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몽골기행] 왕소군의 비파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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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9.11.30 18:39:00


  • 호호트시(市)는 내몽골의 수도다. 중국 자치령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울란바토르보다 활기가 넘친다. 방송국 송전탑이 높이 솟아 이를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하다.

    먼저 시내 중심에 있는 왕소군(王昭君)의 묘를 찾았다. 전부터 왕소군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척이나 관심이 가는 곳이어서 호기심으로 조바심까지 생긴다. 경내에 들어서니 말을 타고 있는 왕소군 동상이 우리 일행을 맞이하고 있지만 조금 슬퍼 보인다. 이성보다는 감성이 승하는 순간이다. 차라리 그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면 이 동상은 어떻게 보여졌을까.





    절세미인 왕소군의 묘



    왕소군은 절세미인이라고 하지만 마음씨까지 고운 여인이다. 원제(元帝)는 자신 곁에서 시중을 들 궁녀를 선택할 때는 언제나 화공이 그린 초상화를 보고 채택 여부를 정했다고 한다. 그러니 궁녀들은 선택을 받으려고 화공에게 곱게 그려 달라고 뇌물을 주곤 하였다. 모든 궁녀가 다 그렇게 했지만 오직 왕소군만은 뇌물을 받치지 않았다. 괘씸하게 생각한 화공은 그녀를 아주 추한 얼굴로 그리고 말았다. 선택될 리가 없었다.

    나중에 흉노가 미인을 요구하므로 추녀로 그려진 왕소군을 뽑아 보내게 되었다. 흉노로 떠나는 왕소군을 본 원제는 그림과 달리 절세미인이어서 한탄했으나 어찌 할 수 없었다. 왕소군은 말을 타고 흉노로 떠날 때 비파를 뜯으며 원한의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 내용이 ‘왕소군원가(王昭君怨歌)’라는 가사로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의 입에 회자되고, 너무나 유명하여 이 곳에서는 호텔 이름으로까지 등장한다. 무덤이라고는 하지만 그 규모가 너무 커 작은 동산만 하고, 무덤 위에는 정자가 세워져 있어 정말 그의 무덤인지 의심이 생긴다.

    어떤 사람은 중국 내에 왕소군 무덤이 여럿 있다고도 하니 더욱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가을이 되어 모든 풀들이 누렇게 변해도 이 무덤의 풀만은 파랗게 그대로 있다고 해서 ‘청총(靑塚)’으로 불리기도 한다.‘푸른 빛’을 띤다고 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값진 전설이 아닌가.

    계단을 따라 오르자니 마치 절세미인을 밟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꼭대기의 정자에서 옛날 그 시대로 돌아가 미인의 슬픔을 생각함으로써 계단과 정자는 역할을 충분히 하는 듯 했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탑신



    아쉬운 마음을 뒤에 남기고 오탑사(五塔寺)로 갔다. 1727년에 세워진 이 탑은 이름 그대로 다섯 개의 탑으로 구성되어 있다. 높이는 16.5m이다. 원래 이름은 금강좌사리보탑(金剛座舍利寶塔)이다. 이 탑의 특징은 탑에 새겨진 부조불상이 1560 존위나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천불탑(千佛塔)이라고도 한다. 그 어느 하나 같은 모습은 없다. 너무 많아 손과 턱으로 헤아려 보지만 끝내 눈에 눈물이 고이고, 그게 그 것 같아 중간에 그만 포기하고 만다. 정말 눈이 시리다.

    이어서 간 곳은 시 외곽에 있는 백탑(白塔)이다. 목재로 세워진 탑인데 하얀색으로 도색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원래 이름은 만부화엄경탑(万部華嚴經塔)이다. 평지보다 낮게 탑 자리를 마련하고, 8각형의 7층으로 높이는 55.5m다. 돌로 만든 의자에 앉아 탑을 내려다보면 눈이 부시다.

    탑신 표면에는 섬세하고 아름답게 불상·보살·금강·역사상(力士像)이 부조되어 있고, 내부는 계단이 설치되어 7층까지 올라가게 되어있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며 불심이 발현되기를 기대하지만 대처의 속내가 드러나 이내 지쳐버리고 만다. 내려가 안내문을 읽어보니, 중국에서 현존하는 요탑(遼塔) 가운데 가장 섬세하고 아름다워서 국가 지정 주요문화재로 보호되고 있었다.

    호호트시에 있는 조선족 학교를 찾았다. 공식 명칭은 호시흥안로민족소학(呼市興安路民族小學)이다. 실내에 들어서면 빨간색이 지배적이어서 분위기가 무겁다. 진학원(陳學元) 교도 주임 안내로 학교 전반에 대하여 소개받을 수 있었다.





    조선족학교의 열악한 우리말교육



    ‘근면·단결·수칙·애교’를 교훈으로 학교가 운영되고 있었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특히 예산과 교재의 부족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한다. 그렇다면 민족 자존을 지키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인상적인 것은 빨간색 바탕에 노란색 글씨로 ‘민족 교육의 한 떨기 꽃’ ‘미래는 동무들의 것임’이라는 문구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동무’라는 단어가 주는 여운이 묘하다. ‘동무’처럼 좋은 말도 없지만 북쪽에서 쓴다고 하여 푸대접을 받는 터인데, 이곳까지 와서 보게 되니 기분이 야릇하다.

    연변에서 출판한 책을 교재로 쓰고 있고, 조선어는 하루에 한시간씩 한다는 이야기가 못내 안쓰럽다. 도울 방도가 없나 궁리하지만 우리로서는 역부족이 아닌가. 가방에 넣고 다니던 ‘임꺽정우리말용례사전’을 건네주어도 아쉬운 것은 마찬가지로 마음 한구석에 남아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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