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펩시의 계산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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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9.05.04 19:23:00




  • 코카콜라 간부들에게 100년에 걸친 경쟁자 펩시콜라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질 때 코크측은 다분히 정치적인 답변을 하곤 한다. “펩시가 없었으면 다른 경쟁자를 만들어 냈어야 했을 것”이라는 코크의 너그러운 대답은 ‘2등콜라’ 펩시로 인해 코크가 지켜온 1위 자리가 더욱 빛난다는 자부심의 표명인 것이다.

    사실 최근 수년간 콜라시장에서 코크를 상대로 한 펩시의 싸움은 칼과 방패로 무장한 골리앗 앞에 돌멩이를 들고 선 다윗과 다름없었다. 미국내에서 코크 캔 3개가 팔릴 때 펩시는 1개씩 팔리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96년 로저 엔리코가 최고경영자(CEO)의 자리에 올랐을 때 펩시는 2등이라는 지위를 거의 무감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27년간 펩시에서 잔뼈가 굵은 콜라전사 엔리코는 관성적인 회사경영에 맞서 완전히 새로운 전략을 짜내야 했다.

    3년동안 엔리코가 바꿔놓은 펩시의 이미지는 ‘콜라의 기쁨(Joy of Cola)’이라는 카피문구를 내건 광고를 통해 정점에 올랐다. 이전까지 영화 ‘대부’의 주인공 돈 꼴레오네의 침울한 목소리 그대로 펩시를 선전하던 말론 브란도가 퇴출되고, 지난해 개봉된 영화 ‘폴리’에서 어린 마리역을 맡았던 할리 아이젠버그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이많은 남자어른 대신에 사랑스러운 꼬마소녀를 광고모델로 기용함으로써 새롭고(할리 아이젠버그가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여섯살짜리라는 점에서), 개방적인(꼬마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여자라는 점에서)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엔리코의 과감한 전략은 서서히 시장의 반응을 이끌어내기 시작했다. 미국인이 가장 많이 마시는 콜라는 여전히 코크이긴 하지만, 3년동안 펩시는 꾸준히 증가추세를 보여왔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펩시의 미국내 전체판매량은 31%로, 45%를 점하고 있는 코크에 비해 다소 낮긴 하지만 미국내 슈퍼마켓에서는 코크가 35%, 펩시가 31%의 판매량을 기록, 슈퍼마켓 유통에서는 펩시가 코크를 바짝 따라온 것으로 나타났다.

    펩시의 성장에 힘입은 엔리코는 최근 과감한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엔리코는 펩시의 자회사인 프리토레이(Frito-Lay)를 콜라전쟁을 위한 ‘연합군’으로 선택했다. 프리토레이는 스낵업계에서는 부동의 1위였지만, 수년간 콜라시장에만 지나치게 집중했던 펩시는 자식뻘되는 이 스낵회사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프리토레이의 기록적인 입지를 간과하지 않은 엔리코는 스낵을 이용해 콜라를 더 많이 팔 수 있는 묘수를 찾아냈다.

    엔리코의 전략에 따라 슈퍼마켓과 식품점에는 프리토레이의 스낵과 펩시콜라의 음료수가 나란히 진열됐다. 커다란 ‘레이스(Lay's)’나 ‘도리토(Dorito)’와 같은 포테이토칩 바로 옆에는 다이어트 코크의 대항무기로 나온 ‘펩시 원(Pepsi One)’이 놓였다. 고객이 찾기 편하도록 ‘과자는 과자끼리, 음료수는 음료수끼리’ 배치돼 있는 슈퍼마켓의 한 코너에 번쩍거리는 도리토 봉지와 파란 펩시 캔이 근사하게 진열된 것이다.

    엔리코가 눈을 돌린 것은 사람들의 평범한 군것질 취향이었다. 포테이토칩을 먹으려는 사람들은 과자를 먹고 난 뒤의 목마름을 연상하면서, 바로 옆에 놓인 콜라를 집어들게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콜라만 마시려면 ‘1등코크’를 찾는 사람들이 가장 많겠지만, 스낵을 먹으려면 ‘1등 프리토레이’를 찾는 사람들이 가장 많으리라는 실질적인 분석에 따른 전략이었다.

    이렇듯 펩시가 전략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엔리코가 단행한 일련의 ‘살빼기 프로그램’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사실 엔리코가 실시한 구조조정은 ‘살빼기’라기 보다 ‘살도려내기’에 가까웠다. 엔리코는 2년전 오랜 친구들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그는 피자 헛과 타코 벨,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등 펩시와 제휴했던 전문레스토랑과 패스트푸드점에서 발을 뺐다. 이들 업체에 콜라를 독점적으로 공급하면서 펩시에게 돌아온 이득은 연간 110억달러에 이르렀지만, 이 짭짤한 이득을 얻기 위해 펩시는 레스토랑과 패스트푸드점을 새로 짓는데 너무 많은 자금을 내줘야 했다. 펩시가 치러야 하는 대가가 희생에 가까운 것이라고 판단한 엔리코는 이들과의 제휴를 중단하기로 했다.

    다음으로 엔리코가 시행한 전략은 경쟁자에 대한 벤치마킹이었다. 콜라산업은 크게 두 가지 분야로 나뉘어진다. 이 가운데 콜라 원액을 제조하고 판매하는 분야는 자금을 적게 들이고도 이윤을 많이 얻을 수 있다. 콜라 원액과 탄산수를 혼합하고 용기를 많이 담는 또 하나의 작업은 자금이 많이 들어가는 부문으로, 코크는 오래 전에 이 분야에서 손을 뗐다. 콜라 원액의 제조판매에 전념하기 위해 손이 많이 가는(혹은 자금이 많이 들어가는) ‘잡일’을 치워버린 코크의 결정을 눈여겨본 엔리코는 연간 70억달러를 쏟아부어야 했던 혼합 및 용기작업 분야를 공공기관에 팔았다.

    엔리코가 살빼기에만 몰두했던 것은 아니다. 펩시는 지난해 8월 33억달러를 들여 미국내 최고의 주스업체인 ‘트로피카나’를 인수했다. 엔리코는 또 수년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자동판매기 사업에 돈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97년부터 지금까지 240%라는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인 자판기는 잘 키우기만 한다면 황금알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많은 알을 낳아줄 수 있는 거위로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펩시의 상승무드는 최근 코크의 하강조짐과 맞물려 임팩트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꺾일 줄 모르던 코크의 판매고는 지난해 8월을 기점으로 하향세로 돌아섰다. 세계 3위 시장인 브라질의 경제위기에 타격을 입은 탓이다. 자국화폐인 헤알화의 급격한 가치하락으로 브라질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대폭 떨어지면서 코크의 판매고는 대폭 하락했다. 여기에다 콜롬비아, 베네수엘라등 다른 남미국가의 지난해 4·4분기 판매고도 16% 이상 감소하는등 치명타가 가해진 코크는 올해 1·4분기에 지난해 8억5,700만달러보다 12.8% 하락한 7억4,700만달러의 수익을 거두는데 머물렀다.

    이같은 코크의 이상기류를 타고 펩시가 꾸준한 상승세를 지속함에 따라 뉴욕 증시에서는 최근 펩시의 주식가치가 코크보다 높게 평가되는 ‘이변’이 나오기도 했다. 누구도 결과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펩시가 승산있는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김지영·국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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