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땅이름 8] 서울 중구 장교동-장통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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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9.05.26 18:02:00




  • 서울 중구 장교동은 본디 아랫 보습곶이(下犁洞)이라 불려오던 마을이다.

    ‘보습곶이’란 지형이 논밭갈이 하는데 쓰이는 농기구 쟁기의 보습과 같이 생겼다하여 붙여진 땅이름인데 일제가 우리 국토를 유린하면서 이 ‘보습곶이’를 삼각형(三角形)에 비유, 자기들 입맛대로 삼각동이라 붙였던 것을 우리는 광복 반세기가 지났으나 아직도 그대로 쓰고 있는 실정이다.(오늘날 조흥은행 본점근처)

    그 보습곶이 아랫쪽에 있다하여 ‘아랫 보습곶이’라 불렀던 것을 1914년 4월 1일 일제가 부제(府制) 실시에 따라 남부대평방(大平坊)의 아랫 보습곶이, 대추나무골(棗洞), 모시전골(苧洞), 혜민동(惠民洞), 먹우물골(墨井洞)의 일부와 장교의 이름을 따 장교정(長橋町)이라 하였던 것을 해방뒤 1945년 10월 1일 그대로 장교동이라 하였던 것이다.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일제가 갖다 붙인 왜식 땅이름이다.

    이런 왜씩 땅이름들이 서울시내만도 아직 31%가 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으니 일제찌꺼기 청산과 민족정기회복 차원에서 하루 빨리 우리식 땅이름으로 바꿔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장교동 9번지와 종로구 관철동 47번지 사이 청계천 위로 옛날 다리가 있었는데 그 다리이름이 여러갈래이다.

    장찻골다리, 또는 장통교(長通橋) 잰다리 등 그 이름이 퍽 재미있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지금은 청계천이 복개되어 청계로로 변했지만 청계로7가 끝, 마장동, 답십리동에 가면 청계천의 일부를 볼 수 있다. 이 청계천을 사이에 두고 남쪽을 남촌, 북쪽을 북촌이라 부르며 너분다리(廣通橋), 물잰다리(水標橋), 하릿교(花橋) 등 다리가 여럿 있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청계천이 조선조가 도읍당시, 도성안의 하수로 구실을 하기위해 인공으로 팠던 개천인 만큼 그 너비가 넓을 수 없었다.

    따라서 거기에 남북으로 걸친 다리가 길면 얼마나 길었겠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데 다리이름은 장통교(長通橋)라!

    말하자면, ‘길게 통하는 다리’라는 뜻. 원래는 ‘짧은 다리’의 뜻인 ‘가느다란 다리’ 즉 ‘잰다리(細橋)’였다.

    이 ‘잰다리-잔다리-장다리’로 발음되면서, ‘장다리’라는 말이 뒷날 한자로 뜻빌림(意譯)한 것이 ‘장통교’또는 ‘장교(長橋)’로 변질된 것이다.

    글 뜻대로라면 ‘긴 다리’의 뜻이다.

    ‘잰다리(細橋)’와는 정반대의 뜻이 된 셈. 그러나 그 ‘긴 다리(長橋)’라는 땅이름에 걸맞게 오늘날 장교동 브렝땅 백화점앞에서 시작돼 한동안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도심고가도로였던 ‘청계천 고가도로’라고 하는 긴다리(長橋)가 길게 놓여 뻗쳐 있으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그런데 복개된 청계천길 속 옛 장통교에는 신미개조(辛未改造), 기해개조(己亥改造)라는 글귀가 있는 것으로 보아 몇번 보수를 했던 모양이다.

    청계천위에 세로로 놓였던 짧은 다리가 지금은 청계천 따라 가로로 길게 놓여 자동차 행렬이 물결을 이루고 있으니, 장통교(長通橋)라는 다리 이름 탓일까!



    이홍환·국학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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