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기사회생의 기업 한화그룹] 죽을각오로 팔아넘겨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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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9.11.30 17:59:00


  • ‘필생즉사, 필사즉생(必生卽死, 必死卽生)’

    글자 그대로 “살려고 한다면 죽을 것이요, 죽을 각오로 싸운다면 살 수 있다”라는 뜻이다. 이순신장군이 왜적과 싸울 때 병사들을 독려하던 말이다.

    그러나 한화그룹에서는 400여년전에 사용됐던 이 말이 여전히 ‘뜻깊은 말’로 회자(膾炙)되고 있다. 98년 시시각각 몰려드는 부도위기에 직면했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죽음을 무릅쓸 정도로 노력해야 한다”며 ‘필생즉사, 필사즉생’표어를 전 계열사 사무실에 비치토록 한 뒤 한화그룹의 사시(社是)가 된 것이다.

    어쨌든 ‘죽을 각오’로 구조조정을 한 덕분인지 한화그룹은 ‘구조조정의 모범기업’이라는 칭찬을 받으며 기적적으로 회생했다.

    비록 97년말 12조4,690억원에 달했던 자산규모가 99년 6월에는 8조6,000억원으로 30%가량 감소했지만 망령처럼 따라붙던 부도위기는 이제 옛말이 됐다. 97년말 1,214%였던 부채비율이 올 6월말에는 ‘10분의 1’수준에 불과한 183%(금융계열사, 한화에너지 제외)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화그룹은 어떤 과정을 통해 ‘구조조정 모범기업’이 된 걸까. 한화그룹의 주장대로 김승연 회장의 발빠른 대응 때문에 위기에서 벗어난 것일까, 아니면 무슨 또다른 사정이 있을까. 또 한화그룹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한화그룹의 자금난이 공식화한 것은 97년 여름부터다. 경향신문 등 비주력 계열사에 대한 과도한 투자, 한화종합금융 경영권 분쟁 등 악재가 터지면서 그룹전체의 신용도가 하락했다. 게다가 97년말 터진 외환위기로 한화의 주력계열사인 한화에너지에 대한 시중은행의 자금상환 압박은 한화그룹을 부도직전으로 몰아 세웠다. 97년 연말 주거래 은행인 한일은행의 주선으로 한화에너지에 대해 2,000억원의 협조융자가 급작스럽게 이뤄졌던 것도 당시의 다급했던 상황을 반영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한화그룹은 구조조정에 실패한 다른 기업과 특별히 다를 것이 없었다. 한화가 ‘회생의 길’로 접어들게 된 직접적 원인은 ‘팔릴 것을 팔아야 팔린다’는 전략을 충실히 따랐기 때문이다.

    한화는 97년 12월 이후 재계 일부에서 “저 것까지 팔아버리면 앞으로 사업을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라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핵심·알짜사업을 매각하기 시작했다. 한화바스프우레탄(1,200억원·독일 바스프), 한화기계 베어링부문(3,000억원·독일 FAG), 한화NSK정밀(200억원·일본 NSK), 한화자동차부품(280억원·캐나다 TESMA) 등이 잇따라 매각됐다.

    특히 사실상 한국 시장을 독점, 명실상부한 ‘돈 낳는 젓소(캐쉬 카우)’였던 한화기계 베어링부문의 매각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베어링부문까지 매각하는 것을 보고 난뒤 한화의 구조조정 의지를 확신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금융권도 한화그룹에 대해 매우 우호적이었다. 비록 김승연 회장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집까지 담보로 내놓는 등 성의를 보인 측면이 있기도 했지만 한화그룹이 98년 3월 신청한 한화에너지에 대한 2차 협조융자(3,000억원)가 쉽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금융권과 재계 일각에서는 한화그룹의 구조조정 노력을 평가절하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한화의 자체 노력보다는 ‘운이 좋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한화그룹의 미래도 다소 불확실하게 바라보고 있다.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한화가 다른 기업보다 먼저 자금난에 빠진 덕분에, 다소 빨리 구조조정에 착수했던 것 밖에는 내세울 것이 없다”라는 입장이다. 요컨대 ‘새옹지마(塞翁之馬)’ 같은 운명의 장난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특히 한화그룹 구조조정의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그룹의 한화에너지 인수가 정부가 직접 나선 ‘대규모 사업교환(빅딜)’때문이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따라서 한화그룹에 대한 이들의 전망 역시 매우 부정적이다. 실제로 한화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신용등급은 ‘구조조정 모범기업’의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저조하다. 10월28일 현재 김승연 회장이 대표이사로 등재된 ㈜한화의 회사채 신용등급은 투자적격의 최하위 등급인 ‘BBB-’에 머물고 있다.

    이밖에도 한화석유화학(회사채·BBB-)을 제외한 한화국토개발(기업어음·B-), 한화유통(회사채·BB), 한화증권(회사채·BB) 등 주요 계열사가 ‘투기적 등급’상태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한화가 지난 6월 대한생명 인수에 나섰던 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이제 막 구조조정을 끝낸 기업이 2조원이 넘는 부실 생보사를 인수하겠다고 나선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밖의 일이었다”고 꼬집었다.

    ‘구조조정의 모범기업’인 한화그룹이 ‘새 천년’에도 승승장구를 거듭할지 주목된다.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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