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여기 이인제가 있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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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9.05.04 16:22:00




  • 4월 26일 오전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 갑자기 때아닌 박수소리와 함께 400여명의 출영객이 일시에 연호를 시작하자 청사는 시끌벅적한 유세장처럼 변했다. 공항 출입문에 6개월의 미국생활을 마친 국민회의 이인제 당무위원이 모습을 드러낸 것. 예상된 환영연이었지만 옛 동료와 지지자들의 환호에 둘러싸인 이위원은 1년여전 15대 대선 당시의 ‘이인제 후보’로 되돌아간 듯 한껏 고무된 표정이었다.

    즉석에서 핸드마이크를 잡은 이위원의 입에서는 강렬한 현실정치 비판이 튀어나왔다. “우리민족이 21세기를 창조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돌아왔다. 아무리 우리민족의 저력이 우수해도 이를 결집시킬 수 있는 강력한 정치지도력이 없으면 다시 불행해 질 수 있다.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도가 심화되면 우리나라의 장래는 암담하다. 전국정당을 만들고 미국 영국 등 선진국처럼 이념 정강 정책 중심의 양당 정치구조로 가야 국민역량을 하나도 흘리지 않고 21세기를 건설할 수 있다. 우리 정치는 개혁되어야 한다. 정치권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정치개혁을 위해 여러분과 함께 싸워나가겠다. 내일에 대한 꿈과 희망을 실현시켜 나가는 이인제가 되겠다.”





    ‘차세대 주자’ 의식한 소신발언

    이위원은 이어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내각제 문제가 두 지도자간 약속의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느냐” 면서 “이는 국민 주권과 나라장래에 중대한 결과를 가져올 사안으로 하루속히 불필요한 논쟁을 없애야 한다”고 DJP의 내각제 금언령조차 가볍게 넘겨버렸다. 짧은 귀국일성이었지만 그의 가슴속에 품고 있는 야망을 그대로 드러낸 연설이자 차세대 주자로서의 ‘이미지 메이킹’을 의식한 소신 발언었다.

    이위원은 귀국전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졌을 것이고 그는 당장에 당직을 맡을 필요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원유철 이용삼의원 등 측근들도 말렸다고 한다. 현구도에선 국민회의 내에서 맡을 마땅한 역할이나 자리가 없는데 굳이 나서 경쟁자들의 표적이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여권내 정치지도가 새로 만들어지는 8월 전당대회까지는 관망할 태세. 하지만 이위원의 캠프에선 여론의 시선을 끊임없이 잡아두면서 아직은 낯선 여권내의 정지작업을 추진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짬짬이 중국과 러시아등을 방문해 식견을 높이고 친분도 쌓는 ‘해외순례’도 계속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시끄러운 잠행’. 이것이 이위원 캠프에서 제시한 현단계 최선의 처세술인 셈이다.

    이위원의 이같은 정치행보는 귀국 다음날인 27일 청와대에서 김대중대통령을 면담한 뒤 분명해졌다. 이날 이후 이위원은 정치재개의 기지개를 켜며 눈에 띄게 행동반경을 넓혀갔다. 청와대를 다녀온 후 이위원은 “당분간 우리사회 각분야의 엘리트들을 두루 만나겠다”고 밝혀 DJ와의 대화에서 ‘젊은피 수혈론’에 대한 교감이 오갔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손해볼것 없는 상도동 방문

    이위원이 택한 ‘시끄러운 잠행’은 상도동 방문과 동교동 접근이라는 이벤트로 구체화됐다.

    이위원은 “민주화 과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김대통령과 김전대통령은 이제 경쟁관계에 있지 않다” 면서 극도로 악화된 김대중대통령과 김영삼전대통령간에 가교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

    그러나 ‘DJ와 YS의 화해’ 라는 화두를 들고 지난달 29일 YS를 찾아간 이위원은 김전대통령에게서 “과거에도 독재자와는 타협한 적이 없듯 앞으로도 타협할 생각이 없다”는 싸늘한 답변만을 듣고 돌아왔다. 김전대통령은 “당신도 국민회의에 가지 않고 외국이나 절에 가서 조용히 있었으면 내년에는 정말 좋았을 것” 이라고 아쉬워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해프닝으로 끝난 상도동 방문이지만 이위원이 이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을까. 정치권의 대답은 ‘아니다’다. 이위원의 상도동 방문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정치권에서는 보고 있다. 우선 청와대에서 이위원에게 어느정도의 정치적 공간을 확보해 주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 이위원이 ‘DJ_YS화해론’을 피력하자 청와대 관계자는 “큰 방향은 옳다”며 “김대통령이 특별한 ‘미션’을 준 것은 아니나 이위원도 DJ와 만난 뒤 감을 잡고 한 말일 것” 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대통령이 이위원에게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재량권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회의 고위관계자는 이위원의 상도동행에 대해 “이위원으로서야 DJ와 YS에게서 은혜를 받는다면 차기 대권경쟁에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가 되는 것 아니냐”며 이위원의 정치행보를 해석했다.

    성사가 되지 않더라도 이위원으로선 손해볼 것은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또 당장은 아니더라도 한 번 뚫어놓은 길은 언제든지 다시갈 수 있는 만큼 시도 자체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위원은 또 동교동계의 맏형인 권노갑고문을 만난데 이어 즉석에서 5월8일 골프회동 약속까지 했다. 앞으로 한화갑 총재특보단장 등 동교동 사람들을 두루 만나며 8월이후를 겨냥한 기반다지기에 나설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여권 진입에 본격적인 시동

    이위원의 귀국이후 행보를 바라보는 여권의 시선은 기대보다는 경계가 많다. 지난해 9월 국민신당을 해산하고 국민회의로 합류한 이위원이 당시 약속받은 정치적 지분은 20%. 하지만 실제 여권내에서 옛 국민신당의 정치적 파워가 20%정도의 메가톤급 위력을 갖는다고 보는 사람은 없다. 아직 이위원 본인도 여권내의 입지는 취약하기 짝이 없다. 김근태 노무현 등 비호남권 차세대 지도자들이 각개 약진을 하고 있고 동교동계에선 8월전당대회에서 이수성씨를 당대표로 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해 9월 국민신당 해산과 함께 국민회의로 오자마자 외국으로 떠난 이위원은 기반을 닦을 시간조차 없었던 것이 사실.

    그러나 이위원은 15대 대선당시 의원 8명의 ‘꼬마정당’ 으로 경선불복의 치명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19.2%의 지지를 얻었고 아직 여권내에선 이위원만큼 전국적인 인지도와 대선 후보 경력을 가진 인사를 찾아 볼 수는 없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이위원이 돌아옴으로써 옛 국민신당 출신 당료와 의원들은 그동안 최대한 낮추었던 몸을 서서히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다. 또 차기대권에 대한 이위원의 야심을 적극 지지할 태세다.

    구 국민신당출신 인사의 이야기. “이위원에 대한 기대가 클 수 밖에 없어요. 우리는 아직도 김대통령이 대선당시 끝까지 후보를 사퇴하지 않고 버텨 결과적으로 ‘이회창 훼방꾼’ 역할을 한 이위원의 ‘공로’를 잊지 않았을 걸로 봅니다. 결국 이위원과 우리가 총선정국에서 어떻게 당에 기여하고 나름대로 기반을 다져나가느냐에 따라 향후 우리의 위상도 크게 달라질 겁니다.”

    이위원은 중대고비가 될 내년총선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위원은 귀국인터뷰에서 “16대엔 국회에 꼭 진출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지역구 출마여부는 명확히 하지 않았다. 이위원측 캠프에선 이위원이 총선에서 단순한 지역구를 맡는 것보다는 비례대표로 의원직을 확보한 뒤 공동 선거대책위원장 등의 비중있는 역할을 맡아 전국적인 바람몰이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다. 이를 통해 특정지역에 얽매이지 않는 전국적 지도자로 다시한번 국민들에게 각인시켜 차세대 주자로서의 당내 입지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위원은 여권 진입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이위원은 목표점인 대권 고지까지의 험난한 레이스를 무난히 끌고 갈 수 있을까. 그 첫번째 관문이 불과 세달밖에 남지 않았다.

    이태희·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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