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돌아온 최희섭 '거포본능, 프로야구 흥행 이끈다'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플러스 네이버 북마크 싸이월드 공감 기사 구입 프린트 기사메일
입력시간 : 2007.05.15 15:57:54 | 수정시간 : 2007.05.15 15:57:54
  • 돌아온 최희섭 '거포본능, 프로야구 흥행 이끈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타자, '빅초이' 대형스타 복귀로 관중몰이 기폭제 기대



    2006년 3월 미국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서 열린 WBC 대회 미국과의 경기에서 홈런을 치고 이승엽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최희섭. AP=연합뉴스


    “다른 아이들보다 유난히 덩치도 컸고 훈련도 열심히 했어요. 그야말로 모든 면에서 거인이었죠.”

    최희섭(28ㆍKIA)의 모교인 광주 송정동초등교 감독을 지낸 박태범 감독(현 광주 화정초등교 감독)에게 최희섭에 대해 물으면 늘 돌아오는 대답이다.

    오랫동안 최희섭을 지켜본 KIA 김경훈 스카우트부장도 “충장중학교 시절에도 집에 가보면 밤에 후배들을 데리고 옥상으로 올라가 스윙 연습을 하고 있을 정도였다”며 “성실성으로만 따지면 최희섭만한 선수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송정동초등교 3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한 최희섭은 성실과 오기로 뭉친 선수였다. 성에 차지 않다 싶으면 팀 훈련이 끝난 뒤에도 야구장에 남아 스윙을 수백 번 한 뒤에야 비로소 집에 갔다.

    10년 만에 호랑이 유니폼

    충장중을 거쳐 광주일고에 진학한 최희섭은 1학년 때부터 중심타자로 활약했다. 타석에서 최희섭이 홈런포를 뿜으면 마운드에선 1년 선배 김병현(28ㆍ콜로라도), 2년 선배 서재응(30ㆍ탬파베이)이 삼진 퍼레이드를 펼치며 팀을 전국대회 우승으로 이끌었다.

    중학교 때부터 최희섭을 눈여겨 본 해태(현 KIA)는 최희섭이 광주일고 3학년이던 1997년 우선지명선수로 낙점했다. 해태는 파격적인 몸값인 3억원을 제시했다. 당시만 해도 8개 구단은 암묵적으로 고졸 신인 3억원, 대졸 신인 5억원으로 몸값을 제한했다. 그러나 최희섭의 부모인 최찬용, 양명순씨는 “돈도 좋지만 희섭이를 대학에 진학시키고 싶다”며 해태의 구애를 정중하게 거절했다.

    고려대에 진학한 최희섭은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며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스카우트 표적이 됐고 결국 2학년이 되기 전인 99년 9월 시카고 컵스와 계약금 120만 달러(약 11억원)에 계약,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99년부터 2001년까지 마이너리그에서 수업을 받은 후 2002년 한국인 타자 최초의 빅리거가 됐다.

    2003년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된 최희섭은 8홈런을 치며 가능성을 보이더니 2004년과 2005년 잇달아 15홈런을 쏘아 올리며 '차세대 거포'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지난해엔 줄곧 마이너리그에서 머무르며 시련의 시간을 보냈다.

    99년 미국에 진출한 최희섭은 올해까지 무려 5개 유니폼을 입는 ‘저니맨(떠돌이)’ 신세였다. 2003년 말 플로리다, 2004년 8월 다저스, 지난해 초 보스턴에 이어 11월 탬파베이로 옮겼다.

    지난해 11월 탬파베이와 2년 최대 195만 달러에 계약한 최희섭은 재기를 노렸으나 올해 3월 23일 스프링캠프 도중 마이너리그행 통보를 받았다.

    그러자 최희섭 영입에 관심을 보여왔던 KIA는 이강철 투수코치와 김태완 스카우트과장을 미국으로 보내 설득 작업을 벌였다. 그리고 지난 1일 미국으로 건너간 정재공 단장이 두둑한 지갑(총액 15억5,000만원)을 열며 최희섭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전신 해태 시절을 포함해 구애를 받은 지 정확히 10년 만에 최희섭은 ‘타이거즈맨’이 됐다.

    관중몰이 견인차 기대

    2001년 후반기에 한국 프로야구는 ‘이종범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그해 KIA 창단과 함께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에서 복귀한 이종범이 전국적으로 관중을 몰고 다녔다. 윤기두 KIA 홍보팀장은 “당시 광주, 잠실, 인천 등 전국 대부분의 구장에 경기당 3,000명 이상이 ‘이종범 관중’이었다”고 회상했다.

    LG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2002년 보스턴에서 LG로 돌아온 ‘야생마’ 이상훈은 이종범을 제지고 단번에 최고 연봉(4억 7,000만원) 선수가 됐다. 일부에선 “외국에서 왔다고 해서 너무 많이 주는 것 아니냐”며 다소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지만 이상훈은 이종범에 버금가는 관중을 야구장으로 불러들였다.

    프로야구는 올 시즌 96년 이후 11년 만에 400만 관중 돌파를 목표로 삼았다. 지금까지는 순조로운 분위기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전체 일정의 21.2%(107경기)를 소화한 지난 9일 현재 총 93만 3,116명의 관중을 동원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83만 3,588명과 비교하면 약 12% 가량 관중이 늘었다.

    이는 어느 해보다 순위 다툼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데다 봉중근(LG) 등 최고 무대에서 기량을 검증 받은 선수들의 가세로 볼거리가 풍부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기에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타자 출신인 최희섭의 가세는 흥행몰이의 결정판이 될 것이라는 게 야구 관계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하일성 KBO 사무총장은 "최희섭이라는 대형 스타의 복귀는 프로야구 중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최희섭의 복귀를 반겼다. 3년 동안이나 메이저리그에서 풀타임으로 뛰었던 최희섭. 그는 이종범과 이상훈을 능가하는 해외파 흥행마술사를 꿈꾸고 있다.

    ▦최희섭 프로필

    생년월일:1979년 3월 16일

    고향: 전남 영암

    학력: 광주 송정동초-충장중-광주일고-고려대

    체격: 195㎝, 105㎏

    수비: 1루수(좌투좌타)

    특기: 농구(충장중 3학년 때 광주지역 길거리농구 우승)

    경력: 1997년 대통령배 고교야구 최다홈런, 99년 3월 계약금 120만 달러에 시카고 컵스와 계약, 2000년 애리조나 폴리그 유망주 1위, 2002년 9월 4일 메이저리그 데뷔, 2006년 WBC 한국대표팀 1루수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입력시간 : 2007/05/15 15:58




    최경호 기자 squeeze@hk.co.kr

  • HOM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