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편집실에서] 작은 도둑과 큰 도둑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플러스 네이버 북마크 싸이월드 공감 기사 구입 프린트 기사메일
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9.05.04 16:40:00




  • “작은 도둑이 큰 도둑 훔친다.” 요즘 세간에 많이 떠도는 우스개 소리입니다. 고관집 전문털이 김강룡(32)씨, 고가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정치인 관료 재벌총수 등 58명의 리스트를 작성해 범행해온 전문털이범들, 돈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가진자들의 수사결과 등 일련의 사건들이 가져온 말입니다. 김강룡씨의 한마디 한마디에 정치권이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는 소동이 있은 뒤 다시 터진 ‘리스트 범행 사건’은 국민들의 실소를, 유전면제 무전입대를 입증한 병무비리는 분노를 자아냈습니다.

    그같은 도둑들이 많아지고, 피해자나 피해자가 될 뻔한 사람들을 ‘큰 도둑’으로 희화화하는 세태는 무엇 때문일까요. 불신을 자초한 정치인 등 소위 ‘지도층’에 책임이 있습니다. 당리당략 싸움으로 날새우는 정치권은 신뢰를 얻기에는 국민들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내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는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곱씹어 믿을 것과 믿지 않을 것을 가려야 하는 것이 국민들의 처지입니다. 나혼자만 살면 그만이라는 식의 병무비리 장본인들은 입에 올리기도 부끄러운 우리의 현실입니다.

    6월3일 실시되는 서울 송파갑 재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4월27일 공천을 받았던 고승덕씨가 사흘만에 후보를 사퇴했습니다. 변호사인 고씨는 박태준 자민련총재의 사위이지요. 처음 그를 공천했던 한나라당은 의기양양했고, 찝찝해진 국민회의는 그를 은근히 공격했습니다. 총재가 그의 장인인 자민련은 당혹해했습니다. 국민들은 속사정을 알고 싶어하나 들리는 것은 정치인들의 말싸움 뿐입니다. 한나라당은 “후보사퇴는 외압과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국민회의는 “정치도의가 땅에 떨어진 세상이지만 뒤늦게나마 본인이 결단을 잘 내린 것 같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남의 집 사위를 밤중에 보쌈해 가는 것은 젊은 피 수혈이 아니다”고 퍼부었습니다. 4월1일 국민회의에도 이력서를 제출했던 고씨는 “경쟁후보측에서 근거없는 흑색선전이 계속 나와 이를 밝히고 싶어 한나라당에 공천을 신청했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밝힌 출마포기 이유는 ‘혈연’입니다.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까지 들먹인 그를 보고 사람들은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최근의 잇딴 고관집 전문털이 사건들은 또 어떻습니까. 김강룡씨 사건의 흐름은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유종근 전북지사의 서울사택 현장검증을 놓고 뒤늦게 검찰과 유지사가 티격태격입니다. 유지사는 “사택에 대한 여론이 나쁘고 위치도 알려져 집기등(현장)을 치우고 처분키로 했다. 정치공세와 여론에 밀려 하는 수사에는 협조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미 세차례 현장조사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그는 “박상천 법무부장관이 정치공세에 밀려 불필요한 발언을 해 현장검증이 문제가 됐다”고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습니다. 솔선수범해야하는 공직자의 태도는 아닙니다. 검찰은 “첫번째 현장조사는 피해신고를 접수한 경찰서에서 한 것이고 두번째는 검사가 집 위치를, 세번째는 내부 구조를 살피려고 간 것”이라며 “국민적 의혹해소 차원에서 유지사가 현장검증에 협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다분히 애원조입니다. 검찰 스스로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이지요.

    미술품 전문털이에 대한 경찰의 수사결과를 보면 현금이나 귀금속 피해가 일체 없어 웃음이 나옵니다. 유명 미술품은 처분이 쉽지 않습니다. 범행이 탄로나기 쉽상이고, 원매자를 찾는데는 시간이 소요될 수 밖에 없지요. 장물아비를 통해도 사정은 같습니다. 도둑들이 현금 등 처분하기 쉬운 것을 그냥 두고 나올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런데도 현금등 피해가 없다는 수사기관의 발표는 김강룡씨 사건에서 보여준 행태와 비슷합니다. 도둑들의 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은 정치인이거나 유명인사들입니다. 그들 대부분은 도둑맞은 사실이나 피해규모가 세상에 알려지기를 꺼리는 부류입니다. 꺼리는 이유는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분명한 것은 ‘여론’이나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수사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원칙대로 법대로만 하면 말썽이 없습니다. 그래야 작은 도둑이 설치지 않고 큰 도둑도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정재룡 주간한국부 부장
  • HOM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