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영 독단 막기 위한 '사외이사' 허와 실
  • 권력기관·법조계 출신들 다수 포진
    '거수기' 넘어 '바람막이' 역할 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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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준기자 realpeace@hankooki.com
입력시간 : 2014.03.19 15:48:33 | 수정시간 : 2014.03.19 15:48:33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올해도 등기임원 선임, 사업목적 변경, 주식분할 및 병합 등 굵직한 안건들이 다뤄졌지만 그중에서도 신규 사외이사 선임 건이 가장 주목됐다. '거수기' 사외이사 논란이 거센 가운데 이번에도 대기업 상당수가 자사에 우호적이면서도 사정기관의 바람막이가 될 만한 사외이사 영입에 안간힘을 썼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정기 주주총회에서도 권력기관, 법조계 등 '힘 있는' 신규 사외이사들이 대거 선임돼 눈길을 끌었다. 언제든 치고 들어올 수 있는 사정기관의 칼날을 막기 위한 '방패막이'가 필요했던 대기업과 가만히 앉아서 억대에 가까운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자리를 원하는 사외이사 양측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해석된다. 이에 <주간한국>에서는 올해로 17세가 되는 사외이사 제도의 허실을 짚어보고 신규 선임된 10대 그룹 사외이사 중 논란의 소지가 있는 인물들을 권력기관, 법조계, 학계, 내부 출신 등으로 나눠 살펴봤다.

    거수기ㆍ바람막이용 상당수

    사외이사 제도는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태어났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추진된 기업구조조정 방안의 하나로 대주주나 경영진의 독단적인 경영으로 인해 기업경영의 효율성 및 투명성이 저해되는 것으로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사외이사 제도는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의 목적을 전혀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독립성과 전문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이다. 실제로 올해 신규 선임된 사외이사 중에는 총수와 학연으로 얽혀있거나 해당 기업에 오래 근무한 인물들이 다수 포진, 안정적인 노후 대책을 마련하고 있었다. '거수기' 사외이사라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이러한 관행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고 있다.

    정부의 경제민주화 의지가 거세진 최근 몇 년간은 아예 바람막이용 사외이사를 영입하며 더욱 큰 문제를 낳고 있다. 이른바 전관예우를 통해 기업을 향한 사정기관의 칼날을 무디게 하겠다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상당수 기업에서 감사원, 국세청 등 권력기관 출신 고위공직자들을 영입했고, 아예 대형 로펌의 변호사들 같은 법조계 출신들을 대거 포함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이 같은 관행을 막기 위해 국민연금의 역할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를 비롯, 200개사 이상의 주요 기업 지분 5%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국민연금을 통해 바꿔나갈 여지가 크다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 지난달 28일 열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때 의결된 '의결권 행사 지침 개정안'(이하 개정안) 이 눈에 띈다. 개정안에 따르면 사외이사의 성실성과 독립성 강화를 위해 이사회 참석률 기준을 75% 수준(현행 60%)으로 강화했고, 재직 연수 제한도 '당해회사 10년'에서 '당해회사 및 계열회사를 포함해 10년'으로 확대해 사외이사가 계열사를 돌아가며 장기 재임하는 것을 봉쇄했다. 향후 국민연금이 사외이사 제도를 원래의 목적에 맞게 수술할 수 있을지 기대되는 이유다.

    금감원, 감사원 출신 다수 포진

    그렇다면 10대 그룹 상장계열사에서 신규 선임한 사외이사 중 권력기관 출신으로 해당 기업의 바람막이가 될 인물은 누구일까.

    삼성그룹에서는 삼성전기의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된 권태균 전 조달청장이 눈에 띈다. 권 전 청장은 기획재정부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로 비서실장, 무역투자실장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최근 이덕훈 전 우리은행장으로 낙점된 차기 수출입은행장 자리에 유력 후보로 하마평이 오르내리기도 했다.

    삼성카드에서는 양성용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를 영입했다. 양 전 부원장보는 지난 3년간 법무법인 율촌에서 고문으로 활동, 퇴직 공무원이 2년 이내에 업무관련성 있는 기업에 취업하지 못하도록 한 '공직자윤리법 규정'을 비켜났다. 삼성카드의 경우 지난달까지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은 터라 양 전 부원장보의 사외이사 취임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현대차그룹에서는 감사원 출신들을 사외이사로 영입, 세간의 시선을 끌었다. 현대로템과 현대건설은 각각 하복동, 박성득 전 감사원 감사위원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하 전 감사위원은 재정금융감사국장 당시 신용카드사태 특감을 실시, 관련 경제부처의 잘못을 예리하게 잡아내는 등 한때 감사원의 재정ㆍ금융통으로 손꼽혔던 인물이다. 그러나 2011년 부산저축은행 감사 때 로비스트 접촉 의혹을 받으며 감사원을 떠난 경력이 있어 현대로템의 이번 사외이사 선임에도 뒷말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박 전 감사위원은 대구고등검찰청 출신으로 2008년부터 감사위원을 맡은 바 있다.

    사정기관 표적 롯데가 최다 선임

    옛 재무부 관료를 뜻하는 모피아 출신 상당수도 10대 그룹 상장계열사의 사외이사 신규 선임됐다. SK그룹 계열사인 SK네트웍스는 허용석 전 관세청장을 영입했다. 허 전 관세청장은 재정경제부에서 소비세제과장, 조세정책과장, 세제실장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2010년 현대엘리베이터 사내이사 선임이 예정돼있었으나 공직자윤리법에 걸려 무산된 바 있다. 국세청 출신으로는 롯데쇼핑의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 SKC솔믹스의 이승재 전 중부지방국세청장, HMC투자증권의 임성균 전 광주지방국세청장이 눈에 띈다.

    10대 그룹 중 권력기관 출신 사외이사를 가장 많이 신규 선임한 곳은 롯데그룹이었다. 최근 사정기관의 표적으로 지목되고 있는 만큼 사외이사들을 이용, 집중포화를 피해 보자는 의도로 해석된다. 대표적인 인물이 롯데케미칼에 영입된 정동기 전 대통령실민정수석비서관이다. 대표적인 MB맨으로 분류되는 정 전 비서관은 2011년 감사원장 후보에 올랐으나 지명된 지 12일 만에 사퇴한 바 있다. 또한, 롯데케미칼은 박석환 전 외교통상부 제1차관을 신규선임, 강력한 지원군을 확보하기도 했다.

    한편, 한화그룹의 ㈜한화에서는 이례적으로 군인 출신인 황의돈 전 육군본부 참모총장을 영입해 눈길을 끌었다. 부동산 투기 의혹과 관련해 2010년 자리에서 물러난 황 전 참모총장은 이후 해외구호단체의 회장을 맡아오고 있다.

    로펌 출신 영입 많아

    법조계 출신 사외이사들도 10대 그룹 사외이사 대열에 대거 합류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GS글로벌의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된 김경종 전 서울북부지법원장이 꼽힌다. 사시19회 출신으로 울산, 대전 등에서 지법원장을 역임했던 김 전 지법원장은 후배들의 길을 터주기 위해 2010년 사표를 제출한 바 있다.

    롯데그룹의 롯데하이마트와 롯데제과는 각각 최영홍 전 국방부 검찰부장과 송영천 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최 전 검찰부장은 공정거래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냈고 현재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송 전 부장판사는 법무법인 새빛의 대표 변호사를 거쳐 자신이 설립한 법무법인 세한의 대표변호사 회장으로 있다.

    송 전 부장판사 이외에도 대형 로펌에 몸담고 있는 법조계 인사들이 사외이사로 영입된 경우가 많다. 한진그룹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은 법무법인 광장의 안용석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공정거래 전문가로 꼽히는 안 변호사는 현재 S-OIL의 사외이사도 겸하고 있다. S-OIL의 경우 최근까지 대한항공이 지분을 보유했던 기업으로 안 변호사의 대한항공 사외이사 영입이 더욱 주목된다.

    두산그룹의 두산인프라코어도 법무법인 율촌의 대표변호사인 윤세라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경쟁정책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윤 변호사는 2012년부터 SK하이닉스의 사외이사도 맡아오고 있다.

    독립성 현저히 떨어져

    신규 선임된 10대 그룹 사외이사 중에는 학계 출신도 상당수 포진해있다. 물론 자신의 전공 학문 분야에서는 전문가라 꼽힐 수 있겠지만 그들 중에서는 총수와 특수관계에 있거나 그동안 사외이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이들이 많아 세간의 빈축을 샀다.

    삼성증권의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된 김경수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삼성그룹이 재단을 운영하는 성균관대학교에 재직 중이다. 신규 선임은 아니지만 삼성증권의 사외이사로 재선임 되는 유영상 서울대학교 기계항공학부 초빙교수는 김석 삼성증권 사장과 서울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로 독립성 논란을 낳고 있다.

    두산그룹의 두산엔진은 박범훈 전 중앙대학교 총장을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두산엔진의 업무와 전혀 상관이 없는 작곡과 출신의 박 전 총장을 신규 선임한 배경에는 두산그룹이 중앙대학교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 적잖이 작용했다고 해석된다. 2007년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 캠프에 참여했고 2011년에는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 임명되는 등 정치권에 몸담았던 박 전 총장의 이력도 이번 영입의 이유로 꼽힌다.

    삼성전기의 사외이사로 재선임된 한민구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명예교수는 현대엘리베이터와 ㈜효성의 사외이사 전력이 문제가 되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현대상선을 부당지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고 ㈜효성은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기소된 상태다. 두 회사 모두 한 명예교수가 사외이사로 있을 당시 문제가 발생한 상황이라 사외이사로서의 감독이 소홀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임직원 출신 보은 자리?

    내부 임직원 출신 등 그룹 관계자들도 10대 그룹의 사외이사로 다수 합류, 문제의 소지가 큰 상태다. 내부 출신 사외이사들의 경우 대주주나 경영진의 독단적 경영을 감독, 저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10대 그룹 중 내부 출신 사외이사를 가장 많이 신규 선임한 곳은 롯데그룹이었다. 퇴직한 임직원을 위해 사외이사 자리를 비어놓은 것이 아니냐는 손가락질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고병기 전 롯데알미늄 상무는 롯데쇼핑에, 김광태 전 롯데중앙연구소 안전센터장은 롯데칠성음료에, 임지택 전 롯데제과 경리ㆍ구매담당 상무는 롯데케미칼에 각각 영입됐다.

    그밖에 삼성증권은 김남수 전 삼성생명 경영지원실장 전무를, SKC는 안동준 전 SK하이닉스 생산기술세터장 상무를, ㈜한화는 노선호 전 한화증권 재무지원본부장 상무를 사외이사로 영입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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