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프칼럼> 골프밖에 모르는 것 자랑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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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7.12.25 07:00:32 | 수정시간 : 2017.12.25 07:00:32
    프로골퍼는 경주마가 아니다.

    경주마는 기수의 채찍과 발길질에 따라 열심히 앞으로 달리기만 하면 된다. 경주마의 여러 컨디션을 파악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은 기수의 몫이다.

    그러나 프로골퍼는 경주마이면서 기수를 겸해야 한다. 멀리 강하게만 친다고 승리가 보장되지 않는다. 자신의 신체·감성 리듬을 정확히 파악하고 주변 상황을 냉철히 읽어 자신의 리듬을 흩트리지 않으면서 코스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지혜가 필수적이다.

    아무리 승률이 높은 경주마라 해도 광야에 풀어놓으면 혼자 달릴 줄 모른다. 등에 탄 기수의 신호에 따라 피동적으로 반응해온 탓이다.

    마찬가지로 부모나 스승의 몰아붙이기 식 스파르타훈련으로 기량을 익힌 골프선수는 혼자서는 경쟁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부모의 성화와 채찍, 스승의 꾸지람에 마지못해 골프를 해온 선수는 경주마와 다를 바 없다.

    골프밖에 모른다는 것은 결코 자랑이 아니다.

    최근 한 매체가 KLPGA투어의 ‘슈퍼 루키’로 인정받고 있는 최혜진(18)을 인터뷰한 기사를 접하고 놀랐다. 이 기사는 어린 나이에 역경을 딛고 큰 성취를 이룬 그를 소개하면서 ‘오로지 골프밖에 모르는 소녀’라고 표현했다. 물론 하고 싶은 게 많은 어린 나이임에도 골프에 집중해 올 시즌 2승, LPGA투어 US여자오픈 준우승, 이벤트대회인 LF포인트 왕중왕전 우승에 이어 2018시즌 개막전 효성 챔피언십 우승 등 놀라운 성적을 거둔 것을 상찬하는 의도이겠으나 ‘골프밖에 모른다’는 것은 앞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선수에게는 적당하지 않은 것 같다.

    골프선수로서의 인생이 골프로만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골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겠지만 골프 외의 다양한 요소들이 더해져 비로소 한 인생을 충족하는 것이다. 훌륭한 요리가 단일 재료가 아닌 다양한 재료들이 융합되어 만들어지듯 인생 역시 다양한 요소들이 조화롭게 배합될 때 가치를 더한다.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면 ‘골프밖에 모른다’는 것은 골프로 대성할 것이라는 의미보다는 골퍼로서 생명이 길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우리나라 여자골퍼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어릴 때부터 만사 제쳐두고 골프에만 매달려왔다는 점이다. 이는 LPGA투어의 미국이나 유럽선수들이 인정하는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오죽했으면 크리스티 커가 “한국선수를 이기려면 내가 아이를 더 낳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을까. 아이를 더 낳아 한국선수처럼 어릴 때부터 다른 것 다 팽개치고 골프만 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 비판적 냉소가 깔려있다.

    어릴 때부터 부모에 이끌려 골프에만 매달려온 삶의 부정적 케이스는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골프여제 박세리(40)가 토로한 바 있다. 주변에서 보기엔 골프선수로서 더 이상 성공적일 수 없는 삶을 산 것 같은데 그는 골프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주 좌절에 빠졌었다고 털어놓는가 하면 기회 있을 때마다 후배들에게 골프 외에 다양한 취미활동을 즐기라고 당부하곤 했다.

    그가 줄리 잉스터(57)나 캐리 웹(42), 카트리나 매튜(48), 크리스티 커(40)처럼 골프선수로서의 생활을 길게 이어가지 못하고 중도에 접은 것 역시 “골프를 계속할 의미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털어놨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프로선수들은 성장 환경이 골프밖에 모르게 돼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어릴 때부터 골프를 하더라도 정상교육을 받으면서 취미 혹은 과외활동으로 골프를 익히지만 한국에선 골프의 길로 들어서면 학교는 형식적으로 나가고 운동에만 전념하는 풍토다. 대학에서도 최대한 선수의 편리를 봐주고 방학 때 리포트 제출로 가름하게 해준다.

    타이거 우즈가 스탠포드대학에 들어갔으나 선수생활 때문에 소정의 학업과정을 이수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중퇴해야 했던 풍토와 대비된다.

    LPGA투어에서 활동하는 한국 선수들 중 잘 나가던 선수가 이유 없이 부진의 늪에서 헤매거나 적응에 실패해 짐을 싸는 경우가 많은 것도 골프밖에 모르는 성장 배경이 동기유발이나 재기의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 아닐까.

    이름을 대면 알 수 있는 꽤 많은 선수들이 골프도 잘 하면서 취미활동이나 지적활동을 통해 인생을 충전하며 골프에 활력을 불어넣는데 성공하고 있는 사실은 ‘골프밖에 모른다’는 것이 결코 미덕이 아님을 증명해준다.

    방민준(골프한국 칼럼니스트) news@golfhankook.com

    (골프한국 프로골프단 소속 칼럼니스트에게는 주간한국 지면과 골프한국, 한국아이닷컴, 데일리한국, 스포츠한국 등의 매체를 통해 자신의 글을 연재하고 알릴 기회를 제공합니다. 레슨프로, 골프업계 종사자 등 골프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싶으신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을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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