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벗길수록 커지는 요지경 '옷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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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9.11.30 17:35:00


  • “옷인지 밍크코튼지 그 여자들한테 그냥 입으라고 하세요. 이제 옷로비사건 좀 그만하면 안됩니까.”

    최근 한국일보 편집국으로 전화를 걸어온 독자가 내뱉은 말이다. 이 독자외에도 국민들 상당수가 올초부터 끈질기게 계속되고 있는 옷로비사건이 이제는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염증에도 불구하고 옷로비사건의 행로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입가경이다. 고관대작부인들을 상대로 한 로비가 있었느냐에서 검찰과 사직동팀이 사건을 축소왜곡했다는 의혹으로 전환되더니 갑자기 초대형 로비스트 용의자가 나타나 권력형 로비의혹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여러사람이 유탄을 맞고 쓰러졌고 검찰이 또 다시 수사에 착수하는 등 애초에 무엇 때문에 이 사건이 시작됐는지 조차 헷갈릴 정도로 사건은 어지럽게 진행되고 있다.

    김대중대통령은 11월 27일 신당창당위원들과 조찬간담회에서 이 사건을 ‘신동아측의 실패한 로비, 그러나 사건진상 왜곡보고와 보고서 유출책임자는 엄단’으로 정리했다.





    로비는 실패, ‘복수’는 성공(?)



    신동아그룹 최순영 전회장이 외화유출혐의 등으로 서울지검의 수사대상에 오른 지난해 10월께부터 신동아그룹측은 그야말로 사생결단식의 로비를 펼쳤다. 검찰도 그 위세에 눌린 탓인지 신동아그룹측의 외자유치협상에 영향을 준다는 명목을 내세워 최씨 사법처리를 한동안 중단했다.

    엠바고(보도 잠정 금지)까지 걸어놓아 공식보도가 없는 상태에서 서초동은 물론 증권가에는 신동아측의 로비실태에 대한 확인할 수 없는 온갖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나 최씨가 올해 2월 외환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됐다. 최씨측은 그룹 주력사인 대한생명을 건지기 위해 마지막까지 버텼지만 그마저도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 밀려 실패하고 경영권을 빼앗겼다.

    최씨측이 사법처리를 면하기 위해 벌였던 로비가 어느 정도였는지 이제 하나 둘씩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김대통령조차 “최 전회장측이 내가 무시할 수 없는 교계지도자들을 내세워 억울함을 호소하려 했지만 만나주지 않았다. 집사람한테도 로비를 벌이려 했다”고 실토했다.

    옷로비의혹 사건도 최씨측이 검찰총장의 부인을 상대로 벌인 로비의 하나였지만 2월 최씨가 구속됨으로써 별무소득이었다.

    그러나 옷로비사건의 유탄은 정확히 당시 수사 수뇌부를 관통했다. 김태정씨는 당시 검찰총장으로 최씨 수사를 최종 책임진 위치였고 박주선 청와대 전 법무비서관은 사정수사의 조율책임자였다. 김씨는 부인 연정희씨가 개입된 옷로비사건에도 불구하고 법무장관으로 영전했다가 한달도 버티지 못하고 조폐공사파업유도사건으로 불명예퇴진했다가 이번에 정통으로 실탄을 맞은 셈이다.

    박 전비서관은 고교선배이자 막역한 검찰선배인 김씨를 도와주려다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고 국정을 농단한 비서관’으로 몰렸을 뿐만 아니라 조만간 사법처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갑자기 무대위로 나타난 재미동포 박시언(61)씨가 옷로비사건 사직동팀의 내사결과보고서를 한 신문사에 통째로 건네준 것이 결정적이었다.

    신동아건설 고문인 박씨는 최씨의 사법처리를 막기위해 활동한 로비스트로 알려져있다. 당시 수사실무책임자였던 김규섭 서울지검 3차장(현 대검 공판송무부장)도 최씨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해 10월 집무실에서 박씨와 만난 사실이 밝혀져 곤혹스러운 입장에 놓였다. 결과적으로 온갖 압력에도 불구하고 최씨를 사법처리한 사정핵심멤버들이 뒤늦게 터진 후폭풍에 휘말린 것이다.





    의문의 인물, 박시언씨



    대부분의 아줌마들이 IMF로 팍 줄어든 남편의 월급봉투로 하루 하루 살아갈 걱정을 하고 있을 때 고관대작 부인들이 몰려다니며 어떤 짓을 했는지는 이제 국민들의 관심에서 벗어났다. 대충 윤곽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사태의 초점은 새롭게 등장한 박시언씨에게로 옮겨졌다.

    특히 박씨의 전력은 현 권력층과 관련가능성을 농후하게 풍기고 있어 여권은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표정이다. 사정의 총책임자로 서슬퍼런 검찰총장실에 찾아가 내사보고서를 보고 복사까지 해 올 수 있는 인물이 과연 어떤 사람인지, 미국 시민권자인 그가 지난해 신동아부회장으로 임명된뒤 한국에서 무슨 활동을 했는지 의문투성이다.

    박씨는 전남 해남출신으로 목포고를 졸업했다. 공병장교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이 때 미군장교로 근무하던 제임스 루빈 전 미재무장관을 알게됐으며 전역후 루빈의 주선으로 미국이민을 갔다.

    뉴포트대를 졸업한 박씨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부동산과 건설업으로 성공했으며 한인회 활동을 기반으로 정치에도 참여했다. 80년대초 미국에 망명한 김대중 대통령과 친분을 맺었고 뉴욕한인회장이던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과 여당의 의원들과도 안면을 트고 지내는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최 전회장이 미국 생명보험회사인 메트로라이프와 외자유치교섭을 성사시키기 위해 루빈 재무장관과 친분이 있는 박씨를 영입하면서 최씨와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최근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지난해 6~7월 당시 김태정 검찰총장과 박주선 법무비서관, 박지원 공보수석 등을 만나 최회장을 선처해달라고 부탁한 사실을 시인했다. 박씨는 “허위가 진실로 둔갑되는 것을 지켜볼 수 없어 (사직동팀 내사보고서)공개를 결심하고 최 전회장과 상의, 최 전회장이 반대했지만 공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씨가 순수한 정의감에서 보고서를 공개했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보고서 공개배경을 둘러싸고 벌써부터 보복설, 특검견제설 등이 난무하고 있고 야당은 박씨가 현정권의 핵심인물들에게 로비를 벌였다며 정치쟁점화를 시도하는 등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찝찝한 검찰, 전직 고위간부들 손대야



    다시 검찰이 이 사건 수사에 개입하게 됐다. 김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사직동 보고서 유출사건을 떠맡게 된 검찰은 찝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미 옷로비사건에 대한 최초 수사가 헛점투성이였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 국민들의 신뢰를 잃은데다 얼마전까지 모시고 있던 검찰간부를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 곤혹스럽기 때문이다.

    검찰은 일단 이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관련자들을 속속 소환하고 있다. 검찰은 검찰총장실에서 보고서를 유출한 박씨에 대해 절도 등 혐의로 신병을 확보한뒤 신동아측의 로비실태를 철저히 파헤치겠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의 단호한 지시를 감안할 때 김태정 전법무장관과 박주선 전법무장관의 사법처리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영남정권하에서도 잘 버텨왔던 검찰내 대표적인 호남출신 인재가 호남정권이 들어서 겨우 빛을 보는가 했다가 날개도 없이 추락하게 된 것이다.

    특히 전남 보성출신으로 사법시험 16회에 수석합격했던 박 전비서관은 서울지검 평검사 시절 신안앞바다 보물 유출사건을 밝혀내 주목을 받았고 호남출신으로는 최초로 서울지검 특수1부장에 임명되는 등 검찰내 대표적인 특수통으로 꼽혀왔다.

    박 전비서관은 고교 10년선배로 사석에서는 ‘형님’으로 부를 정도로 절친했던 김 전법무장관의 추천으로 권력의 핵심에 들어갔지만 결국 선배와 함께 몰락하게됐다.



    songy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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