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러 잠수함 도입은 지나친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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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9.05.26 17:56:00




  • 펜타곤 미국국방부를 본떠 6각형으로 만든 계룡대의 해군참모총장 집무실. 5월10일 새벽 국방장관의 호출전화벨이 울렸다. “이총장, 긴급사안이 있으니 헬기로 바로 올라왔으면 좋겠소.”

    러시아잠수함도입을 둘러싼 천용택(千容宅)국방부장관과 이수용(李秀勇)해군총장의 양보할 수 없는 줄다리기의 서막이다.

    이날 오후 국방부 장관 집무실에 배석자없이 대좌한 두 사람의 대화.

    “대통령님이 27일 러시아를 방문합니다. 정상회담의 공식의제에 잠수함이 포함돼 있어요. 결정해야 합니다.”(천장관)

    “성능과 후속 부품조달등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후배들을 무슨 낯으로 보겠습니까.”(이총장)

    “나도 알아요. 그러나 국가외교적인 차원에서 러시아를 달래는게 필요하다는 외교안보팀의 의견입니다.”(천장관)

    “참모들을 설득해 보겠습니다.”(이총장)

    “시간이 없어요.”(천장관)

    12일 다시 장관 집무실.

    “해군입장만 고집할 일이 아닙니다.”(천장관)

    “정부 방침이 정 그렇다면 도입해야 하겠지요. 단 차기 중형잠수함사업은 차질없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차를 반모금 마시고) 예산은 별도정부예산으로 편성토록 해주십시오.”(이총장)

    “나중에 봅시다.”(천장관)

    국방장관과 총장의 러시아 잠수함 도입에 관한 논란을 기자가 유추해 본 ‘가상 대화록’이다.





    실제로 이총장은 다음날인 13일 청와대를 방문, 임동원(林東源)외교안보수석을 만나 해군의 입장을 전달했고, 17일에는 천장관과 함께 대통령을 예방, 러시아 잠수함 3척 도입의 원칙을 밝혔다.

    청와대-국방부-계룡대를 오가며 8일간 긴박하게 진행된 러시아잠수함도입 문제는 이렇게 일단락됐다. 그러나 함구령을 내렸음에도 해군의 반발이 갈수록 증폭, 러시아잠수함은 2라운드를 맞고 있다. 수뇌부의 고뇌도 깊어지고 있다.

    천장관의 고민을 반영, 국방부는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 실사단을 파견, 조건이 안맞으면 안 살 수도 있다”고 강변하고 있다. 곤혹스럽기는 이총장이 더 하다. 호남출신으로 두번째 해군총장에 오른 이총장은 광주일고를 나온 ‘성골’. 현정권과의 교감을 통해 해군발전에 기여하리란 기대를 모아왔다. 그러나 이총장이 ‘노’(NO)란 말을 못하자 “실세 총장으로 알았더니 정치권의 논리만 대변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천장관이나 이총장의 속내는 여전히 러시아잠수함을 탐탁찮게 여기고 있다는 게 주위의 전언. 다만 러시아를 끌어들여 한반도의 냉전구조를 해체하려는 정부의 안보정책을 지원하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것이다.

    러시아는 93년부터 잠수함구매를 요청해왔지만 군수뇌부는 번번이 성능미달과 후속군수지원등의 문제를 들어 부정적인 시각이었다. 그러나 신정부들어 청와대와 외교안보팀으로부터 “동북아 안정을 위해서는 러시아 도움이 필요하고, 양국 관계의 걸림돌인 미상환 경협차관 문제에서 약간의 손해를 보더라도 해결해야 한다”는 거센 압력을 받았다.

    외교통상부와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외교관 맞추방사건후 소원해진 양국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대통령의 러시아방문에 ‘잠수함 선물’을 포함시키자고 주장해 왔다. 재경부도 “현금을 받을 수 없다면 뭐라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현실론을 폈다.

    급기야 “정치적인 부담을 청와대에 지우지 말고 국방부가 알아서 결단을 내리는게 좋겠다”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분위기가 도입결정의 배경이 됐다는 후문이다.

    그렇지만 백번양보해 한반도 안보환경에서 러시아의 지위를 인정해도, 대당 4,000억원짜리 전략무기를 선물용으로 주는 것은 ‘과공’(過恭)이라는게 해군과 군관계자의 분위기이다. 특히 미상환 경협차관에서 대금을 모두 상계하는 것도 아니고, 대금중 30%만 차관으로 제하고 나머지는 현금으로 달라고 조르는 러시아의 주장은 적반하장이라는 것이다.

    2004년부터 차기 중형잠수함사업을 추진해온 해군은 러시아잠수함 도입이 현실화하자 황당해 하고 있다. 209급의 후속잠수함은 적어도 잠항(潛航)시간과 탑재무기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어야 하고, 이 사업을 통해 독자적인 잠수함건조기술이 확보되어야 한다는게 해군의 입장. 도입대상인 킬로(KILO)급 잠수함은 러시아 해군에 24척이 배치돼 있고, 중국 이란 인도에 각각 3척씩 전 세계에 모두 20여척이 수출되는 등 ‘베스트셀러’다. 그러나 성능면에서 우리 해군이 7척을 보유하고 있는 독일 하데베(HDW)사의 209급(1,200톤급) 잠수함보다 못하다는게 정설이다.

    209급은 규모는 작지만 소음이 적고 정교해 환태평양훈련에서 1만톤이 넘는 오클라호마시티호를 어뢰 한발로 두동강을 내는 등 성능이 입증됐다. 그러나 추진력을 얻는 배터리를 충전하기 위해서는 2~3일마다 공기가 있는 수면위로 떠올라야 하고, 실전에서 어뢰를 발사하는등 공격후에는 구축함과 대잠헬기를 피해 전속력으로 달아나면 2시간여만에 추진력이 고갈돼 떠올라야 한다.

    물위에 떠오른 잠수함은 수천억원의 전략무기가 아니라 구축함등의 밥이 되는 고철덩어리다.

    이에따라 최신 잠수함은 AIPS(Air Independent Proplusion System)라는 장비를 탑재하기 시작됐다. 이 장비는 물속에서 액화산소로 엔진을 가동, 추진력을 얻을 수 있어 수중에서의 작전기간을 보름이상 획기적으로 늘렸다. 스웨덴은 이 장비를 유일하게 실용화했고 독일도 개발완료단계에 와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 장비를 킬로급보다 우수한 아무르(AMUR)급에 탑재하려 했지만 3차례나 실패했다. 배터리의 수명도 209급이 7년인데 비해 킬로급은 18~24개월에 불과하고 교체하는데 1개월이상 걸리는 등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

    또 킬로급은 배의 크기는 209급보다 2배가량 큰 2,350톤이지만 무장은 20%정도밖에 늘지 않는다. 209급은 어뢰와 기뢰를 각각 14발, 28발 장착할 수 있는 반면, 킬로급은 어뢰 18발, 기뢰 24발을 장착한다. 209급은 사정거리 100㎞이상의 하푼미사일을 탑재하지만 킬로급은 불가능하다.

    이와함께 러시아잠수함을 수의계약으로 들여올 경우, 209급을 국내건조하면서 축적된 건조기술을 더 이상 발전시킬 수 없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해군과 군전문가들은 “러시아의 불안한 경제를 감안하면 잠수함건조에 몇년이 걸릴지, 8만여개의 부품생산업체가 제대로 가동될 지, 도입후 고철덩어리가 되지는 않을지 모든 게 불확실하다”고 우려했다.

    러시아는 한반도를 둘러싼 6개국의 포괄적 냉전구조를 해체하는데 지뢰대역할을 할만큼 중요하다. 경제가 좀 낫다고 홀대한데 따른 ‘사과’도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1조2,000억원이 들어가는 러시아잠수함도입은 아무리봐도 누군가가 치명상을 입는 ‘러시안 룰렛’같은 위험한 도박으로 보인다.



    정덕상·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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