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땅이름] 동대문구 휘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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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9.11.30 18:53:00


  •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徽慶洞)! 그 땅이름 처럼 ‘아름답고 경사스러운 곳’은 못되는 것 같다.

    조선조 영조(英租) 38년(1762). 당쟁의 희생물로 뒤주 속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思悼世子:뒷날 莊祖로 추존)가 양주군 배봉산((拜峯山: 오늘날 휘경동)기슭에 묻혔다. 사도세자의 묘소가 바로 영우원(永祐園)이었다.

    그러나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正祖)가 왕위에 오르자 억울하게 죽은 그의 생부를 장헌세자(莊憲世子)로 고치고 정조 13년(1789)10월 7일 영우원을 수원의 주산 화산(花山)으로 이장, 현융원(顯隆園)으로 고쳤다.

    그로부터 60년 뒤인 조선조 제22대 순조(純祖)의 생모 수빈(綏嬪) 박씨(朴氏)가 세상을 떠자 다시 배봉산 기슭(휘경동 산 7~8번지)에 묻히게 되니 바로 휘경원(徽慶園). 휘경동이란 땅이름도 여기서 유래한다.

    수빈 박씨는 판돈령부사 박준원(朴準源)의 3녀로 태어났다. 어려서 부터 자질과 언행이 특출하여 주위의 칭찬을 받고 자랐다.

    그에 관한 일화로는 그가 태어나던 날 어머니 원(元)씨가 꿈에 어떤 노인이 큰 구슬 한개를 주었는데 광채가 방안에 가득 찼다고 한다. 또 어느날 두 언니와 함께 있는데 호랑이가 갑자기 나타나 뜰 안으로 들어오니 두 언니는 놀라 엎어지며 울음을 터뜨렸지만, 수빈만은 천천히 걸어서 방안으로 들어오는데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니 모두들 신기해 했다고 한다.

    수빈 박씨는 17세 되던 정조 11년(1787)에 왕실의 후사를 잇기 위해 후궁 간택에 수위로 뽑혀 입궁했다. 정조 14년(1790)에 원자(뒷날 순조)를 낳았으므로 궁중과 온 나라가 크게 경하했다. 원자는 11세에 세자에 책봉되고 그 이듬해 6월 왕위에 올랐으므로 직접 수렴청정 하지는 않았으나 수빈 박씨의 부조가 컸다.

    수빈 박씨는 순조 22년(1822년)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왕은 현목(顯穆)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묘호를 ‘휘경(徽慶)’이라 정한뒤 배봉산 아래에 묘역을 정해 그해 7월 27일 장례를 했다.

    그 뒤 수빈 박씨는 철종 6년(1855년) 10월 6일 양주 순강원(順康園)의 우측에 이장됐다가 명당이 아니라 하여 양주군 진접면 부평리로 옮겨졌다가 다시 1949년 7월 6일 ‘서삼릉’에 이장됐다.

    한편 수빈 박씨의 묘소가 양주 순강원으로 옮긴지 52년이 지난 광무 11년(1907) 6월에 제24대 헌종의 후궁인 순화궁(順和宮) 경빈(慶嬪) 김씨(金氏)가 76세로 세상을 떠나자 고종황제는 조서를 내려 특별 예장을 명했다.

    같은 해 7월 5일에 장례를 지내고 묘소의 명칭을 수빈 박씨의 ‘휘경원’과 같게 하므로써 이 곳의 땅이름은 계속 ‘휘경’으로 영속성을 띄게 됐다.





    옛 사도세자의 묘터(영우원)에 이어 순조의 생모 수빈 박씨, 현종의 후궁 경빈 김씨의 묘터로 땅이름의 연속성을 지닌 자리에 휘경중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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