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기사회생의 기업 한화그룹] 평가 엇갈리는 '인간미 경영'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플러스 네이버 북마크 싸이월드 공감 기사 구입 프린트 기사메일
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9.11.30 18:02:00


  • 중국 원나라때 증선지(曾先之)가 펴낸 십팔사략(十八史略)에는 전국시대 위나라 장군이자 ‘오자병법’의 저자인 오기(吳起·기원전 440~381) 장군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위나라의 임금 문후(文侯)는 오기를 장군으로 기용해 진(秦)나라와 싸워서 그 성 다섯을 함락시켰다. …(중략)… 오기 장군은 사졸(士卒)들과 침식을 같이했다. 어느 날 오기는 한 병사가 종기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스스로 종기의 고름을 빨아주었다. 그 병사의 어머니가 이 말을 듣고, 목놓아 울었다.

    그 어머니는 ‘몇 해전에 그 아이의 아버지가 종기를 앓을 때, 오장군이 고름을 빨아주셨소. 남편은 그 은혜에 감복해 전장에서 열심히 싸우다가 전사했는데, 이번에 그 아이의 고름까지 빨아 주셨다니 그 아이도 은혜에 보답하고자 어디서 전사할 것이오’라고 말했다…”

    오기 장군처럼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적 행동으로 부하를 챙기는 것으로 따진다면 재벌그룹 회장중 누가 1위를 차지할까. 다소 이견이 있겠지만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돋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다른 재벌 총수들과 달리 김회장은 소위 ‘인간미 경영’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직원들의 조그만 부분까지 챙겨준다는 것이 내부의 얘기다.

    실제로 지난 10월30일 한화 이글스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뒤 김회장이 한화 이글스 유승안 코치의 부인인 이금복씨의 병실을 찾은 것은 ‘인간미 경영’의 대표적 사례이다. 이날 김회장은 사전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서울 방지거병원 중환자실을 찾아 이씨의 쾌유를 빌고 유코치를 격려했다.

    김회장은 중환자실에서 “용기를 잃지 말고 힘을 내 건강을 회복하기 바란다”며 이씨의 손을 굳게 잡아주었다. 담당의사로부터 병세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난 뒤에는 울먹이며 “이씨를 반드시 구해달라”고 호소, 주위를 뭉클하게 했다.

    김회장은 이에 앞서 10월29일 저녁 한화이글스가 한국시리즈에 우승한 직후 눈물을 흘려 화제를 낳았다. 이날 3루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본 한화그룹 직원들에 따르면 김회장이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김회장은 올해 초 한화증권 퇴직임원의 딸이 병마에 시달린다는 소식을 듣고 위로금을 전달하는 등 부하들의 ‘크고 작은’ 일에 온 정성을 쏟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오기 장군의 ‘부하 챙기기’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계산된 행동’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받은 것처럼 재계 일부에서는 김회장의 사생활과 경영능력에 대해 인색한 점수를 주고 있다.

    실제로 김회장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은 김회장이 93년 12월 ‘10대 재벌’ 총수로는 처음으로 외국환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된 사실을 예로 들고 있다.

    김회장은 당시 해외공사를 수주하면서 받은 650만달러를 국내에 반입하지 않고 미국 LA등지에 호화저택을 구입한 혐의로 검찰에서 곤욕을 치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다분히 정치적 배경 때문에 김회장이 고생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김회장의 도덕성에 흠집을 낸 사건임에는 틀림없다”고 말했다.

    김회장이 이때 구입한 LA별장은 지난해 9월25일 KBS가 ‘재벌총수의 외화유출’실태중의 하나로 보도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김회장의 경영능력에 대해서도 ‘극과 극’으로 엇갈리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81년 29세의 나이로 재벌총수에 오른 김회장이 특유의 결단력을 발휘, 한화그룹을 성장시켰다”는 긍정론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입장도 만만치 않다.

    사실 김회장의 경영능력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은 “김회장이 총수직에 오른 81년 까지만 해도 화약과 기계산업이 주력이던 한화가 현재의 주력산업인 석유화학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김회장의 뛰어난 판단 때문이었다”라는 입장이다.

    김회장은 82년 민영화대상으로 나온 한양화학과 경인에너지의 지분인수를 단행했다. 당시 한양화학은 연간 적자가 430억원에 달할 정도로 경영부실이 심했고, 경인에너지 역시 2차 석유위기로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었다. 대부분의 경영진이 인수에 반대한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김회장은 “석유화학의 전망이 결코 어둡지 않다”며 인수를 강행했다.

    김회장의 예상은 적중했다. 석유화학 산업은 급성장을 거듭했다. 석유화학산업은 한화그룹의 새로운 주력사업으로 자리매김을 했고 한화는 재계 랭킹 8위로 도약하게 됐다.

    하지만 김회장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해석을 내리고 있다. 김회장이 정력적으로 인수했던 한화에너지, 한화유통, 삼희투자금융, 경향신문 등이 지금은 어떤 상태이냐는 것이다.

    97년 한화그룹 전체를 자금난에 몰아넣었던 한화에너지는 이미 현대그룹으로 넘어갔고, 한화유통도 소위 롯데, 현대, 신세계 등 ‘빅3’에 밀려 업계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한화그룹이 금융업 진출의 교두보로 여겼던 삼희투자금융(한화종합금융)도 97년 심각한 경영권분쟁을 겪은뒤 98년 9월 금융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파산처리 됐다. 쉽게 말해 부정적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은 “김회장이 총수직에 오른뒤 의욕적으로 추진한 사업확장중 제대로 된 것이 별로 없는 것 아니냐”는 입장인 것이다.



    chcho@hk.co.kr

  • HOM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