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중국의 야심 "10년후 달착륙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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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9.11.30 18:10:00


  • 11월20일 새벽 3시41분 중국 북쪽 네이멍구(內蒙古) 사막. 무게가 10톤이나 되는 우주선 ‘선저우(神舟)’호가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사뿐히 지상에 내려앉았다.

    같은 시각 권력의 중심 베이징(北京)의 ‘중국우주센터’. 19일 오전6시30분 간쑤(甘肅)성 주취안(酒泉) 위성 발사센터에서 창정(長征) 2호F 로켓에 얹어 선저우를 하늘에 쏘아올린 이후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못했던 중국 우주과학자들은 일제히 환성을 질렀다.



    구소련·미국에 이어세계 세번째



    중국이 구소련, 미국에 이어 세번째로 무인 우주선 발사에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국가 시조(始祖)인 마오쩌뚱(毛澤東)이 57년 “우리도 인공위성을 만들자”고 공언한 이후 42년만에 이룬 쾌거였다.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이 직접 명명한 선저우는 이륙 10분후 로켓에서 분리, 지구를 14바퀴 돈뒤 우주지휘 통제센터와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의 관측함들의 제어를 받아 목표지점으로 정확하게 되돌아왔다. 선저우는 중국의 미칭(美稱)인 ‘선저우(神州)’와 동음이의어로 중화(中華) 민족주의와 맥이 닿아있다.

    관영 신화(新華)통신은 지난 500년간 중국인들이 품어왔던 우주 비행의 꿈이 실현 단계에 왔다며 “이번 비행 성공을 계기로 국력강화, 과학기술증진, 국위선양, 국가 자존심 고양의 효과를 볼 것”이라고 극찬했다. 중국 정부는 선저우에 게양됐던 중국 국기를 2000년 1월1일부터 베이징의 천안문(天安門) 광장에 게양, 자존심을 국민과 함께 한껏 드날릴 계획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주선은 첨단 과학기술과 경제력이 결집된 총체적 국력을 상징한다. 중국의 우주선 발사는 미국 일본 등 보수 정치인들의 이른바 ‘중국 위협론’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이들은 특히 이번 성공을 두고 중국당국이 “과거 원폭 수폭 인공위성을 독자개발한 위대한 정신의 발휘”라고 칭송하며 “우주개발이 종합국력과 국방력 강화로 이어지도록 하자”고 밝힌 점을 주목하고 있다. 중국의 군사·경제 강대국화를 우려하는 이들에게 경제대국인 일본과 유럽이 아직 못 이룬 우주선 발사를 중국이 선점(先占)한 것은 분명 충격이었다.

    유럽은 ‘아리안’ 로켓 프로그램을 야심만만하게 추진했지만 막대한 개발비를 대지 못해 지구 궤도만 뱅뱅 도는 무인 인공위성 발사에만 만족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 15일 국산 로켓 H2의 엔진고장으로 다목적위성 발사에 실패해 자존심을 구긴 상태다.





    다음 행보는 유인우주선 발사



    중국의 다음 행보는 당연히 유인 우주선 발사다. 중국 우주 비행 프로그램의 영국인 전문가인 필립 클라크는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첫 유인 우주선 발사는 내년 10월에서 12월 사이에 실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의 포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남부 광시(廣西)성 베이하이(北海)시에서 열린 전국우주과학자 회의는 ‘달과 화성에 착륙하는 것’을 중국의 21세기 우주 계획의 ‘2대 목표’로 설정했다.

    중국 우주과학자 협회의 예 질리 총서기는 “이미 프로젝트에 대한 10여개 계획을 검토중”이라면서 “달과 화성의 자원을 개발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중국이 10년 안에 달 우주선을 운반할 수 있는 대형 로켓을 포함, 신형 발사체 모델 개발을 완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의 개가는 하루 아침에 이뤄진 기적이 아니다. 중국 과학자들은 58년 량탄이싱(兩彈一星·수소폭탄 원자탄 인공위성) 개발 계획이 입안된 후 40여년 동안 수없는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이들은 특히 자력갱생을 위주로 하면서도 구소련의 기술을 도입하는데 적극성을 보였다.

    이 결과 중국은 60년 구소련의 ‘P-2’를 모방한 최초의 로켓 시험 발사에 성공한데 이어 66년 ‘창정 1호’ 로켓 발사, 70년 최초 인공위성 ‘둥팡훙(東方紅) 1호’ 발사에 성공했다. 이후 라디오와 TV 보급률을 각각 85%와 79%로 끌어올린 둥팡훙 3호 등 인공위성들이 잇달아 발사돼 미중력(微重力) 상태의 우주공간에서 재료가공 생물생리 등 분야의 연구에 성과를 거뒀다.

    92년 확정한 유인 우주선 발사계획인 이른바 ‘921 공정(工程)’실행과정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생명 유지 시스템 등 일부 기술과 조종사 훈련을 러시아에 ‘비싼 대가’를 치르고 도움을 받은 게 분명해 보이지만 자체적인 기술개발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중국은 우주인 양성을 위해 회전의자실(180도 시계, 역시계 방향 전환 및 상하전후운동), 인체원심분리기실(16m 회전판) 고압산소실, 저압실 등을 갖춘 자체 시설을 베이징 서쪽 교외에 갖추고 있다.

    일부 서방 전문가들은 중국이 이번에 성공한 선저우는 러시아에서 사들인 30년된 우주선 ‘소유즈’를 변형시킨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 했다. 이들은 구소련 시절 누렸던 특권을 상실한 러시아 기술자들이 우주선을 팔아넘겼을 것으로 추측했다.



    독자기술 확보, 우주개발에 박차



    그러나 우주기술은 국경을 쉽게 넘나드는 ‘상품’이 아니라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클라크는 “일부 장비는 가능하겠지만 중국이 우주선 전체를 러시아에서 사들였다는 주장은 터무니 없는 주장”이라면서 구체적으로 “선저우는 태양 전지판이 4개인 반면 소유즈는 2개이고 우주선 전방 모듈도 구형 대신 원주형”이라고 말했다.

    추진선실과 귀환선실, 궤도선실 3부분으로 되어 있는 선저우의 경우 ‘소유즈’를 모델로 했으나 중국식으로 재개발됐고, 선저우를 실어나른 창정 로켓은 중국의 독자 기술이다.

    중국의 우주진출 성공은 과학기술 관련 논문 발표 세계 10위라는 저력, 과학기술자에 대한 우대 정책, 수십년 앞을 내다보는 당국의 계획, 일사불란한 조직 등도 한몫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중국이 로켓이나 위성 발사 실험에서 실패한 경험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중국은 지난해 말까지 78개의 자체 제작 혹은 외국 인공위성을 발사했는데 발사성공률은 80% 상, 위성반환 성공률이 94%에 이르러 기술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중국의 우주 개발을 보면서 기초 과학의 토대 구축을 등한시하고 모방과 응용의 길로만 치닫고 있는 한국 과학기술 정책의 오늘을 다시한번 되돌아보게 된다. 모방과 응용이 무가치한 것은 아니지만 이것 만으로는 고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없을 뿐더러 세계질서의 중심부로 진입할 수 없다.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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