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억을 팝니다… 주머니를 여세요"
  • 전통·향수 자극하는 '복고 마케팅' 열풍
    유통·광고 등 산업전반 복고 바람
    불황일수록 과거에 대한 향수 커져 '그때 그 시절' 떠올리며 소비 유도
    다양하고 충성도 높은 고객층 존재 기업들에 '마르지 않는 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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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옥희 기자 hermes@hankooki.com
입력시간 : 2014.01.27 07:00:33 | 수정시간 : 2014.01.27 07:00:33
    • '코란도 투리스모' 출시.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나. 추억은 슬픈 것이든 기쁜 것이든 간에 그 자체로 인간의 감정을 건드린다. 현실이 고단할 때 사람들은 과거에서 위안을 찾으려고 한다. 따지고 보면 딱히 지금보다 나은 것만은 아닌 그 시절을 떠올리며 "그때가 참 좋았지"라는 생각이 드는 건 이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갈수록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는가 싶더니 한국 경제에 복고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현대는 속도전의 시대다. 조금만 쉬어 가도 유행을 따라잡기 버겁다. 모바일 문화가 도통 달갑지 않은 '스마트폰 맹'이나 최신가요가 소음처럼 들리는 사람들은 '그 시절'을 그리워하기 마련이다. '그땐 이렇게 정신없지 않았는데….' 이런 틈새를 기업들이 놓칠 리 없다. 추억만큼 변함없고 안정적인 소재가 없기 때문이다. 과거를 추억하는 데 나이는 걸림돌이 아니다. 기업들은 최근 경제적ㆍ시간적ㆍ교양적 여유를 중시하며 강력한 소비 집단으로 떠오른 7080세대와 경제활동의 주축인 3040세대를 특히 주목하며 이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마케팅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레트로 마케팅' '향수 마케팅' '리메이크 마케팅' 등으로도 불리는 복고 마케팅은 소비자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되살려 활용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복고 마케팅은 기억을 상기하고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때문에 한 시절 유행했던 브랜드를 재출시하거나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약간의 새로움을 더해 출시하는 특징이 있다.

    복고 마케팅을 벌이는 이유가 뭘까. 일단 마케팅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새 브랜드 출시 비용을 절감하고 제품 충성도가 높은 소비층을 미리 확보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보통 어느 한 브랜드를 고객들에게 널리 알리려면 적게는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이 넘는 광고 및 마케팅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그러나 복고 마케팅은 기억을 끄집어내는 데 집중하기에 비용이 상대적으로 덜 들어가 경기침체 때 써먹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케팅 방법이다. 외환위기 때 복고 마케팅이 활발했던 건 이 때문이다.

    소비자들에게도 매력적이다. 가계 경제가 어려울수록 불안 심리가 커진다. 이때 과거를 현재로 불러들이는 복고 마케팅은 소비자들에게 안정적인 감정을 부여하고 그들을 위안하는 역할을 한다. 또 기성세대에는 추억과 향수를, 젊은 세대에는 유사 전통이나 새로움을 선사한다. 큰돈을 안 들여도 향수와 새로움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공존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은 물론 다양한 소비층이 복고 마케팅에 열광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나이가 들고 언젠가는 소비의 주역이 된다는 점에서도 복고는 기업들에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할 수 있다.

    • 응답하라 복고풍 방한의류.
    복고 마케팅을 가장 활발하게 활용하는 곳은 유통업계다. 수입 간식이 즐비한 대형마트는 70, 80년대에 큰 사랑을 받았던 어포나 쥐포를 '추억 상품'으로 내놓아 중장년층의 지갑을 열게 한다. 편의점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상품 중 하나도 소시지와 계란프라이를 얹은 추억의 도시락이다.

    패션업계에도 복고 열풍이 거세다. 최근 패션업계에선 90년대를 풍미한 '떡볶이 코드'가 다시 유행하고 있다. 대표 상품이 더플코트. 패션업계는 과거 더플코트를 더욱 세련되게 변형한 상품으로 겨울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다.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전자제품도 인기다. 기능은 최신이지만 디자인은 복고풍인 제품이 호응을 얻고 있다. 카메라가 대표적이다. 하이엔드 카메라 시장에선 클래식한 외관이 매력적인 디지털 카메라가 대세다. 70, 80년대 브라운관TV처럼 채널 다이얼과 나무 프레임을 적용했지만 기능은 최신식인 복고풍 TV, 에너지소비효율 1등급 등으로 실속을 차리면서도 50년대에 유행한 디자인을 적용한 냉장고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날개 돋치듯 팔리고 있다. 식음료도 마찬가지. 라면이나 주스, 제과 등이 추억의 디자인 버전을 내놓는 방식으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복고 마케팅은 트렌드에 가장 민감한 광고 분야에서도 유용하게 활용된다. 90년대를 완벽히 재현하며 큰 인기를 끈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출연한 배우들은 물밀듯이 몰려드는 광고 섭외 덕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들이 출연하는 광고는 대부분 복고 콘셉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드라마가 현재진행형인 듯한 착각까지 들 정도다. 업계 관계자는 "복고풍 광고는 촌스럽고 유치하고 우스꽝스러운 감성뿐 아니라 유행을 선도하고 시대를 앞서가는 세련된 감각까지 모두 포용해 반응이 좋다"고 설명했다.

    심각한 불황의 늪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애쓰는 건설업계도 복고 마케팅을 이용하고 있다. '성냥갑 아파트'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려고 다양한 외관을 추구한 아파트 건설 시장에 평범하고 단순한 외관으로 돌아가는 변화가 일고 있다. 그간 판상형 아파트는 획일적인 디자인을 탈피하려던 추세로 인해 탑상형(타워형) 아파트에 밀렸다. 그런데 최근 다시 판상형 아파트가 하나둘씩 생기고 있다. 탑상형 아파트가 삼각형, ㄱ자형, 타원형 등 다양한 내부 모양과 조망을 중시한다면 판상형 아파트는 공간 활용성을 중시한다. 업계에 따르면 판상형은 내부 모양이 ㅁ자형으로 단조로운 사각형이지만 탑상형보다 발코니를 더 크게 만들 수 있어 실제 사용 공간이 더 넓다. 아파트 구조가 사각형이면 구조를 나누기 쉬워 요즘 각광받는 틈새형 주택으로 변형하기도 좋다. 사각형 아파트는 탑상형보다 건축비가 싸고 외관 디자인에 들이는 비용이 덜 들어가 분양가를 내리는 데도 일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복고 마케팅. 이혜영 기자
    서비스 업계와 인테리어 업계가 복고 마케팅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포화 상태의 외식업계는 생존을 위해 복고 마케팅을 택한다. 70, 80년대를 그대로 옮겨온 고기집이나 옛 다방을 연상시키는 커피 전문점, 오래된 영화 포스터가 붙어있는 대학가 술집의 느낌을 고스란히 살린 술집 등은 복고풍 인테리어가 필수다.

    자동차업계도 복고 마케팅을 벌인다. 쌍용차가 대표적이다. 쌍용차는 5년 만에 다시 사용한 코란도 브랜드가 인기를 끌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코란도 C, 코란도 투리스모, 코란도 스포츠의 판매가 호조를 보이면서 쌍용차는 2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현대자동차 엑센트, 기아자동차 프라이드 등 과거 브랜드의 스타일이나 명성을 등에 업은 신차를 선보이는 방식은 자동차업계에서 일반적이다. 이 전략은 막대한 마케팅 비용 절감 효과와 함께 옛 브랜드 명성의 후광을 이어받아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주는 효과를 낳는다.

    복고 마케팅은 사라진 브랜드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기사회생'의 마케팅이다. 향수를 되새김질하고자 하는 소비자 마음을 헤아리는 따뜻한 마케팅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거의 단순 재현은 한낱 '추억 팔이'일 뿐이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거나 녹여내지 않은 복고 마케팅은 추억 속 제품의 이미지에조차 먹칠을 할 위험성을 갖고 있다. '그때 그 시절'을 자극하고 당시의 감성을 강조하는 노력과 함께 현재 상품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노력이 필요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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