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미신이 빚어낸 '치욕의 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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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9.04.28 08:02:00




  • 충무공 이순신장군과 세종대왕의 묘소등에 식칼과 쇠말뚝을 꽂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발생, 충격을 던지고 있다. 사건의 용의자는 10여년전부터 부산에서 철학관을 운영하는 무속인 양순자(48·여·부산 북구 덕천1동)씨와 양씨의 아들 문대원(27·회사원)씨. 양씨는 “최근 꿈에 이순신 장군이 보이면서 머리가 아프기 시작해 충무공과 후손들의 기(氣)를 끊으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해 칼등을 꽂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자가 세종과 효종의 능과 경북 안동의 안동 김씨 묘소, 충북 보은 속리산 주변묘소, 경남 합천 가야산 주변 2곳 등 5곳에도 식칼과 쇠말뚝을 꽂았다고 진술, ‘충무공이 꿈에 자주 나타나 범행을 저질렀다’는 주장에 석연찮은 점이 많아 범행동기를 계속 추궁하고 있다.

    경찰은 특히 양씨 집에서 압수한 증거물에 최근 선영에서 놋쇠막대기가 발견됐던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등 일부 유명 인사들의 이름이 적힌 메모지와 명당 위치가 표시된 여러권의 풍수지리서가 포함돼 있는 점으로 미뤄 이들 묘소외에도 훼손된 묘소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양씨는 경찰에 검거된뒤 범행에 사용된 쇠말뚝을 구입한 철공소에 대한 현장검증을 하던중 음독자살을 기도해 중태다. 아들 문씨는 어머니가 중태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고도 병원에 나타나지도 않고 있다가 경찰에 붙잡힌뒤 어머니와 공범임을 시인했다. 문씨는 다른 공범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모자는 충무공 묘소 및 현충사 경내 묘소 등 덕수 이씨 선영 묘소 33기와 산 정상 혈(穴) 등에 모두 120개의 칼과 쇠말뚝을 박았다. 문씨는 “이 충무공 묘소 등에는 어머니와 함께 지난달 6일부터 지난 17일까지 모두 5차례에 걸쳐 범행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범행에 앞서 지난달초부터 현충사 3차례 등 모두 6-7차례에 걸쳐 현장을 다녀 왔으며 칼과 쇠말뚝, 폐유 등을 부산에서 구입했다.

    현충사는 충무공 위패와 영정을 모신 본전, 통용문, 홍살문, 유물관 등 40여개의 건물로 구성돼 있으며 유물관과 활터 부근에 세째 아들 면, 장인 방진 부부, 3대손 광윤 등 덕수 이씨 묘 17기와 기계 유씨 묘 5기 등 모두 22기의 묘가 있으며 충무공 묘역에는 충무공 부부 합장묘와 부모 등 덕수 이씨 묘 30여기가 안장돼있다.





    경찰은 경기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에 있는 세종 영릉(英陵)과 효종 영릉(寧陵)에 꽂힌 식칼 23개와 쇠말뚝 18개도 모자의 범행임을 확인했다. 세종대왕 유적관리사무소는 세종대왕의 영릉(英陵)과 효종대왕의 영릉(寧陵)에서 식칼 23개와 쇠말뚝 18개를 찾아내 경찰에 신고했다. 세종대왕 영릉에서는 식칼 20개와 쇠말뚝 12개가 봉분 꼭대기와 주변에 꽂혀 있었으며 효종대왕의 영릉에서는 봉분 중앙과 주변에 식칼 3개와 쇠말뚝 6개가 각각 깊숙히 박혀 있었다. 유적관리사무소측은 문화관광부로부터 일제 조사지시를 받고 1시간여동안 군부대 금속탐지기로 묘소일대를 정밀조사해 식칼과 쇠말뚝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문씨는 이 충무공 묘소 이외에 쇠말뚝 등을 꽂은 곳이 없다고 주장하다 영릉 훼손사실이 드러나자 범행사실을 자백했다.

    경찰은 이밖에 문씨로부터 경북 안동 안동 김씨 묘소와 충북 보은 속리산 주변 묘소와 경남 합천 가야산 주변 2곳 등 모두 4곳에도 식칼과 쇠말뚝을 꽂았다는 진술을 확보, 이들 묘소의 정확한 위치와 구체적인 범행동기를 집중 추궁하고 있다.

    모자의 범행은 식칼을 제작, 판매한 부산 K공업사측의 제보에 따라 밝혀졌다. K공업사측은 “양씨가 지난해 12월께 처음 공업사를 찾아와 ‘칼을 팔아보려고 한다’며 20개를 사간이후 최근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1회에 15-20개씩 모두 500여개를 사갔으며 매번 등산용 배낭을 메고 와 가져갔다”고 말했다.

    경찰은 또 양씨가 부산 D공업사에서 쇠말뚝 70-80개를 주문제작한 뒤 지난해 12월과 1월중 두번은 문씨가 직접 이를 운반해 간 사실을 밝혀냈다.





    이같은 어처구니 없는 사건은 허술한 사적관리에도 문제가 있었음을 그대로 노출했다.

    59년 5월 사적 112호로 지정된 11만2,000여㎡의 충무공 묘역과 54만7,000여㎡의 현충사는 67년 3월 사적 155호로 지정됐다. 현충사에서는 67년1월 ‘난중일기’를 도난당했다가 이듬해인 68년1월 일본으로 밀반출하려던 범인을 검거해 가까스로 이를 되찾았던 적이 있다.

    세종 영릉은 조선 4대왕 세종과 왕비 소헌왕후(昭憲王后)를, 효종 영릉은 17대왕 효종과 인선왕후(仁宣王后)를 각각 모신 능이다. 서로 500m의 지척 거리인 두 능은 모두 사적 195호로 지정돼 있다.

    모자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오후8시부터 새벽3시까지 범행했다. 충무공 묘역에서는 모두 5차례에 걸쳐 범행했다. 관리가 제대로 됐다면 초기범행을 발견, 추가범행을 막을 수 있었다.

    문화재관리국은 충무공 묘소 훼손사실이 밝혀지자 뒤늦게 전국 사적지 관리단체에 공문을 보내 혹시 있을 지 모르는 분묘 훼손 여부 등을 세심하게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문화재관리국은 서울 인천 경기지역 127곳, 부산 경남지역 50곳, 대구 경북지역 95곳, 광주 전남·북지역 59곳, 대전 충남·북지역 47곳, 강원지역 6곳,제주지역 3곳 등을 사적지로 지정해 소유자나 시·군에 관리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또 이번 사건으로 내로라 하는 가문들이 묘지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범인들로부터 압수한 목록에 기록된 집안은 말할 것도 없고 풍수지리책 ‘한국묘지기행’등에 거론된 무덤들의 집안도 금속탐지기를 동원해 있을지도 모를 쇠말뚝 등을 찾고 있다. 이번 사건은 화장의 필요성을 다시한번 생각케 해주기도 한다.

    손태규·주간한국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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