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훈 중위 사망 사건'의 진실
  • 국방부 증거조작 의혹 15년째 제기
    설득력 없는 논거 '자살' 입장 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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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기자 jjpark@hankooki.com
입력시간 : 2014.04.07 13:39:02 | 수정시간 : 2014.04.10 17:01:06
    • 241GP 김훈 중위 양손에 종이봉지 씌운 것.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으로 기소된 유우성(34)씨 재판이 국가정보원의 증거조작 의혹과 맞물려 정치 사회적 파장을 낳고 있다. 1심 재판부가 유씨에 대해 무죄 판결을 하자 검찰이 1심 판결에 불복, 새로운 증거로 제시한 유씨의 북한 출입국 기록이 조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실제 검찰이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한 증거 기록 3건이 위조된 문서일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국정원과 검찰을 비롯 공권력에 대한 신뢰 추락으로 박근혜정부에까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군(軍) 의문사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김훈 중위 사망사건'에도 국방부 및 관련 기관의 증거 조작, 은폐 의혹이 15년째 제기되고 있어 군에 대한 불신이 현 정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훈 중위 유족이 국가 4대 기관의 판단 등을 근거로 '타살'을 주장하는 데 반해 국방부는 설득력이 의심받는 논거들로 '자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 중위 유족은 군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증거를 조작하고 거짓 주장을 펴와 유족을 고통스럽게 하고 군인 가족과 국민에 불신을 자초, 군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국민의 군대, 신뢰받는 군대, 정의로운 군대여야 국가의 초석이 될 수 있다"며 "거짓말 하는 군은 국력을 약화시키고 국민으로부터 외면받게 된다"고 강조한다.

    • 사건 현장의 철모와 권총.
    김훈 중위의 사망을 둘러싼 15년 간의 '진실게임'의 실체를 추적했다.

    자살-타살 15년 공방의 진실

    김훈 중위는 제15대 대통령(김대중) 취임식 하루 전인 1998년 2월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초소(241GP)에서 의문의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국방부는 당일 현장 검시도 하기 전에 '자살'로 발표했고, 1~3차 수사 및 최근에 이르기까지 자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방부는 육군이 미군 범죄수사대(CID)와 합동으로 진행한 1차 수사(1998.2.24~1998.4.29)는 물론, 육군본부 검찰부의 2차 수사(1998. 6. 1~1998. 11. 29), 국방부장관의 지시로 설치된 특별합동조사단의 3차 수사(1998. 12. 9~1999. 4. 14.), 그리고 최근의 시험결과에서도 김훈 중위가 자신의 권총을 이용해 자살한 것으로 일관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자살의 물증은 제시하지 못했고, 군생활 부적응과 이에 따른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로 귀결지었다.

    • 발사자 10명 전원의 발사한 손에 뇌관화약 검출됨(2012.3.22).
    하지만 국방부와는 달리 국회(국방위원회), 대법원, 대통령 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 3개 최고 국가기관과 국가권익위원회는 자살 결론을 수용하지 않았다.

    1999년 국회 국방위원회에 설치되었던 '김훈 중위 사건 진상규명소위원회'는 그해 5월 31일 부실 수사에 대한 의문 15가지를 제기하며 '김훈 중위가 타살됐을 수 있다'는 취지의 의정 활동 보고서를 펴냈다. 대법원도 2006년 12월 김훈 중위 사건 관련 판결을 통해 "초동수사가 잘못돼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라고 판시했다. 3년간 사건을 조사했던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2009년 11월 '진상규명 불능'결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국방부가 '자살' 입장을 고수하자 유족은 2011년 9월 권익위에 사건 재조사후 순직 인정을 받게 해달라는 내용의 민원을 제기했고, 이에 권익위는 국방부와 합의해 2012년 3월22일 총기 격발실험 등 쟁점 사안들에 대해 재조사를 진행한 후 김 중위의 사인을 자살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이어 권익위는 그해 8월6일 김 중위 사건에 대해 '진상규명 불능 결정에 따른 순직처리 권고안'을 육군본부에 보냈다.

    그러나 국방부는 3개월 뒤인 11월26일 유족에게 김 중위 사건을 타살로 결론지을 수 없다고 통보를 하였다. 또한 작년 2월7일 공문에서 2012년 5월 권익위와 전공사상 분류기준표 2-1항 (공무수행중 사망)에 의거한 진상규명불능에 따른 순직처리를 하기로 한 사전 협의를 부인하였다. 최근에는 김 중위의 사인을 정신질환으로 인한 자살로 결론지으며 순직처리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여 유족을 분노케 했다.

    초동수사 실패가 사건 왜곡

    • 뇌관화약 감정서.
    김훈 중위 사건은 초동수사에서부터 진행과정, 최종 발표에 이르까지 오류와 반복된 거짓말, 억지 주장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특히 초동 수사 부실은 김훈 중위 죽음의 진실을 덮은 '대못'으로 작용했다. 더욱이 한국군 뿐만 아니라 미군도 부실 수사와 거짓말에 보조를 맞춘 것으로 드러났다.

    김훈 중위는 98년 2월24일 12시20분경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241 GP에서 소속 부대 박모 일병에 의해 숨진 채 발견됐다. 미군수사관(CID)은 오후 3시30분에 사건현장에 도착했고, 한국군 수사관은 오후 4시40분쯤에 부대에 도착했다.

    그런데 김훈 중위 사망(자살) 소식은 오후 4시43분에 연합뉴스를 통해 1보가 나갔고 이어 YTN 등 방송사와 신문에 보도됐다. 한국군 수사관이 수사를 진행하기도 전에 '자살'로 보도가 된 것이다. 김 중위 유족과 자료에 따르면 국방부는 김 중위 사인에 대한 수사도 하기 전에 국방부 출입기자들에게 '자살'로 브리핑했다.

    미군 또한 김훈 중위 사건을 왜곡하는데 동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미연합군사령부의 사고 당일 '상황보고' 및 'JSA 경비 소대장 사망 관련 상황조치' 문건에 따르면 미군 역시 군수사관(CID)이 도착하기도 전에 '자살'로 상황보고를 했다. 미군이 자살로 보고를 한 때는 오후 2시20분으로, 미군 수사관은 그보다 1시간 뒤인 오후 3시30분에 현장에 도착했다.

    대법원은 "만일 초동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더라면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이를 소홀히 하여 사건의 실체를 불분명하게 만들었고 현재까지도 이 사건 사고가 자살인지 타살인지 명확히 결론을 내릴 수 없도록 하였다"고 판결했다.(2006년 12월7일).

    • 국방부 주장인 오른손 엄지 격발(2012.3.22).
    또한 현장을 장악한 미군 수사대(CID)는 현장을 치우고 김훈 중위 시신을 닦아내는 등 수사의 기본을 훼손했고, 한국군은 사병들의 군복, 화약흔, 총기 확보 등 기초 조치를 아예 무시했다.

    현장의 '타살' 추정 증거들

    김훈 중위가 사망한 벙커 안은 김 중위의 사망이 '자살'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물증들이 여럿 있다.

    우선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철모와 총이다. 당시 국방부는 이 철모에 대해 현장에 출동했던 '미군 군의관'의 것이라고 공식힉 발표했다. 그러나 당일 문제의 미군 군의관과 함께 출동한 위생병 이모 병장은 미군 군의관의 것이 아니라고 증언했다.

    실제 철모는 더럽고 헤진 상태였고 위장용 녹색크림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A급 철모'를 쓰는 미군 군의관의 것은 아니다. 김훈 중위의 것도 아니라면 철모의 주인은 김 중위의 사망과 관련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현장에서 발견된 총도 김 중위가 소지해 온 것과 다른 것이라는 논란이 있고, 총과 김 중위의 거리가 40센티 이상인 점도 '타살' 가능성을 높여준다. 법의학계와 관련 저서들에서는 자살자의 경우 총이 30센티 이내에 놓여 있다는 게 통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밖에 김 중위 사망 현장에 있던 클레이모어 스위치 박스가 파손돼 있고, 손목시계가 둔탁한 물체에 맞아 깨져 있는 등 격투나 방어흔이 보이는 점도 군 수사기관은 외면했다.

    이는 김 중위의 머리 정수리 부분의 혈종이 크게 나타난 것과 관련해 중요한 단서들이다.

    김 중위의 사인을 자살로 인정한 법의학자들은 혈종 부분에 대해 앞 뒤가 맞지 않는 논리를 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김훈 오른손의 진실

    김훈 중위의 죽음을 둘러싼 최대 미스터리는 김 중위의 왼손바닥에 나타난 뇌관 화약과 오른손에서 뇌관화약이 검출되지 않은 점이다,

    국방부가 2011년 10월 17일 당시 민주당 서종표원에게 김훈 중위의 자살 판단 근거 자료로 제출한 '뇌관화약감정서'(손에 대한 뇌관화약 검출여부 확인) 사본 일체,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 화약감정결과(99.2.6) 및 미국 군수사연구소 증적(證跡)과 보고(98.3.25)는 자살 결론과는 상반된 내용을 담고 있다.

    국방부는 김훈 중위의 자살 근거로 미국 군 수사연구소 증적 자료(98년 3월 25일)에 나타난 왼손 손바닥의 화약 잔재를 제시했다. 그러나 미 수사 자료는 오히려 김훈 중위가 자살하지 않은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즉 '자살'이라면 앞서 M9 베레타 피스톨의 권총발사 시험 감정서에도 나타났듯 발사한 오른손에 100 % 뇌관 화약성분이 검출돼야 한다. 하지만 미 증적보고서에는 그러한 내용이 없다. 즉 김훈 중위가 자살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더구나 미 보고서는 '왼손 손바닥에 화약 잔재가 있다는 것만으로 자살자로 귀결되어져서는 안된다는 사항에 유의할 것'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뇌관화약 감정서'는 김훈 중위 사건의 핵심을 가르는 결정적 자료다. 사건 현장의 권총과 같은 M9베레타 피스톨로 국방부 요원 3명을 상대로 실험한 결과 발사한 3명 모두의 오른손에 뇌관 화약 성분이 검출됐다.(99.2.4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서)

    권총을 '발사한 손'에서 뇌관화약성분(바륨,안티몬)이 나타나면 발사자이고, 발사한 손에 뇌관화약성분이 없으면 발사자가 아니다. 그 이유는 피스톨은 탄피 방출구 쪽으로, 소량의 뇌관화약성분이 나오기 때문에, 발사한 손에만 부착된다. 그러나 김훈 중위는 발사했다는 오른손에 일체 화약 흔적이 없다. 즉 '자살'이 아니라는 증거다.

    국방부는 김훈 중위 좌 우 어깨 부위에 무연화약 성분이 검출된 것을 근거로 '자살'로 규정했다. 그러나 M9베레타 피스톨은 총구 쪽에서 나오는 무연화약은 양이 많아 주변에 넓게 퍼져 근처에 있는 사람의 옷에도 부착되므로 권총 발사자 식별에 이용하지 않는 게 세계적 공통교리이다.

    국방부는 1998년 10월 2일자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시험결과에 "제시된 증거물의 시험결과만으로는 발사자가 변사자 자신인지 논단할 수 없음"이라고 적시돼 있음에도 특조단 수사발표문에는 "국과수 이00 등 3명의 재감정결과 김훈 중위의 야전잠바 좌우측 어깨에서 화약성분이 검출되었으며 이는 김훈 중위가 사격하였음을 의미한다"고 기록을 조작하기까지 했다

    김훈 중위의 오른쪽 손에 화약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자 국방부는 발사자의 38%만이 뇌관화약이 검출된다는 논문 통계를 근거로 제시하며 '자살' 결론을 유지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를 뿐더러 통계를 조작했다는 게 유족 측의 주장이다. 즉 38% 통계는 김훈 중위의 '타살'을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인 오른쪽 손에 화약이 없는 것을 의도적으로 불식시키기 위해 자료를 왜곡했다는 것이다.

    실제 국방부가 인용한 통계는 피스톨과 리볼버 총을 구분하지 않고 종합해 낸 결과다. 유족은 '김훈 중위가 권총을 발사했으나 화약이 안나타난 것'이라고 강조하기 위해 이 통계를 왜곡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통계를 내려면 권총의 종류, 화약량, 발사장소와 위치(실내, 실외), 기상관계 등을 구분해야 정확한 결론에 이르는데 국방부는 이러한 것들을 무시한 통계 자료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유족은 특히 국방부가 자체 권총발사시험 결과가 있는데, 이를 외면하고 논문 통계를 이용해 김훈의 사인을 자살로 조작했다고 주장한다.

    국회, 권익위, 유족 측의 요구로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벌여온 국방부 조사본부는 직접 '진실'을 밝히기 위해 2012년 3월 22일 서울 강서구 소재 특전사 공수여단 실내사격장에서 김훈 중위가 사망하던 당시 판문점 241GP의 제반 조건을 그대로 재현한 가운데 총기실험을 실시했다. 김훈 중위 사인을 둘러싸고 최대 쟁점이던 '누가 권총을 발사했는가'를 과학적으로 가리기 위해서였다. 오른손잡이인 김훈 중위가 스스로 피스톨 권총(M9 베레타)을 격발했다면 그의 오른손에 뇌관화약 잔재물이 남아 있어야만 자살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다.

    실험은 4개 그룹으로 구분해 정상적인 권총 자살 자세(오른손 검지손가락 격발)를 취한 5명과 비정상적인 자세(오른손 엄지손가락 격발)로 행한 5명에게서 각각 격발 4시간 후 시료를 채취했고 정상자세, 비정상 자세로 실험한 각 1명에게서는 격발 후 즉시 시료를 채취했다. 또 김훈 중위 사망 초기 미군 군의관 등이 현장을 오고 간 주변 정황을 재현하기 위해 발사자가 4시간 동안 김 중위의 발견 당시와 유사한 자세로 대기하도록 했다. 각 실험자의 왼손 손등 및 손바닥, 오른손 손등 및 손바닥에서 채취한 시료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졌다. 그리고 실험자 전원의 오른손 및 왼손 손등과 손바닥에서 뇌관화약 잔사인 납, 바륨 및 안티몬이 검출됐다.

    그런데 김훈 중위의 오른손에서는 뇌관화약이 검출되지 않았다. 또 3월 22일 실험결과에 의하면 그동안 김훈 중위 자살론자들이 법의학적 자살 근거로 내세웠던 "김훈 중위가 왼손으로 총열을 잡고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겨서 격발(비정상적인 자세)했기 때문에 오른손에서 뇌관화약 잔재가 검출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한다"라는 논거도 무너지게 된다. 다시말해 김훈 중위는 스스로 M9 베레타 권총을 격발(자살)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러한 과학적 근거와 합리적 논거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여전히 '자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훈 중위 부친 김척씨는 "정직한 군대야말로 국민의 군대이고 거짓말을 하는 군은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없다"며 "군 의문사 사건에 대해서도 군보다 국민의 입장에서 접근해야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께는 국가기관의 조사 결과가 존중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조치를 국민 한 사람으로, 군의 가족으로서 진심으로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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