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독]조로증 앓는 ‘국립 한국농수산대학’, 정예인력 양성 차질
  • 연간 대학 정원의 10%가 휴학-자퇴 등 학업 중단
    낡은 커리큘럼 등 학생 수요에 맞게 전면 개편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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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찬영 기자 3sanun@hankooki.com
입력시간 : 2017.11.07 09:49:51 | 수정시간 : 2017.11.08 09:26:36
    [데일리한국 송찬영 환경/교육 전문기자] # 강원도에 사는 백선미(20세, 가명)씨는 최근 한국농수산대학을 자퇴했다. 강원지역 최고의 농업고등학교인 H농고를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농수산 분야의 사관학교라 할 수 있는 이 곳에 입학했지만, 학교 공부가 너무 재미없고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관계는 좋았어요. 건물도 새 건물이고, 환경적으로 크게 불편한 점은 없었어요. 수업이 끝나면 아르바이트도 했지요. 그런데 견디기 힘든 부분은 매일 지겨운 수업시간을 듣는 것이었어요. 50cm, 30cm 간격으로 작물을 심는 이론 시간은 정말 싫었어요. 그건 이미 고등학교에서 다 배웠던 것이고, 집에 와서도 시간나면 아빠와 실제 해야 하는 일이었어요. 교수님들도 대부분 할아버지들 같았고, 유통이나 ICT를 이용한 최첨단 농법 관련 강의는 언제나 수강 인원이 다 차 듣지도 못했거든요.”

    20년 전 귀농해 이 지역의 친환경 농업을 이끌고 있는 아버지 백승진 씨(56)는 옆에서 물끄러미 딸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그는 전라남도 한 시골마을에서 농고를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 대학 졸업 뒤 남들이 부러워하는 KT에서 근무하다 강원도로 귀농했다.

    “약 안치고 어떻게 농사가 되냐”는 주변의 비아냥거림에도 꿋꿋이 한우, 옥수수, 브로콜리, 감자, 조, 수수, 기장, 호박, 무 등을 친환경 농사로 지어왔다. 10년 전부터는 적극적으로 후배들을 이끌며, 이 지역 대표적 친환경 농업인이 됐다.

    바람이라면, 선미 씨가 아버지 뜻을 이어 땅에 대한, 먹을거리에 대한, 환경에 대한 소중한 가치를 잇고, 새로운 시대 변화에 맞춰 우리 농업을 이끌어갔으면 하는 것이었다.

    “대학 입학 때만 해도 정말 자랑스러웠어요. 축하도 많이 받았습니다. 좋겠다는 부러움도 많이 샀지요. 그런데 지금은 뒤통수 맞은 기분이에요. 농어촌에 청년이 없잖아요. 남성도 아닌 여성이 농고를 나왔고, 농수산대학에 들어갔다면 농업에 대한 꿈이 있었을 것 아닌가요. 저도 같은 꿈을 꾸었는데, 정말 실망스럽습니다. 더구나 뭐든지 부모 짐을 덜어주려고 했던 딸인데, 수업료 기숙사비까지 반납하면서까지 학교를 자퇴하겠다니 얼마나 싫으면 그랬겠습니까?”

    # 경상도에서 축산을 하고 있는 이 모 씨(55세)는 농수산대 대가축학과를 다니다 군에 간 아들을 두고 있다. 아들은 일반고를 나와 농수산대에 다니다 군대에 갔다. 영농을 하게 되면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아들은 굳이 군대에 가겠다고 했다.

    “제가 바쁠 땐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와 함께 소밥을 주곤 했어요. 고등학교 입학해서는 요즘 취업도 안 되는데, 농수산대 가서 아빠 일을 물려받겠다고 하더군요. 1년간 학교를 다녀보더니 맘이 변했어요. 한창 젊은 나이에 맨날 냄새나는 축사에서 지내야 하니 그도 그럴만하지요. 요즘 힘든 일은 죄다 외국인 노동자 쓰는데, 대학 들어가서 소똥 돼지똥 치우고 하니 할 맛나겠어요. 군대 가면서 그러더군요. 학교에 계속 다닐 자신이 없다고, 20대에는 다른 경험 많이 하고 싶다고, 농사는 나이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30대 넘어서도 들어올 수가 있으니 일단 군대 다녀오겠다고...”


    대한민국 농수산 분야의 사관학교라 불리는 국립한국농수산대학이 위기를 맞고 있다. 매년 입학경쟁률이 4:1이 넘는 등 겉으로는 인기가 있는 듯 보이지만, 해마다 휴학생과 자퇴생을 포함해 전체 학생의 10% 가량이 학업을 중단하는 등 속은 곪아가고 있다는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라는 요즘,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커리큘럼은 20년째 바뀌지 않고 있고, 연구와 교육을 전담하는 교수진은 상당수 낡고 노쇠한 상태 이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7일 데일리한국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농수산대에서 지난 2012년부터 2017년 현재까지 자퇴나 휴학한 학생은 총 642명에 달한다. 자퇴생이 148명, 휴학생이 494명이다.

    이를 연도별로 살펴보면, 지난 2012년 66명이었던 자퇴 및 휴학생 숫자가 2013년 87명, 2014년 108명으로 크게 늘었다. 2015년 98명으로 잠시 줄어들었지만, 2016년 137명으로 크게 늘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늘어 11월 현재 자퇴 및 휴학생 수는 총 146명이다. 이 가운데 자퇴생은 22명, 휴학생은 124명이다.

    현재 한국농수산대가 식량작물학과 특용작물학과 대가축학과 수산양식학과 등 총 11개학과에 1250명이 재학 중인 것을 감안하면, 올해 기준 총 학생정원의 10%이상이 학업 도중에 '이탈'하고 있다는 얘기다.

    휴학생과 자퇴생을 분석해 보면, 같은 기간 동안 자퇴생의 경우 1학년이 72명으로 가장 많다. 2학년 때 자퇴한 학생은 51명, 3학년 자퇴생은 25명이다.

    반면, 휴학생은 같은 기간 총 494명 가운데 3학년이 180명으로 가장 많다. 1학년은 135명으로 가장 적다.

    눈길을 끄는 것은 휴학생 중 상당수가 군 입대로 휴학을 한다는 점이다. 총 494명의 휴학생 가운데 143명이 이에 해당했다.

    한국농수산대를 졸업 후 영농후계자가 될 경우 병역법상 산업기능요원으로 대체복무를 한다. 한국농수산대 졸업생의 경우 영농후계자 1순위이므로 거의 현역으로 군복무를 하지 않아도 된다.

    상식적으로 이 대학을 통해 운영되는 군(軍)대체 복무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거나, 학교에 대한 염증이 났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다.

    강원도 소재 대학의 농업관련 한 교수는 “농수산대 입학생의 대부분은 고등학교를 바로 졸업한 학생들로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욕구가 강하고, 농업에 대한 많은 희망을 품고 들어갔을 것”이라며 “대학이 실무 중심이다 보니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많이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졌을 수도 있다. 학교가 저학년의 경우 흥미를 유발할 교과목을 개발 배치했어야 했다”고 해석했다.

    그는 또 “고학년 휴학생의 경우 등록금과 기숙사비를 반납해야 하는 부담이 있기 때문에 자퇴 대신 휴학을 했을 수도 있다. 휴학 사유 중 질병이나 어학연수 등이 31건에 불과한 것을 보면, 학교를 졸업하면 안되는 무언가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한국농수산대 관계자는 “저 학년 자퇴의 경우는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면서 “고학년 휴학생의 경우 학교 졸업 후 바로 영농을 해야 하는데, 기반이 갖춰지지 않아 휴학하는 경우가 있어 학교에서도 창업 지원 등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농림축산식품부에서도 이를 감안해 청년농지은행제 도입 등 보완점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농수산대학의 낡은 커리큘럼도 문제로 지적된다. 실제 한국농수산대학의 올해 전학과의 커리큘럼을 살펴보면, 아무리 실무중심교육이라고 하지만 학생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과목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전학과 공통인 교양(선택 필수 포함, 총 8학점)에는 교양특강과 외국어, 생활체육, 농업 CEO 특강, 실용논문 작성 등 만이 선택할 수 있게 돼있다. 공통기초의 경우, 눈에 띄는 과목은 ‘SNS 전자상거래’와 ‘유용곤충이용’ 정도다.

    학생들에 따르면, 전문교과 전공 필수와 선택 공동기초 선택 과목 역시 수년째 바뀌지 않고 있고, 이들이 수강을 원하는 과목의 경우 신청자가 많아 수업을 들을 수 없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농진청 출신의 강원도 한 사립대 농생명과학대학의 한 교수는 “커리큘럼을 보면, 6차 산업이나 4차 산업 혁명의 요즘 추세에 맞는 정보통신기술, 스마트팜 팩토리, 경영마케팅 분야가 보완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러한 과목도 한 학기에서 끝낼 것이 아니라 학년마다, 연계과정을 넣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연구와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수진 상당수가 농진청이나 지자체 농업기술원 출신의 원로 교수들이라는 점은 실무적인 면에서는 유익할지 모르지만, 새로운 농업 패러다임을 연구하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귀담아들을만 하다.

    한국농수산대를 잘 아는 농림축산식품부의 한 직원은 “지난 20년 동안 커리큘럼이 거의 바뀌지 않았고, 교수 연령층이나 농진청 출신비율이 상대적으로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1990년대 중반 설립됐지만, 2003년이 돼서야 교장이 학장으로 변경됐고, 농진청 기술연수과가 학교로 통합 되는 과정에서 교수진 구성이 농진청 출신들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과정이 있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에따라 한국농수산대가 농업사관학교로 거듭나려면, 새로운 신진교수들의 영입과 교수간 경쟁, 시대에 맞는 교과목 구성 등 전반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김현권 의원은 “우리나라의 청년 농업인 비중이 1.1%로 전세계에서 최악의 수준”이라고 지적하면서 “농업의 정예 인력을 양성하는 한국 농수산대학이 낙후한 교육커리큘럼에 의해 예비 농수산인이 영농의 뜻을 포기하고 있다면 전면적으로 교육과정을 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한편, 한국농수산대도 외부의 이러한 지적을 받아들여, 올해 대학입시부터 학과를 개편하는 한편 신설학과를 설립하고 관련 커리큘럼 등 학사제도 전반에 대한 개혁을 11월 중으로 마무리할 계획임을 밝혔다.

    한국농수산대 관계자는 “높은 경쟁률 속에 입학한 학생들이 학업을 중단하는 것, 특히 자퇴하는 것은 큰 문제라는 지적에 동의한다”며 “학생들과 소통을 넓히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학교운영을 위해 능력 있는 신진교수 영입, 드론 식물공장 등 새로운 커리큘럼 마련, 좀 더 특성화된 교육을 위한 학과 신설 및 세분화를 11월 중에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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