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백기' 재벌] 권력앞에선 '버티기'도 안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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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9.04.29 15:38:00




  • “역시 재벌은 매를 맞아야 말을 듣는다?”

    김대중대통령 취임이후 1년여동안 정부의 거듭된 개혁요구에도 불구하고 ‘시간끌기’와 ‘버티기’로 일관해오던 재벌이 드디어 구조조정의 완결판(?)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말만 앞세우는 재벌의 ‘무늬만 구조조정’에 정부가 날카로운 채찍을 휘두르면서 ‘버티기의 명수’인 재벌들도 백기를 들고 만 것이다.

    반도체 빅딜의 타결과 대한항공 조중훈회장의 퇴진, 대우와 현대그룹의 고강도 구조조정 등이 잇따라 발표된 4월은 재벌들에게 가장 ‘잔인한 달’로 기억되게 됐다.

    우선 5대그룹의 사업 구조조정은 이제 사실상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다. 작년 12월7일 합의이후 5개월째 끌어온 반도체 통합 협상이 현대와 LG간 이견해소로 타결됐기 때문이다. 반도체 협상 타결은 정부나 재계 입장에서 빅딜의 ‘화룡점정’(畵龍點睛)으로 꼽혀왔다.

    여기에다 대우가 19일 대우중공업 조선부문을 일본에 매각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획기적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으며, 현대도 23일 올해말까지 계열사를 26개로 줄이고 부채를 45조4,000억원으로 감축키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에 ‘찍힌’ 2개 재벌이 백기를 든 것이다.

    또 ‘사고뭉치’대한항공에 유례없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사실상 오너교체를 요구, 조중훈회장이 전격적으로 물러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취임초기“능력없는 오너경영자는 물러나야 한다”던 김대통령의 발언이 현실화한 것이어서 재계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구조조정 완결과 오너교체. 이런 굵직한 재계 현안이 마무리되기까지는 정부의 융단폭격이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재벌 개혁을 한다더니 1년동안 뭐했느냐”는 질책이 나온데다 2~3월사이 정·재계가 해빙무드를 보이고 ‘신유착’이라는 빈축까지 나돌자 4월들어 정부가 ‘당근’대신 매서운 ‘채찍’을 휘두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대통령과 정부가 직접 나서 특정 기업이나 특정 오너를 꼭 집어 공격하는 ‘실명거론 작전’때문에 재벌들은 더이상 피할 곳이 없게 됐다. 서릿발같은 김대통령에게 한번 찍히면 영원히 회복되기가 힘들다는건 재벌 스스로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은 “5대 그룹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운을 떼었고, 강봉균 청와대 경제수석과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이 “1∼2개 그룹의 구조조정이 부진하다”고 대우와 현대에 직격탄을 날렸다. 조중훈 대한항공회장 퇴진도 대통령의 직접적인 요구에 따른 것이다. 청와대는 또 재벌들을 압박하기 위해 당초 22일로 예정됐던 청와대 정·재계간담회를 연기하는 등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압박작전을 구사했다.

    재벌에게 이번 4월이 더욱 잔인한 것은 구조조정 한파속에 지하철 노조 파업, 대우중공업 조선부문 파업 등 대규모 사업장의 파업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구조조정과 노사갈등(고용불안)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기 때문에 도저히 피해갈 수 없는 난관이다.

    잔인한 4월이 끝나면 5월 훈풍이 불어올까. 5월부터는 정부의 5대그룹 구조조정의 방향이 채찍과 규제일변도에서 지원과 격려 위주로 바뀌게 될 것인가.

    재계는 “이제 사업구조조정 대상인 8개 업종에서 해당 기업간 이견은 대부분 해소됐으며 법인통합이나 사업교환을 위한 막바지 조율작업만 남겨놓았다”며 “기업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한 셈”이라고 말한다. 이제 외자유치가 쉽도록 출자전환, 각종 세제상 지원 등을 해줄 것을 정부에 요청할 단계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금융감독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의 속을 썩여왔던 대우가 스스로 획기적인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하고 반도체 빅딜도 성사된 만큼 정부쪽에서도 마냥 몰아붙이기식으로만 구조조정을 끌고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분위기는 이헌재위원장의 발언에서도 감지된다. 칭찬에 인색한 이위원장은 19일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계획이 발표된 뒤 “김우중회장이 큰 결단을 했다”고 추켜세웠다. 현대그룹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따라서 정부가 그동안 휘두르던 채찍을 거두고 ‘당근’을 내놓지 않을까 재계는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5월 훈풍론’에 대한 경계의 눈초리도 만만치 않다. 아직은 때가 이르다는 지적이다. 재벌은 일관되게 반(反)개혁적인 입장을 고수하다 자금사정 악화와 투자자의 외면, 정부의 압박을 견디다못해 구조조정을 하고 있으나 경기가 회복되면 언제 마음이 변할지 모른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주채권은행과 맺은 재무구조개선 약정에서 연내 부채비율을 200%로 맞추고 문어발을 자른다고 약속했으나 이 또한 지켜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도 지금까지 한 일은 재벌 구조조정의 큰 틀만 겨우 짰을뿐이고 앞으로 남은 실천이 더 중요하다며 재벌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않고 있다.

    5대 그룹 구조조정이 제대로 되고 있느냐는 4분기 약정이행실태 점검이 끝나봐야 알 수 있는만큼 재벌에 대한 감시의 고삐는 절대 늦춰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재벌의 ‘말로만 개혁’에 지친 국민들 가운데 이번 5대그룹 구조조정 완결판을 보고도 재벌개혁이 끝났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제부터가 재벌개혁의 진짜 시작이라는게 대다수 국민들의 시각이다.



    남대희·주간한국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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