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세계를 놀라게한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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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7.03.20 14:50:49 | 수정시간 : 2007.03.20 14:51:40
  • 세계를 놀라게한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
    오기와 집념이 만들어낸 '빙상 강국'
    열악한 환경·지원 딛고 쇼트트랙 동료와 불꽃경쟁 속에서 쾌거 이룩





    #1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이 최근 강해진 이유가 뭐냐” 단국대 오용석 코치는 지난달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가 벌어진 오스트리아에서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깜짝 놀랐다. “이 사람들이 도대체 왜 이럴까? 우리 애들이 잘하긴 잘하는 모양이군.” 스케이팅 강국 캐나다, 노르웨이, 독일의 지도자들은 틈만 나면 한국의 비법을 물었다.

    #2 “한국에서 스케이팅 지도 방법을 배우고 싶다. 한국에서 연수할 방법을 알아봐 달라.” 오용석 코치는 1월 말부터 중국에서 열린 제6회 장춘동계아시안게임에서 일본 대표팀 지도자로부터 부탁을 받았다. 기술에서는 세계 최고를 자부하는 일본 지도자는 “한국 지도자의 지도 방법이 남다른 것 같다”며 한국에서 유학하고 싶단다.

    변방에 머물던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이 세계 빙상계의 중심에 우뚝 섰다.

    얼음판 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는 이강석(22ㆍ의정부시청). ‘빙상탄환’은 지난 10일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500m에서 세계신기록(34초25)을 세웠다. 대표팀의 맏형 이규혁(28ㆍ서울시청)은 단거리 최강자를 뽑는 스프린트 세계선수권대회(1월 22일)에서 우승했다. 이들은 장춘동계아시안게임 남자 단거리 금메달을 모조리 휩쓸었다.

    외국 지도자들이 궁금해하는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환경은 어떨까.

    1976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이영하 이사(왼쪽)와 2007 세계종별선수권대회 남자 500m 2차 경기에서 34초25의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을 차지한 이강석 선수가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홍인기 기자
    400m 트랙을 갖춘 스케이트장은 단 두 개. 실내 빙상장은 태릉 국제스케이트장이 유일하고, 춘천에 실외 스케이트장이 있다. 빙상 꿈나무가 훈련할 곳이 없어 겨울이면 논바닥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이들까지 포함해도 등록선수가 445명에 불과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다. 이강석과 이규혁의 눈부신 성과를 보자면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이 머릿속에 떠오를 정도다.

    경쟁 속에 발전이 있다

    한국산 ‘빙상탄환’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탄생했다. 이강석과 이규혁은 500m와 1,000m에서 경쟁하고, 이규혁과 문준(25ㆍ성남시청)은 1,000m와 1,500m에서 경쟁한다.

    이강석(500m)을 비롯해 이규혁(1,000m), 문준(1,500m)은 각자 자신의 종목에서 최고다. 하지만 장춘동계아시안게임에서 이규혁은 간발의 차로 문준을 제치고 1,500m 금메달을 따냈다. 잠시도 방심할 수 없는 치열한 경쟁이다.

    스케이팅 환경이 열악한 한국에서는 2000년대 초까지 대학을 졸업하면 곧 은퇴했다. 유망주가 육체적으로 한창 물이 오를 20대 중반에 은퇴하는 악순환은 실업팀이 8개나 생기면서 사라졌다. 실업팀 창단이 없었다면 올해 한국체대를 졸업한 ‘빙상탄환’ 이강석조차 은퇴를 고려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쇼트트랙에 질 수 없다

    태릉선수촌에 스피드스케이팅과 쇼트트랙 선수들이 함께 훈련하면 경쟁이 불을 튀긴다. 예를 들어 불함산 산악 구보에서 진 쪽은 주말 외박을 반납할 정도로 치열했다. 쇼트트랙 선수들이 지난해부터 ‘파벌싸움’ 때문에 태릉에 입촌하지 않기에 불암산 경주는 사라졌지만 경쟁 심리는 여전하다.

    얼음 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이강석은 “쇼트트랙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휩쓴 나머지 스피드에 대한 관심이 줄었다”면서 “겨울스포츠의 꽃인 스피드스케이팅의 자존심을 걸고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꼭 우승하겠다”고 다짐한다. 쇼트트랙과의 경쟁은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원동력이다.

    이밖에 지도자의 능력도 빼놓을 수 없다. 곡선 주로를 더욱 잘 달리고자 스케이트 날을 휘는 기술(bending)은 한국이 최고다. 게다가 선수 개개인의 장단점을 파악해 개별적으로 지도하는 능력도 단연 돋보인다.

    그러나 스케이트장이 부족해 마음껏 훈련하기 어려운데다 국가대표에 대한 지원도 경쟁국에 비해 부족하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이 세계 정상에 섰지만 언제 추락할지 불안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 한국산 '빙상 탄환' 계보

    ‘이영하-배기태-김윤만-이규혁-이강석’.

    한국스피드스케이팅을 대표하는 스프린터의 계보다.

    이영하(51)는 1976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개인 종합 1위를 차지한 추억의 스타. 당시 KOREA(한국)의 존재를 세계 빙상계에 처음 알린 주인공이다.

    ‘동양인은 폭발적인 힘과 속도가 필요한 500m에서 우승할 수 없다’는 속설도 깨트렸다. 이영하는 80년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500m 우승후보였지만 경기 전 연습에서 코를 다쳐 10위에 그쳤다. 국가대표 감독을 거친 이영하는 현재 대전 남선체육관에서 빙상 꿈나무를 지도하고 있다.

    이영하라는 걸출한 스타가 떠난 ‘빙상탄환’의 계보는 배기태(42)가 이었다. 서울고 시절 그룹 시나위의 전신 선세이션에서 기타를 쳤던 ‘황색특급’ 배기태는 87년부터 500m 세계 1위에 올랐다.

    그는 90년 500m와 1,000m 기록 합계로 순위를 결정하는 스프린트 세계선수권대회를 한국인 최초로 제패했다. 카레이서로 활동하기도 한 배기태는 대덕테크노밸리㈜ 홍보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황색특급’ 배기태의 뒤를 이은 김윤만(34)은 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남자 1,000m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에서 나온 동계올림픽 첫 메달. 당시 김윤만을 지도한 이영하 감독은 “6위 정도를 목표로 삼았는데 윤만이가 너무 잘 탔다”면서 “독일의 진케에 불과 100분의 1초 뒤져 금메달을 놓쳤다”고 회상했다. 김윤만은 95년 스프린트 세계선수권에서는 우승했다.

    13세에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아 ‘신동’으로 불린 이규혁(28)은 97년 월드컵 1,000m에서 한국 빙상 사상 첫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2001년에는 1,500m 세계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유독 큰 대회에서 약해서 2006토리노동계올림픽까지 네 번이나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한 번도 메달을 따내지 못했다. 은퇴를 고민하던 이규혁은 ‘샛별’ 이강석(22)의 급성장에 자신을 채찍질한 끝에 지난 1월 22일 노르웨이에서 열린 스프린트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빙상탄환’은 이강석. 3월 10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500m 세계신기록(34초25)으로 정상에 우뚝 섰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이강석은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한국스피드스케이팅의 오랜 염원인 첫 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한다.


    입력시간 : 2007/03/20 14:51




    이상준기자 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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