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여권 권력지도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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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9.11.30 17:25:00


  • 여권의 권력지도가 바뀐다. 범동교동계로 분류되는 국민회의 한광옥부총재의 청와대 비서실장 임명, 동교동 직계인 국민회의 남궁진의원의 정무수석 임명이 결정적 계기다.

    지도 변화의 가장 큰 줄기는 신주류의 추락, 구주류의 세확대이다.

    지금까지 여권의 권력지도는 동교동계를 주축으로 한 구주류와 구정권출신 김중권 청와대비서실장을 정점으로 한 신주류간의 견제와 갈등, 이로 인한 긴장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신주류에는 김 전실장과 김정길 전정무수석, 이종찬 전국정원장 등이 대표적 인물로 분류돼 왔다.





    2년간 DJ지근거리의 신주류 득세



    대부분 현여권에 뚜렷한 세력기반이 없는 구여권 또는 상도동계 출신 신주류측은 최고권력자의 신임, ‘직책’의 프리미엄을 바탕으로 정부 인사 등을 통해 세확산을 시도해 왔다는 게 정설이다.

    경찰 등 권력기관을 중심으로 “특정인의 학맥, 지연으로 얽힌 인사가 판치고 있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대통령 주변의 영남출신 신주류들이 정부 요직 인선을 좌지우지, 사실상 호남은 이 정권에서도 역차별당하고 있다”는 등의 불만이 나온 것도 이런 배경에서이다.

    구주류측이 “도대체 정권이 바뀌어도 정부 인사에는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푸념아닌 푸념을 했던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이다.

    신주류측의 이같은 움직임은 97년 대선당시 “김대중후보가 집권해도 청와대·정부의 임명직에는 취임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자팽(自烹)선언’으로 스스로 운신의 폭을 당과 국회안에 가둬놓았던 구주류측과는 크게 다른 것이었다. 신·구주류간의 마찰은 당연지사였다.

    양측의 대립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은 옷로비파문, 김태정 전법무장관 경질 파동이 불거졌던 6월 전후였다. 당시 구주류측은 “신주류가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고 있다”고 공세를 폈다. 주요 인사들은 사석에서 “우리(구주류)가 청와대에도 들어가야겠다. 자팽선언 때문에 동교동 직계가 어렵다면 범동교동계 의원이 의원직을 떼고라도 청와대에 들어가게 해 대통령을 모시도록 하겠다”고 자신들의 복안을 털어놓기도 했다.

    반면 신주류측은 “가신·측근정치의 폐단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고 견제구를 날렸다. 이들도 “구주류측은 정규 루트를 배제하고 대통령과 직거래를 하고 있어 국정 의사결정구조의 왜곡을 초래했다” “능력과 자질면에서 역대 대통령을 모셔 본 우리가 야당만 해온 사람들보다 못하기야 하겠느냐”는 식의 논리를 펴며 대항했다.

    이 과정서 ‘녹음테이프’사건이 발생했다. 개요는 이렇다. 당시 신주류측 모 핵심인사가 지방나들이를 했다. 대구·경북의 한 지역에서 당원과 자신의 지지자들을 만난 그는 “가신들로는 안 된다”는 요지의 강연을 통해 구주류들을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심지어 구주류의 핵심인물인 국민회의 모 간부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공격하기도 했다. 이 내용이 구주류와 가까웠던 한 강연 참석자에 의해 고스란히 녹음됐고 테이프가 구주류측 모 인사에게 전달됐다. 구주류측이 흥분했던 것은 당연했다. 발언 당사자의 해임론이 공공연히 거론되는 험악한 상황이 됐다.

    이런 위기상황은 신·구주류 인사들의 전격 회동, 김대통령의 구주류 진무 등을 통해 가까스로 잦아들 수 있었다.





    구주류 국정정면에 포진



    그러나 이제 대표주자였던 김중권 전실장과 김정길 전정무수석이 모두 청와대를 나오게 됨으로써 신주류의 위축은 불가피해 보인다. 물론 16대 총선때 영남에서 출마할 게 확실한 김 전실장 등이 지역정서의 벽을 뚫고 당선된다면 제2의 정치적 도약을 이룰 여지는 충분하다.

    두 김씨와 함께 신주류의 핵심이었던 이종찬 전국정원장은 언론문건 사건이 터지면서 이미 정치적으로 크게 힘을 잃은 상태이다.

    신주류에 비해 구주류는 사실상 국정의 전면에 나서며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떠안게 됐다.

    동교동계로 요약되는 구주류중에서도 국민회의 권노갑 고문의 입지 확대에 정가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권고문은 이번 청와대 인사를 전후해 여러 차례 김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청와대로 가 동교동·범동교동계 전진 배치를 주장, 관철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한광옥 비서실장의 임명을 강력히 요청했다는게 정설로 돼 있다.

    사실 현 정권들어 권고문의 입지는 심한 부침을 겪어 왔다. 한보사태에 연루돼 감옥에서 나온 뒤에도 정권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고 수개월간을 미국와 일본에서 사실상의 ‘유배’생활을 해야 했다. 지난해 말 귀국한 뒤에도 한참동안 정치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 김대통령의 근신 지침이 있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러나 올 하반기들어 정국이 경색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여권의 위기감이 심화하면서 대통령이 다시 그를 찾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난 추선연휴 직후 청와대 방문이 그에 대한 김대통령의 공식적인 정치사면이었다는 전언이다.

    그 뒤 권고문은 여야를 넘나들며 자신의 고유한 입지를 닦았고 이번 청와대 인사를 통해 ‘동교동 2인자’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다졌다는 평가이다.





    권노갑고문 활동반경 넓어져



    ‘무관’으로 원외인 권고문의 세 확대가 그의 공백기간 나름대로 ‘기득권’을 쌓아 온 국민회의 한화갑총장, 김옥두총재비서실장 등 다른 동교동 1세대 실세들의 권력 지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도 정치권이 크게 주목하는 사항.

    여권내에서는 “권고문이 잠행하고 있는 동안 한총장과 김실장이 동교동계 지휘탑 자리를 놓고 보이지 않는 세 경쟁을 벌였으며 올 6월 국민회의 사무총장 인사가 두 사람이 가장 치열하게 맞붙었던 경우”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총장 인선과정에서 한총장의 지나친 부각을 막기 위해 권고문이 한총장 견제차원에서 김옥두실장을 강하게 지원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는 소문도 있었다. 이 연장선상에서 이번 청와대 인선 결과를 놓고 일부에선 “권고문이 한광옥실장안을 세게 민 것은 한총장에 대한 또다른 견제구”라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이와함께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거리서 보좌하게 된 한광옥 실장이 얼마나 자신의 권력 몫을 찾으려 할 지도 지켜볼 사안이다.

    “이제 신·구주류간의 다툼은 끝나고 구주류 본류 내부 및 본류와 한광옥실장 등 지류(支流)세력간의 파워게임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관측은 앞으로 여권내의 ‘파워 스트러글’이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전개될 것인가를 감지케 하는 것이다.



    h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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