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숨 돌린 코오롱, 2차전 승리 가능할까
  • 파기환송됐지만 불안요소 여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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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준기자 realpeace@hankooki.com
입력시간 : 2014.04.21 10:57:03 | 수정시간 : 2014.04.21 10:57:03
    • 듀폰코리아
    가벼우면서도 강철보다 5배나 단단해 총알도 뚫지 못하는 섬유가 있다. 섭씨 500도에서도 타지 않으며 화학약품에 대한 내성도 강하지만 가공은 오히려 편리하다. 이 같은 능력을 지닌 섬유계의 슈퍼 히어로의 이름은 바로 '아라미드(Aramid)'다. 1965년 개발돼 1973년 상용화됐지만 방탄복 및 방탄헬멧, 고성능 타이어, 브레이크 마찰재, 광케이블 보강제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의 활용도가 여전히 무궁무진해 미래먹거리로서의 전망도 밝다.

    '꿈의 섬유'로 불리는 아라미드이지만 코오롱에게는 지난 몇 년간 악몽으로 다가왔다. 듀폰과의 영업비밀 침해 소송 1심 패소로 1조원에 가까운 배상금이 책정, 천국과 지옥을 모두 맛본 것이다. 다행히 지난 3일 항소심에서 파기환송이 결정,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놨지만 향후 전망도 장밋빛만은 아니라 귀추가 주목된다.

    원점으로 돌아가

    코오롱인더스트리(이하 코오롱)와 듀폰의 소송전은 2009년 시작됐다. 그해 2월 듀폰은 코오롱이 아라미드 관련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 위치한 동부 연방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또한, 듀폰은 자사의 영업비밀을 코오롱에 넘긴 마이클 미첼을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신고했다. FBI는 미첼의 집을 압수수색해 영업비밀이 담긴 문서와 컴퓨터를 찾아냈고 그를 기소했다. 이듬해 3월 미국 연방지방법원은 미첼의 혐의를 인정, 18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 코오롱
    미첼의 구속으로 높아졌던 코오롱 측의 불안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로 다가왔다. 2011년 9월, 1심 배심원단이 듀폰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코오롱이 듀폰의 149개 영업비밀을 침해한 사실을 인정한 배심원단 9억1,990만달러, 한화로 1조원이 넘는 금액을 배상하라고 평결했다. 판사 선고 때 배상금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해 11월 동부 연방지방법원은 배상금에 징벌적 손해배상금 35만달러까지 더한 9억2,025만달러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코오롱그룹 전체의 연간 순이익이 3,000억원대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1조원을 훌쩍 넘는 배상금은 충격이었다. 실제로 1심 판결 이후 코오롱은 매 분기 100억원 내외의 충당금을 쌓아오며 재무적 부담을 겪어 왔다. 공장 증설 등 신규 설비투자에 제동이 걸렸음은 물론이다.

    1심 판결 이후에도 듀폰의 파상공세는 계속됐다. 듀폰은 1심 판결에 근거해 미국 18개 주에서 한국계 은행에 예치된 코오롱인더스트리 예금에 가압류를 걸거나 미국 내 매출채권에 대한 집행 절차를 진행했고 지난해 말까지 약 3,500만달러 규모의 매출채권을 받아갔다. 지난 2월에는 1심에서 계류 중이었던 변호사 비용 1,883만달러 배상 판결까지 나오며 코오롱은 침몰하는 듯했다.

    코오롱 직원들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기 시작한 것은 지난 3일 열린 항소심에서 판정승을 거두면서부터다. 항소심 재판부는 듀폰 손을 들어준 1심 재판부의 판결을 무효화하고 파기환송을 결정했다. 1심 재판부가 코오롱 측이 제시한 증거를 배제한 사실이 부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미국의 자국이기주의에 당했다며 수시로 억울함을 토로해왔던 코오롱으로서는 충분한 무장을 하고 원점으로 돌아가 시비를 가릴 수 있게 된 셈이다.

    또한, 항소심 재판부는 1심의 판사 교체도 파기환송 조건으로 내걸었다. 코오롱 측은 1심 재판을 담당한 로버트 페인 판사가 듀폰 측 변호를 맡은 로펌 맥과이어 우즈의 파트너 변호사로 21년간 일했던 사실을 문제 삼아왔다.

    재판 불안요소 여전

    본래 섬유업계 관계자 대부분은 코오롱이 이번 항소심에서도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분위기상 승소까지는 불가능하니 천문학적인 배상금 액수라도 줄어들면 다행이라는 분위기가 지배했다. 파기환송이라는 예상 밖의 결과에 코오롱을 비롯한 재계가 잔뜩 고무돼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 여론의 분위기처럼 이번 판결이 연전연패로 꽉 막혔던 코오롱의 숨통을 트이게 해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미국법 전문가들은 다시 1심으로 돌아가더라도 코오롱이 승소하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1심 당시 코오롱 측이 배제됐다는 증거가 웬만큼 대단하지 않고서는 현 상황을 뒤집지 못하리라는 지적이다.

    우선 전 듀폰 직원인 미첼과 컨설팅 계약을 체결했고, 진위나 경중과는 무관하게 영업비밀로 인지될 수 있는 무언가를 미첼로부터 넘겨받았다는 점이 문제다. 미국은 지적재산권에 대한 인식이 희박한 우리나라와 달리 영업비밀 보호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일단 한번 누설되면 보호받지 못하기에 공개를 조건으로 배타적인 독점권을 향유할 수 있는 특허보다 더욱 민감하게 느끼는 것이다. 또한, 특허와 비교해 침해 여부를 둘러싼 판단 기준이 애매모호한 영업비밀의 특성상 재판이 원고 측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코오롱에게는 부담일 수 있다.

    이에 대해 코오롱 측은 "듀폰 측이 주장하는 영업비밀들이 이미 공개된 것이라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듀폰 측은 "단순히 일반적인 기술만이 아니라 듀폰만이 가지고 있는 공정기술을 빼돌렸다"는 입장이라 문제가 쉬이 봉합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사에서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지만 형사 소송이 마무리되지 않은 것도 코오롱에게는 부담이다. 우리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같은 건일지라도 민ㆍ형사 간 소송이 별개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영업비밀 침해 사건이 발생할 경우, 민사에서는 통일영업비밀보호법에, 형사는 산업스파이방지법에 저촉된다. 산업스파이방지법의 경우 지난해 제재를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됐다. 민사를 진행하며 배상금이 줄더라도 형사상 벌금이 만만치 않게 나올 가능성도 적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코오롱이 증거 보존 조치(discovery)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상대방 당사자에게 필요한 증거를 반드시 보존 및 제공해야만 한다. 여기에는 종이문서뿐만 아니라 이메일 서버 및 파일 서버 내의 전자문서, 사무용 PC나 모바일 기기상의 전자문서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러한 조처를 하지 않아 주요 증거가 변경ㆍ파기된 정황이 드러날 경우 당사자에게 유리한 증거를 채택하지 않거나 사실관계를 불리하게 인정하는 등 소송상 막대한 불이익을 받게 된다. 심한 경우 바로 패소판결이 나올 수 있을 정도다.

    과거 1심에서 코오롱은 고의로 사건 관련 이메일 1만7,811건을 삭제했다는 이유로 제재를 받은 바 있다. 이에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로버트 페인 판사는 배심원들에게 "증거를 인멸한 코오롱을 제재할 필요가 있다"며 "제재를 위한 각종 비용을 듀폰 측에 보상하도록 해야한다"고 권고했다. 파기환송을 하더라도 이메일을 삭제했던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새로운 판사 또한 코오롱의 증거 인멸에 대해 강하게 문제제기할 것이고 이는 재판이 결국 코오롱 측에 불리하게 돌아가게 만들 수 있다.

    이에 대해 코오롱 관계자는 "당시 삭제했던 이메일을 모두 복구해서 소명이 끝났다"며 "단순 해프닝으로 넘어간 사안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일각에서는 보수적인 버지니아주의 분위기도 코오롱에 불리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버지니아주는 미국 보수의 본산인 남부에서도 보수적인 주로 꼽힌다. 2008년 미국 대선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승리하기 전까지 44년간 공화당의 텃밭이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동부 연방지방법원이 위치한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는 듀폰의 아라미드 공장이 있는 점도 불안요소다. 코오롱이 배심원단 선정 과정에 심혈을 기울인다고 하더라도 이들의 성향이 평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적지 않다. 코오롱이 축배를 들기엔 아직 이르다는 얘기가 비중있게 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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