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현대판 노비문서에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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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9.11.30 18:13:00


  • 직업 선택의 자유는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 기본권이다. 하지만 아직 이 기본권이 크게 침해 받는 사각지대가 있다. 프로야구, 프로축구와 같은 국내 프로 스포츠계다. 이곳에는 연일 팬들의 열광적인 환호와 언론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는 스타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그런 스포츠 스타들이 거대한 조직의 힘에 짓눌려 동종의 타 직장으로 옮기려해도 그럴 수가 없다. 팬들의 환호, 고액 연봉에 둘러싸여 화려할 것만 같은 이들 스포츠 스타들의 뒤에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무거운 족쇄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기본권까지 침해하는 족쇄는 다름아닌 프로스포츠 내부 규정이다.





    구단 일방적 지명, 야구인생 망쳐



    이 규정의 대표적인 희생양으로는 전 국가대표 투수인 임선동(26)을 들 수 있다. 선동렬을 이을 차세대 간판으로 꼽혔던 임선동은 연세대 재학시절인 95년 10월 일본 다이에 호크스와 계약금 1억5,000만엔, 연봉 1,200만엔에 입단 계약을 하고 일본 진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꿈은 얼마 안돼 여지없이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프로구단인 LG가 ‘임선동은 우리 선수’라고 주장하며 일본 진출을 저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물론 임선동은 당시 LG와 어떤 계약도 없었다. 그럼에도 LG는 임이 휘문고 3년 재학중인 91년 그를 1차 신인 지명했으므로 임선동은 평생 자구단의 소속이라고 주장하고 나왔다.

    임선동 입장에선 자신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프로구단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1차 지명했다고 해서 자신의 평생 연고권을 주장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임은 그해 11월말 서울지법 남부지원에 ‘지명권 효력정지 및 방해금지’가처분을 신청하며 법정 투쟁을 시작했다. 임은 이듬해 서울지법에 LG를 상대로 지명권 무효확인 소송까지 제기, 4개월간의 지리한 공법 끝에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그러나 법적 승리에도 불구하고 그의 일본행은 결국 좌절됐다. 구단주들이 사실상 이끄는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일본야구기구(JBO)에 83년 상호간 맺은 한일야구협정서를 근거로 들며 임선동의 일본 진출을 불허해 달라고 압력을 넣은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다이에 구단측 마저 양국의 마찰을 우려, 임선동 스카우트 포기를 선언하고 말았다.

    임선동은 마지못해 LG에 입단했으나 쌓인 앙금과 오랜 공백 후유증으로 제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2류 투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가능성 있는 재목의 야구 인생이 망쳐진 것이다.

    국내 스포츠계를 한바탕 뒤흔들었던 ‘임선동 파동’은 프로야구계에 적잖은 변화를 몰고 왔다. 이 사건으로 평생을 족쇄처럼 따라다녔던 1차 지명 보유기간이 2년으로 축소됐고 자유계약선수제도(Free Agent) 도입에 대한 논의가 모락모락 피어나기 시작했다. 82년 프로야구 출범후 15년간 무시되어 왔던 선수들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나마 수면위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구단주들 당합, 선수들 그저 따라가야



    이처럼 선수들의 기본권이 철저히 외면되는 것은 프로 구단주의 철통(?)같은 담합 때문이다. 프로야구의 전반적인 운영과 행정을 총괄하는 KBO를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8개 구단들은 선수들의 과도한 연봉 요구를 사전에 봉쇄하기 위해 갖가지 제도적 통제 장치를 만들어 놓았다.

    연봉상한제, 이적 동의제, 선수지명제 등…. 15년간 100억원을 번 선동렬이 일본에서 단 2년간 번 액수가 한국에서의 11년 수입보다 많은 것도 바로 이런 담합행위의 산물이다.

    프로야구와 함께 국내 프로스포츠의 한축을 이루는 프로축구는 더욱 열악하다. 한마디로 ‘종신고용제’의 전형이다. 한번 구단에 소속된 선수는 그 구단이 허락하지 않는 한 사실상 타구단으로 이적이 불가능하다. 보통 타구단으로 이적할 때는 전 구단에 엄청난 금액의 이적료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특급선수가 아니면 꿈도 꾸지 못한다.

    한 예로 93~95년 3년간 일화의 3연패를 이끌었던 ‘적토마’ 고정운은 97년 2월 이적료 100만달러(당시 약 10억원)에 일본 세레소 오사카로 트레이드됐다. 고는 올해 다시 선수 연봉과 계약금외에 3억원의 추가 이적료를 지불한다는 조건으로 포항으로 옮겼다. 극소수의 초특급 선수가 아니면 구단이 이런 엄청난 이적료를 부담하면서까지 선수를 데려가지 않을 것임은 단적으로 말해주는 사례다.

    이처럼 현대판 노비문서라는 지적이 계속되자 프로야구가 올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FA제도를 도입, 시행에 들어갔다. 95년 임선동파동 이후 선동렬, 이종범(이상 해태), 이상훈(LG) 등 주전급 투수들의 일본 진출의 문이 하나둘씩 개방되면서 더이상 선수들을 묶어둘 명분이 사라진 것이다.





    자유계약선수제도 도입, 족쇄 여전



    하지만 말이 자유계약선수 제도이지 세부 사항을 들춰보면 아직 족쇄의 잔재는 여전하다. KBO는 한해 동안 등록일수가 150일 이상이거나, 전경기의 3분2 이상 출전한 시즌이 10시즌이 지나면 FA 자격을 갖도록 했다. 해외 진출을 원하는 선수는 7시즌간 이 조건을 충족하면 된다.

    이것은 18세에 고등학교를 나와 곧바로 프로에 뛰어든 선수라도 병역 의무를 치르면 30세가 되야 FA 자격을 획득할 수 있다는 얘기다.

    활용할 만큼 다 활용한 다음에야 시장에 내놓겠다는 심보다. 더욱이 FA 자격 요건을 갖춰 자유계약 선수를 신청했다 하더라도 대략 10주 이내에 구단과 계약을 하지 못하면 1년간 선수 생활을 못하도록하는 가혹한 규정을 추가했다.

    올해의 경우 FA를 신청한 선수는 FA 공시날부터 2주가 되는 11월 27일까지 올해 소속 구단과 재계약하거나, 내달 31일까지 올해 소속구단을 제외한 7개 구단과 계약을 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도 계약이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내년 1월31일까지 전구단을 상대로 최종 계약해야 한다. 만일 이때까지 계약이 안되면 그 선수는 내년 한해동안 야구생활을 중단해야 한다. 구단에 믿보이면 선수 생활 자체가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제동 장치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어느 구단이 FA 신청 선수 한명을 영입하려면 전년도 소속 구단측에 새로 체결한 연봉의 200%를 보상해 줘야 한다. 여기에 주전 20명을 제외한 엔트리에서 선수 1명을 전 소속 구단에 내줘야한다. 그리고 새 구단은 FA로 수혈한 선수에게 전년도 연봉의 150% 이상은 못 올려주도록 규정했다.





    극소수 특급선수 제외하곤 유명무실



    말이 FA지 실제론 극소수의 특급 선수를 제외하곤 신청이 거의 불가능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누가 타구단에 엄청난 돈과 선수까지 내주면서 FA선수를 영입하려 하겠는가.

    이런 제도적 장치 때문에 올해 FA 대상자 16명중 실제 FA를 신청한 선수는 이강철 김정수 송진우 송유석 김동수 등 5명에 불과하다. 사전에 타 구단측과 입단 이야기를 마친 선수가 아니면 감히 소속 구단에 밉보일까봐 FA 자체를 입밖에도 못 꺼낸다.

    KBO의 이상일 운영부장은 “현행 규정은 선수들에게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 프로야구는 자체 운영이 가능한 미국과 달리 한 구단당 연간 100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볼 만큼 열악하다. 선수와 구단이 모두 한발씩 양보하면서 차근차근 미래를 향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정성은 스포츠의 생명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 국내 프로스포츠에서는 선수와 구단이라는 관계에서부터 평등 게임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국내 프로선수들이 시즌중에는 경쟁 상대와, 비시즌에는 소속 구단과 승산없는 싸움을 벌어야 것도 바로 이런 연유다.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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