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흔들리는 청소년들] 음지와 양지, 이 시대의 아픔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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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9.05.19 16:24:00




  • 서울 강남의 S고등학교 1학년 K양.

    학교에서 그는 모범생으로 통한다. 머리에 염색을 하고 귀걸이는 물론, 배꼽찌도 하는데 방학때만 그런다. 컴퓨터 통신으로 채팅을 즐기고 핸드폰도 갖고 있다. 핸드폰 요금만 한달에 10만원 넘게 나오지만 그쯤은 문제가 아니다. 물론 부모가 사줬다. 성적은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심각한’ 고민이 생겼다. 얼마전 라이브 공연에 가서 본 한 ‘오빠’(가수)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개인적으로 만난 적은 없다. 그러나 친구들과 함께 그 연예인 집 앞에서 진을 치기도 하고 온갖 방법으로 만나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대학에 들어가면 그와 꼭 결혼하는 것이 꿈이다. K양이 한 청소년 상담기관에 보낸 편지는 이렇게 적고 있다. “눈만 감아도 그 오빠 모습이 어른거립니다. 다른 아이들도 그 오빠를 좋아하지만 저와는 다릅니다. 저는 그 오빠 노래도 좋지만 그 오빠의 웃는 모습, 찡그리는 표정들이 다 그렇게 좋을 수 없어요. 꼭 그 오빠와 결혼할 거예요.”





    선생님 빵값까지 계산하고 나가는 학생

    이 학교에서 K양만큼 씀씀이가 적지 않은 학생은 결코 드물지 않다. 이 학교의 한 학생은 얼마전 친구들과 학교 앞 빵집에 갔다가 선생님들이 드시는 것을 보고 나가면서 10만원짜리 수표를 냈다. “선생님들이 무슨 돈이 있겠느냐”며 자기들 것과 같이 계산했다는 것이다.

    K양의 고민은 어른들이 보기에는 한때의 열병이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로서는 절절한 고뇌다.

    반면 같은 하늘 아래서 전혀 다른 종류의 고민을 하는 소녀도 있다.

    서울 남대문로5가에 사는 P양(13·중학교 1년).

    이른바 소녀가장이다. 7년전 서울역 근처에서 포장마차를 하시던 아버지가 뺑소니차에 치여 돌아가신 뒤 어머니는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동생(11)까지 버려두고 가출했다. P양은 몸이 불편한 할머니(78), 동생과 함께 남대문 근처 공사현장에 있는 2평짜리 컨테이너 박스에 산다. 얼마전까지 철거지역 무허가 판잣집에서 살다가 공사현장 아저씨들의 배려로 이곳으로 이사왔다.

    동생이 어렸을 때는 숙제도 도와주고 일일이 보살펴줘야 했지만 지금은 그런대로 커서 제 앞가림을 하기 때문에 한 시름 덜었다. 동생이 어렸을 적에는 사는 게 너무 힘들었다.





    컴퓨터 갖는게 소원인 소녀가장

    살림은 구청에서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돼 나오는 20여만원과 매달 익명의 후원자가 보내주는 10만원으로 하고 있다. P양은 가수 김민종과 SES를 좋아한다. 나중에 가수가 됐으면 한다.

    P양의 고민은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이다.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닥치면 눈물이 나기도 한다. 답이 없다. 그때마다 “쓸 데 없는 생각”이라고 마음을 다잡으며 “내가 이러면 동생과 할머니는 어떻게 사나”하고 스스로를 추스린다. P양의 소원은 컴퓨터를 갖는 것이다. 남들처럼 통신도 하고 인터넷도 해보고 싶다.

    K양과 P양의 고민은 똑같은 우리 시대 청소년의 고민이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듯이 고민도 다양할 수 있다고 넘겨버리기에는 우리 시대가 뭔가 너무 잘못된 것 같다.

    이광일·주간한국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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