을 세우고 한반도에는 대만, 중국식 천일염 염전을 만들게 했다. 한반도 천일염의 시작이다.
    • 염전 모습
    천일염과 정제염 그리고 자염(煮鹽)

    해방 후에도 소금은 여전히 부족했다. 국가는 재정부족이었다. 소금 전매제가 시행되었다. 이승만 정부는 ‘소금 증산 5개년 계획’까지 세웠다. 소금 생산량이 급격히 늘어났다. 1962년 소금 전매제가 끝났다. 소금은 민간의 손으로 넘어왔다.

    1960, 70년대 소금 공장에서 만드는 정제염도 생산되었다. 박정희 정권 아래, 천일염은 ‘광물질’로 규정되었다. 우리는 ‘광물질’을 50년 동안 먹었다. 법적으로는 식용이 불가능한 광물질이지만 ‘2년 간수 뺀 천일염’은 지금도 최고의 소금으로 여긴다. 동네 골목의 가게, 염업사(鹽業社)에서는 식염으로 소금을 팔았다. 법적으로는 식용 불가능한 광물질이었다. 2008년 천일염은 다시 ‘식용’으로 인정받았다. 한반도 천일염, 신안 천일염 역사의 시작이다. 불과 10년. 천일염 연구는 아직 부족하다.

    천일염과 정제염에 대한 각종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케이솔트-청수식품’을 찾은 이유다. 천일염이 ‘식염’이 된 2008년 이전부터 천일염을 재료로 한 ‘재제염(再製鹽)’을 생산한 기업이다. 법인이 ‘케이솔트’와 ‘청수식품’ 두 회사로 구성되었다. 현재 ‘케이솔트’의 대표인 정무창 씨를 만났다.
    • 케이트솔트는 HACCP와 할랄 인정을 받았다.
    “회사는 1990년대에 이미 설립되었고, 제가 입사하던 2004년 무렵, 공장 설비를 고치고 있었습니다. 저는 소금 전문가가 아닙니다. 기계 설비 전문이지요. 소금 공장에 기계 설비 문제로 들어왔다가 소금 회사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정 대표는 IMF로, 운영하던 회사를 접었다. 프리랜서로 기계 관련 일을 하고 있는데 ‘청수식품’에서 “3개월 정도의 기간 동안 소금 공장의 기계 정리, 재배치하는 일을 도와 달라”고 해서 처음 소금 공장에 발을 디뎠다. “2008년 소금이 광물질에서 식용으로 바뀌었습니다. 제가 소금 관련 일을 막 시작하고 있을 무렵이었지요. 제가 보기엔 그저 이름만 바뀌고 달라진 건 없습니다. 적어도 식품이 되려면 식품으로 쓰게끔 뭔가 달라져야지요.”

    대기업에 납품하고 있는 ‘구운 소금’이 있다. 천일염을 넣고 세척한 후 건조한다. 기계를 돌리면서 서서히 소금을 볶는다. 열처리 기술이 필요한 부분이다. 많은 실험을 했다. 소금을 볶을 때 LPG가스를 써보기도 했다. 열량 손실이 지나쳤다. 원가가 올라가고 회사로서는 이익이 나질 않았다. 포기했다.

    소나무는 송진(松津)을 가지고 있다. 송지라고도 한다. 액체 상태의 송진도 있다. 외국에서 액체 송진을 수입했다. 역시 소금을 볶을 때 연료로 사용했다. 부적합했다. 소금 볶는 온도를 1100도까지 올리는 일은 쉽지 않다.
    • 케이트솔트의 소금 포장 작업
    탈수, 세척, 선별, 볶는 과정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위생에 적합하게 진행해야 한다.

    “소금은 806도 정도에서 액상으로 녹습니다. 소금의 녹는 점, 용점이지요. 저희들은 1100도까지 온도를 높입니다. 소금이 대부분 녹습니다. 400도를 넘기면 소금 입자가 깨지기 시작합니다. 800도가 되면 소금은 가루가 되고 녹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염소가스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염소 가스는 900도 정도에도 남아 있습니다. 1100도가 되면 염소 가스는 물론 중금속들도 완벽하게 없어집니다. 문제는 잔류가스가 없어지는 대신 바깥으로 가스들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이걸 처리하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집진기를 이용해 유해 가스의 유해 성분을 없앤 후 내보낸다. 염소 가스는 산성이 강하다. 중화시켜 중성으로 만든 다음 내보내야 한다. ‘대기배출허가’ ‘수질배출허가’ 등의 용어도 나온다. 모두 정 대표가 주도, 시행하고 있는 공정들이다.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유해 성분이 전혀 없는 ‘맑고 깨끗한 소금’이다.

    소금의 성능, 효능은 다음 문제다. 이 부분에는 엉뚱하게도 일본인이 등장한다. 현재 ‘케이솔트’의 회장이다. ‘케이솔트’를 ‘외국인 투자기업’이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이 일본인 회장 덕분이다.
    • 염전에서 천일염을 보여주고 있는 우에다 히데오 회장. '한국소금에 미친 남자'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한국 천일염에 미친 남자, 우에다 히데오(上田秀夫) 그리고 사토우 미노루

    우에다 히데오. 여든 살을 넘긴 일본인이다. 그가 의학박사 사토우 미노루(佐藤 稔)와 공저한 책이 있다. ‘한국소금에 미친 남자’. 책 제목의 소금은 당연히 한국산 천일염이다.

    ‘청수식품-케이솔트’의 역사 그리고 이곳에서 생산하는 소금을 이야기하자면 반드시 우에다, 사토우 두 사람에 대해서 설명해야 한다. 사토우 씨는 2004년, 책이 나오기 한 해 전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다행히도 소금, 한국 천일염에 대한 숱한 데이터를 책에 남겨 두었다.

    현재 ‘청수식품_케이솔트’에서 생산하는 소금은 재제염이다. 천일염을 고온으로 볶아서 식탁에서 사용하는 식탁염으로 바꾼다. 공정은 어렵지만 내용은 간단하다. 식탁염으로 사용하는 재제염이다.

    우에다 씨는 그야말로 한국 천일염에 대해서 미친 듯이 체험, 연구하고, 모든 내용을 꼼꼼히 기록으로 남겼다. 그가 국산 천일염, 볶은 소금을 처음 만난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서였다. 내용은 상당히 드라마틱하다.

    우에다 씨는 여행길에 심한 복통을 겪는다. 견디지 못할 정도의 고통이었다. 우에다 씨의 아내는 한국인이다. 한국의 처가에 들렀을 때 그는 처형이 주는 정체불명의 흰 가루를 먹고 극심한 복통이 낫는 체험을 한다. 그 흰 가루는 볶은 소금을 곱게 간 것이었고, 그는 이 소금을 목욕 등에도 사용했고 효과를 봤다. 흰 가루를 푼 물에 목욕을 한 결과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심한 땀 배출 현상’을 겪었다.

    여행 후, 일본으로 돌아간 우에다 회장은 ‘한국에서 만났던 소금’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설명해줄 사람을 찾는다.
    • 여러가지 소금들.
    “소금에 미친 남자가 있으니 한 번 만나봐 달라”

    ‘한국 소금에 미친 남자’에 공저자로 참가한 의학박사 사토우 씨는 이런 코멘트를 듣고 처음 우에다 씨를 만난다. 두 사람은 소금의 ph농도(수소 이온지수)부터 한국 천일염이 지닌 환원력까지, 숱한 실험을 한다. ‘한국소금에 미친 남자’에는 두 사람이 겪었던 각종 실험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소금을 전하고, 사용 후기를 받는 식으로 정리한 내용이 꼼꼼히 실려 있다. 내용 중에는 지금도 설왕설래 말이 많은 ‘천일염이 함유하고 있는 미네랄’에 대한 내용도 풍부하다.

    아토피, 비만, 각종 관절염, 당뇨, 고혈압 등의 질병을 가진 사람들이 우에다 씨가 권하는 소금을 먹고 낫거나 증상이 완화되는 경험을 한다. 당시 우에다 씨는 이런 구운 소금을 ‘환원소금’ ‘환원염’이라는 이름으로 상품화했다.
    • 자동포장기
    “당시 구운 소금은 전량 일본으로 수출했지요. 물론 우에다 회장님이 앞장서서 일본에 우리 소금을 알렸지요. 천일염을 재료로 저희 공장에서 고온으로 구워서 환원염을 만들었습니다. 일본에는 상당한 자료가 축적되어 있습니다. 과학적인 데이터도 상당수 있고요. 구운 소금은 ph 10-12 정도입니다. 알칼리 식품이지요. 우리 몸이 산성화될 때 구운 소금을 먹으면 중성으로 변한다고 들었습니다. 다이옥신이 문제가 된 적이 있는데 ‘케이솔트’의 구운 소금에서는 다이옥신이나 중금속이 전혀 검출되지 않습니다.”

    몇몇 대기업 혹은 작은 업체에서는 ‘말린 소금 dry salt’을 구운 소금이라고 광고, 판매한다. 고온으로 열분해하는 것은 상당한 기술이 필요한 부분이다. 1000도 이상에서 구운 소금이라고 하지만 낮은 온도에서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

    “생산 원가를 생각해서 외국산 천일염이나 공장 생산 정제염을 재료로 가공해달라는 주문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거절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연구 결과나 자료들이 나오겠지만 우리 천일염은 갯벌에서 생산, 채취하는 독특한 소금입니다. 회사에서 직접 염전을 관리하여 소금을 생산합니다. 원재료부터 철저하게 관리하여 저희들 고유의 소금을 만들고 있습니다.”

    글ㆍ사진=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dasani87@naver.com

    [무안의 맛집 4곳]

    강나루뱀장어
    무안 몽탄에 있는 뱀장어 전문점. 처음에는 바로 앞개울에서 잡은 장어를 썼으나 이제 양식을 구해서 자체 황토웅덩이에 보관하여 사용한다. 직접 기른 채소도 아주 좋다.

    낙지예찬생선예찬
    ‘낙지 탕탕’과 생선구이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조기, 갈치를 비롯하여 다섯 가지 생선을 골고루 내놓는다. 밑반찬도 수준급이다. 낙지도 좋지만 생선도 싱싱하다.

    내고향뻘낙지
    낙지로 유명한 무안에서도 손꼽는 낙지 전문점이다. 낙지 연포탕, 낙지초무침, 낙지 비빔밥 등이 권할 만하다. 낙지와 더불어 내놓는 밑반찬도 아주 좋다.

    몽탄 짚불돼지구이
    무안 몽탄에는 돼지고기를 짚불에 구워서 내는 전문점들이 있다. 몇몇 전문점들을 잘 살펴보고 시도해보도록. 돼지고기가 짚불에 탄 흔적은 좋지 않지만 맛은 색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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