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문화로 세상읽기] '쉬리'의 미몽에서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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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9.05.04 16:41:00




  • 이제 모든 한국영화는 ‘쉬리’로 통할 것이다. ‘쉬리’처럼 만들어야 하고‘쉬리’만큼 흥행하지 않으면 주목받지 못할 것이다. 이제 신드롬도 끝나가는 ‘쉬리’가 막을 거두고 있다. 서울서 30개가 넘게 돌아가던 필름도 몇개로 줄었다.

    사실 ‘쉬리’가 거둔 열매는 엄청나다. 어떤 영화인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돌연변이로 밖에 설명할수 없다”고 말한다. 그만큼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열풍. ‘쉬리’는 ‘서편제’(서울 103만명)를 가볍게 뛰어넘고 ‘타이타닉’의 공식기록(서울 197만명)을 깼다. 4월28일에는 ‘타이타닉’의 비공식기록 226만명도 넘어섰다. 불과 개봉 75일만. 아마 두번 다시 이루지 못할 역사로 남을 것이다.

    한국영화로는 한(恨)을 풀었다. 꿈에 그리던 초대박(200만명). “100만명이 들여야 본전인 한국영화에 20억원이 넘는 돈을 쓰는 것은 미친 짓”“한국영화가 할리우드 오락물과 경쟁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인식을 깨버렸다. 투자사인 삼성영상사업단이 100억원, 강제규 감독이 50억원, 한석규는 10억원이라는 계산도 했다. 일본에 130만달러를 받고 수출도 한다. 미국 워너사와도 수출계약을 추진중이다. 잘하면 40개국에서 모두 650만달러를 벌어들전망이다.

    껄렁한 TV 시트콤과 경박한 코미디에 나와 재능을 탕진하던 최민식이 연기파로 다시 태어난 것도 즐거움의 하나였다. 무엇보다 ‘쉬리’가 우리에게 준 큰 선물은 심형래의 ‘용가리’와 더불어 우리영화에 대한 자부심과 ‘예술지상주의’가 아닌 산업으로서 영화의 가치를 심어준 것이다.

    그러나 이쯤에서 한번 차분히 돌아보자. ‘쉬리’가 온통 즐거움만 남겼는가를. ‘쉬리신드롬’의 정체는 무엇일까. 언론의 턱없는 찬사와 여론몰이가 만든 집단무의식. 그 제의(祭儀)는 ‘쉬리’에 대한 냉정한 객관적 잣대를 꺾어 버렸고, 신들린듯 사람들을 극장으로 몰아갔고, 보고나서 박수를 보내는 분위기로 몰아갔다. 중고생까지 단체관람에 열을 올렸고, 군인들의 교재로 활용한다는 섣부른 결정도 했다. 그속에 담긴 분단의 시각, 그것이 어떤 인식을 심어줄지 교육적인, 정책적인 검증절차조차 필요없었다.

    「타이타닉」기록을 깨야한다는 생각은 강박관념에 가까웠다. 나중에는『「쉬리」를 보는 것이 곧 애국』이란 논리가 성립됐다. 사실「쉬리」가 「타이타닉」의 국내흥행기록을 깨는 것이 한국영화가 미국영화를 이기는 것인가. 그럴려면 ‘쉬리’는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226만명, 아니 1,000만명이 들어야 한다.

    ‘쉬리’흥행이 미국의 스크린쿼터 폐지 압력을 더욱 부추길 것이란 지나친 억측이라고 제쳐두자. 문제는 ‘쉬리’이후의 한국영화다. 모두 외형적 규모를 생각한다. 제작비 20억원을 들먹이고 ‘블록버스터’라고 자랑한다. 최근 급부상한 한 조연배우는 “출연제의를 받은 작품이 모두 ‘쉬리’류”라고 걱정했다. 어느 영화사 시나리오 공모에도 ‘쉬리’를 연상시키는 남북대결과 액션이 주류를 이뤘다. 92년 ‘결혼이야기’성공후 한동안 로맨틱 코미디만 양상해 한국영화가 퇴보한 전철을 다시 밟으려 한다. 우리가 제3세계 영화권에 속해있고, 그런 나라들이 할리우드 모방으로 결국 나락으로 떨어진 전례까지 망각했다.

    「작품이야 어떻든, 장사만 잘되면 끝」이라는 얄팍한 일등주의도 고개를 내밀고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홍보전략. 최소한의 의리마저 잃어가는 충무로. 관객들까지 “재미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일시적 떼거리에 불과한 그들이 영화의 질을 높이거나, 시장을 확대하지는 못한다. ‘쉬리’이후 그나마‘내마음의 풍금’을 빼면 한국영화는 물론 수준높은 외화까지 철저히 외면당했다.

    자칫하면 한국영화 제작은 줄고, 외화 역시 오락물로 넘쳐날 것이다. 이제 영화인도, 관객도 「쉬리」의 미몽에서 벗어나야 한다. 신드롬은 신드롬으로 끝나야 한다.

    /이대현 문화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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