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핵화 수렁’ 한국 책임론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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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8.09.01 11:35:20 | 수정시간 : 2018.09.01 11:41:56
  • 미국, ‘비핵화’ 오판 한국 탓 거론… “북핵 문제 꼬였다”

    美 “한국 정부가 북의‘비핵화’ 잘못 해석해 미국에 전달”

    트럼프 정부 ‘비핵화 딜레마’에 빠져…文 정부 남북교류 ‘험난’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정상회담을 위해 만나 악수하고 있다.(연합)


    6ㆍ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계기로 ‘화해의 길’로 나아갈 것으로 보였던 미국과 북한이 정반대의 상황으로 충돌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이 전격 취소되고,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비밀편지’ 내용이 공개되면서 미국과 북한은 ‘강대강’(强對强) 대결로 치닫고 있다. 북한 핵의 ‘비핵화’에 대한 입장차가 가장 큰 원인이다.

    ‘비핵화’ 는 북미 대화의 시작이자 끝이다. 비핵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북미관계는 물론, 남북관계, 북핵과 관련된 세계 현안들도 진전되기 어렵다.

    하지만 비핵화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직접 대화에 나선 미국과 북한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은 비핵화 문제의 근원이 한국에 있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이 북한의 핵에 대한 입장을 잘못 해석하고 전달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비핵화 수렁’에 빠졌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우리 정부의 대북관계에 딴지를 걸거나 비협조적인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비핵화 문제로 남북관계도 틀어지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딜레마를 짚어봤다.

    미국, ‘비핵화 문제’ 한국 책임론 거론

    “문재인 대통령이 1년 내 북한 비핵화를 제안했고, 북한 김정은이 이를 받아들였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8월 19일(현지 시각)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을 예고하며 한 말이다.

    볼턴 보좌관은 이날 ABC방송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27일 김정은과의 만남에서 ‘북한이 더 빨리 비핵화할수록 한국ㆍ일본의 원조, 수많은 국가의 해외 투자를 더 빨리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고 우리에게 전했다”며 “문 대통령은 이것들을 1년 이내에 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이에 사회자가 ‘1년 안에 비핵화가 가능하겠느냐’고 하자 볼턴 보좌관은 “김정은이 ‘예스(yes)’라고 했다”며 “북한의 비핵화에 1년이라는 기간은 이미 남북이 동의한 것”이라고 했다.

    볼턴 보좌관은 지난달 5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도 “김정은은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1년 안에 비핵화를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의 국가안보보좌관이 남북 정상의 대화 내용을 구체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는 비핵화 협상의 성패가 남북 모두에 달렸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지만,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입장을 믿은 것은 한국 정부 때문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즉, 미국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비핵화’에 대한 한국의 오판에 기인했다는 것으로 우리 정부에 책임 추궁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최근 미국이 우리 정부의 대북관계 진전에 딴지를 거는 것과 무관하지 않고, 3차 남북정상회담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문재인 정부 ‘비핵화’ 딜레마

    트럼프 정부는 ‘비핵화’와 관련해 문재인 정부에 매우 큰 불만을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의 정보 관계자 등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가 ‘비핵화 늪’에 빠 진 것이 한국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한국 정부가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입장을 잘못 전했고, 이를 그대로 믿은 트럼프 정부가 현재 비핵화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설명이다. 심지어 트럼프 정부가 비핵화 문제를 풀지 못할 경우 11월 중간선거에서 패할 수 있고,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3월 8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방북 성과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연합)


    정보 관계자들에 따르면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 미국이 오판하게 된 단초는 지난 3월 9일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북한의 입장을 전한 것이라고 한다.

    정의용 실장은 3월 5일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별사절단대표단으로 방북해 김정은 위원장을 면담한 뒤 3일 뒤인 8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방북 성과에 대해 설명했다. 미국 정보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 정의용 실장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했고, 이를 철썩같이 믿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비핵화 수렁’ 빠진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게 정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에 앞서 정의용 실장은 3월 방북 후 돌아와 6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가졌다. 정 실장은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으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밝혔다”고 전했다.

    정 실장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강조하며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김 위원장이) 비핵화 목표는 선대의 유훈이며, 선대의 유훈에 변함이 없음을 분명히 밝힌 점”이라고 말했다.

    본지는 정 실장이 김정은 위원장을 면담하고 돌아온 뒤 발표한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한 바 있다.(2018년 4월 24일자 제2724호) 정 실장이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한데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본지가 북한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들을 통해 확인한 결과 북한은 비핵화(핵폐기) 의지를 밝힌 적이 없었다. 북한의 보유핵 고수 입장은 절대 불변으로 김정은 위원장도 바꿀 수 없다는 것도 확인했다. 즉, 북한이 말한 ‘비핵화’는 앞으로의 핵에 대한 입장이고 기존의 보유핵은 그대로 유지한다는 의미다.

    베이징의 정통한 대북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밝힌 ‘비핵화 목표는 선대의 유훈’이란 뜻도 특사단이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은 김일성 때부터 김정일ㆍ김정은 시대에 이르기까지 ‘비핵화 목표’를 강조했지만 이는 ‘북한이 비핵화할 경우 미국도 핵을 폐기하라’는 뜻으로 사실상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이렇듯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오독은 문재인 정부뿐만 아니라 미국 입장도 곤혹스럽게 했다. 정의용 실장의 방북 결과(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전해듣고 북미정상회담을 공표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북미정상회담에서 ‘비핵화’ 결론을 이끌어내지 못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궁지에 몰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

    트럼프 정부는 6ㆍ12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앞서 수차례 북한과 접촉하며 ‘비핵화’ 합의점을 찾으려고 했다. 성 김 주필리핀 미국 대사가 이끄는 미측 협상팀과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을 대표로 하는 북측 협상팀은 판문점에서 여러 차례 만나 회담을 가졌지만 북한의 보유핵 유지 입장은 확고했다. 성김-최선희 회담은 6ㆍ12 북미회담 직전까지 싱가포르에서 이어졌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결국 세기의 회담이라는 트럼프 대토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6ㆍ12 싱가포르 첫 북미정상회담은 북핵에 대해 아무런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자국내 민주당뿐만 아니라 공화당으로부터 비핵화 실패에 따른 공격을 받았다. 미국 여론도 트럼프 대통령에 비판적이었다.

    이후 트럼프 정부는 폼페이오 장관 등을 통해 북한과 접촉하며 비핵화 문제를 풀려고 했으나 북한의 비핵화 입장은 요지부동이었다.

    세계적 현안인 북핵 문제를 해결해 탄핵 위기를 넘기고 2020년 재집권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비핵화 문제로 발목이 잡힌 꼴이 됐다.

    트럼프 정부 입장에선 ‘비핵화 딜레마’의 근원이 한국 정부의 ‘오판’에 있다고 보고 책임 추궁과 함께 해법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정보 관계자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5월 22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에서 한국 정부의 비핵화에 대한 잘못된 정보에 대해 강하게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최근 볼턴 보좌관 등 트럼프 정부 핵심인사들이 한국 정부에 비핵화 책임론을 제기하는 것은 심상치 않다. 미국이 남북 교류에 제동을 거는 모습도 유사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국내외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선 3차 남북정상회담도 미국의 태도에 달렸다는 말이 나온다. 미국이 우리 정부에 대한 불신이 지속되는 한 남북교류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가 비핵화 문제에 어떤 해법을 제시할지, 그리고 남북관계를 어떻게 진전시켜나갈지 주목받고 있다.

    박종진 기자 jjpark@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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