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TIME] 비디오 게임 정말 나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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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9.05.13 13:53:00




  • 비디오 게임은 정말 그렇게 나쁜 것인가?

    어린이들이 게임에 미쳐가고 있다. 부모는 걱정이 태산이다. 그러나 기운을 내자. 이 괴물을 길들일 방법은 있다.

    필자(시사주간 ‘타임’ 스태프 라이터 조슈아 퀴트너)는 비디오 게임이 정말 좋다. 좀 뭐한 얘기지만 피 튀기며 싸우는 게임이 특히 좋다. 오후에는 ‘에이스 컴뱃 2’에서 하늘을 나는 적 전투기를 날려버린다. 스트레스가 풀리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명상에 빠져드는 기분이다. ‘사무라이 부시도’나 ‘쿵후 테켄 2’ 같은 싸움 게임과 ‘제국의 시대’라는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을 며칠동안 계속한 적도 있다. 플레이어가 신이 돼서 군단을 만들어내고 라이벌 문명을 파괴하는 스토리다. 필자는 악명높은 총잡이 둠과 그 후계자 퀘이크의 역할에 푹 빠지기도 했다. 이게 나쁜 것일까?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통계적으로 볼 때 필자가 극히 정상이기 때문이다.

    전자게임 산업은 작년 미국에서만 55억달러의 매출을 올렸고 텔레비전 다음 가는 대중적인 가정오락이 됐다. 다음주 전자오락엑스포에 출품되는 컴퓨터와 비디오 게임만도 2,600가지나 된다. 한 조사에 따르면 어린이가 있는 미국 가정 10곳 가운데 9곳이 비디오 게임이나 컴퓨터 게임을 빌린 적이 있거나 소유하고 있다. 이들 게임중 태반이 피가 철철 흐르는 내용이다. 올해 1·4분기 판매순위 100대 비디오 게임의 거의 3분의 1이 최소한 어느 정도는 폭력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퀘이크’와 ‘007 골든 아이’ 같은 유혈 게임이 줄곧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까지 필자는 어떤 점에서 비디오나 컴퓨터 게임을 하면 똑똑해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게임은 대부분 복잡하니까.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미국 UCLA 심리학 교수인 패트리샤 그린필드는 비디오 게임과 지능 발달 사이에 긍정적인 연관성을 발견했다. 그녀는 세계적으로 ‘비언어적 아이큐’(공간 기술, 문제 해결을 위한 아이콘 사용, 다양한 각도에서 사물을 이해하는 능력 등)가 높아지는 현상을 비디오 게임이 확산됐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그린필드 교수는 “우리 사회가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는 능력이나 책임감을 키우기보다 아이큐를 높이는 데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11세 미만의 딸딸딸이 아빠인 필자의 경험으로는 이는 사실이 아니다. 녀석들은 비디오 게임의 홍수 속에서 살지만 사회성이 아주 좋다.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에 ‘닌텐도 64’, ‘게임 보이즈’와 데스크탑, 랩탑도 있다. 그렇다고 아이들의 행동에서 이상한 점은 전혀 찾지 못했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이 그렇듯이 어린이들이 비디오 게임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은 염려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최근 타임과 CNN 방송이 미국 청소년 32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부모들의 근심이 이해가 간다. 비디오 게임에 중독됐다고 느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소년의 31%, 소녀의 10%가 그렇다고 답했다. 둠, 퀘이크 같은 폭력적인 게임을 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정규적으로 한다는 답변이 10%, 대여섯번 해봤다는 사람이 50%, 해본 적이 없다는 청소년은 40%였다. 특히 부모가 비디오 게임을 하는 데 제한을 가하느냐는 질문에 58%가 아니다고 답했다. 18%는 제한을 두지만 전혀 따르지 않는다고 했고, 24%는 제한을 두고 있고 늘 거기에 따른다고 답했다. 주당 몇 시간이나 비디오 게임을 하느냐는 질문에 70%가 1∼4시간이라고 답했다.

    어쨌든 이 문제는 어린이들이 게임의 영향을 받아 살인을 저지르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문제는 훨씬 미묘하다. 시각적으로 폭력적인 게임이 어린이들에게 폭력에 대해 무신경하게 만들까? 그런 게임이 어린이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의 고통과 죽음에서 즐거움을 느끼도록 가르치지는 않을까? 비폭력적인 게임이라도 어린이들이 거기에 중독되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은 미성년자에게는 판매금지해야 할까? 등등.

    많은 부모들이 이런 의문을 제기하지만 결론은 제각각이다.

    인터액티브 디지털 소프트웨어 협회 다우 로웬스테인 회장과 미국 육군사관학교 심리학 교수를 지낸 예비역 중령 데이비드 그로스먼씨는 논쟁의 두 극단을 보여준다.

    그로스먼씨는 둠이나 퀘이크같은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이 살인에 대해 인간이 갖고 있는 천성적인 거부감을 무너뜨린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미군은 병사들이 전투시 방아쇠를 좀더 쉽게 당기도록 만들기 위해 둠과 같은 게임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때 미군의 약 5분의 1만이 총을 쏜 경험이 있었다. 이 비율이 베트남전 때는 95%로 올라갔다. 이는 부분적으로, 인간에게 총을 쏘는 것이 흔하고 “정상적”인 일이라고 느끼게 하는 시뮬레이션 게임을 이용한 결과다.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이 어린이들로 하여금 살인을 쉽게 저지를 수 있게 만들고 때로는 그런 행위를 즐기도록 가르친다는 것이 그로스먼씨의 주장이다. 그는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흡연자들은 결국 병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유한다.

    그로스먼은 의회가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을 총기, 담배, 주류와 같이 취급해 18세 미만 청소년에게는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워싱턴과 아칸소주, 뉴욕의 정치인들은 그런 법안을 제출할 것을 검토중이라고 한다.

    반면 로웨스테인 회장은 비디오 게임 산업이 사회악의 희생양이 됐다고 본다. “담배와 비디오 게임의 차이는 비디오 게임은 미국 수정헌법 1조에 따라 헌법적으로 보호받는다는 사실”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사실 비디오 게임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예술적 표현이다.

    그러나 영화에도 등급제가 있다. 필자가 어렸을 적엔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를 훔쳐보기가 아주 어려웠다. 그러나 비디오 게임은 업계에서 매긴 등급에 관계없이 어떤 꼬마도 살 수 있다. 로웬스테인 회장은 그것은 소매상의 문제이자 부모의 문제라고 말한다. “등급제의 목적은 부모로 하여금 내용을 알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50달러를 주면서 ‘사고 싶은 것 사라. 난 모른다’고 한다면 그건 부모 책임이지요.”

    그러나 필자는 부모로서, 그리고 수정헌법 1조에 규정된 표현의 자유를 열렬히 옹호하는 사람으로서, 청소년이 잔혹한 게임을 쉽게 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

    MIT의 비교미디어연구과장인 헨리 젠킨스 교수는 “우리는 사회정책을 일부 비정상적인 아이들의 문제를 근거로 수립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소년 소녀들이 전자게임에 어떻게 반응하는 지를 연구한‘바비에서 모털 컴뱃까지’라는 책을 편찬하기도 한 젠킨스 교수는 그런대로 점잖은 폭력 비디오 게임은 소녀들이 이 공격적인 세상에서 어떻게 경쟁해 나가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정신상태가 불안정한 사람으로 하여금 살인을 저지르도록 유발하는 모든 것을 탄압해야 한다면 “성경이야말로 우리가 맨 먼저 판매금지해야 할 것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반면 ‘어린이들을 도발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간섭하라’고 청소년 심리상담 전문가 마이클 톰슨 박사는 말한다. “아이가 닌텐도 게임상에서 하는 폭력이 그 아이의 일상생활에 스며들고 있습니까? 녀석이 게임을 하면서 더 폭력적이됐거나 동생에게 거칠게 대하거나 부모에게 무례하게 대합니까? 그렇다면 규제를 가해야 합니다. 그러나 행동에는 영향이 없고 상상의 영역 속에 머무는 것이라면 아이는 건강하다는 징표입니다.”

    비디오 게임에 대한 부모들의 태도는 집집마다 다르다.

    뉴멕시코주 앨버쿠키에 사는 변호사 톰 호란씨 가정에서는 비디오 게임이나 컴퓨터 게임을 하는 데 아무 제한이 없다. 그는 거의 컴맹 수준이다. 호란씨는 “아이들이 거리를 어슬렁거리기보다는 집에서 친구들과 비디오 게임을 하도록 내버려둡니다”라고 말한다. 피터(16)는 최근 아버지에게 ‘자동차 대도(大盜)’라는 게임이 특히 재미있다고 말했다. 플레이어가 차를 훔치고 경찰관을 죽이면 점수를 따는 매우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이다. 호란씨는 왜 그걸 샀느냐고 물었다. 호란씨의 형은 더구나 경찰이다. “재미있으니까요”라고 피터는 대답했다. “경찰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아요. 게임 때문에 밖

    에 나가서 자동차를 훔치고 싶어지는 것도 아니에요.”호란씨는 그런 내용인 줄 알았다면 못 사게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게임을 버리라고 하지도 않았다.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은 날로 고도화되면서 목표물이 괴물에서 사람으로 변했다. ‘카마게돈’이라는 자동차 경주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은 물론 할머니 등 인도를 걷는 사람도 깔아뭉개야 한다. 이 게임의 모든 단계를 통과할 경우 플레이어가 죽일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최대 3만3,000명이다. 끔찍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필자는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이 게임을 하면서 그것을 좀 심한 유머 정도로 받아들이지 않나 싶다.

    물론 점점 더 강력한 흥분을 유발해야 하는 게임의 구조상 중독에 가까운 지경까지 가기도 한다. 그러나 중독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지루함으로 바뀐다. 아무리 재미난 게임이라도 오래 가지는 못한다. 필자는 게임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끝내줬던’ 게임이 결국 더 이상 처음 그랬던 것과 같은 흥분을 일으키지 못할 때 서글퍼진다. 그러나 부모로서 필자는 그것이 결국은 사필귀정이라고 생각한다.



    정리=이광일·주간한국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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