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비디오] 음지속의 사랑과 그들의 아픈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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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9.11.30 19:19:00


  • 영국 출신인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작품으로는 문예, 시대극 <쥬드>(1996년)만이 국내에 소개됐다.

    그러나 영화에 관심 있는 이들은 그의 초기작인 여성 로드 무비 <버터플라이 키스>(1995년)로부터 유고 내전을 다룬 <웰컴 투 사라예보>(1997년)를 거쳐 최신작 <원더랜드>와 <당신과 함께, 당신 없이>에 이르기까지 익히 명성을 들어왔다.

    윈터바텀은 <쉘로우 그레이브> <트레인 스포팅> <인질>을 발표한 대니 보일처럼 에너지를 겉으로만 발산하지 않고 내공을 쌓는 감독이라는 느낌이 강하고, 그래서 어둠 속에서 꿈틀대는 그의 격렬한 에너지로부터 강한 충격과 긴 여운을 얻게 된다.

    <광끼>라는 선동적인 우리말 제목이 붙은 (18세 이용가 등급, 폭스 출시)는 1998년 베를린영화제에서 특별상을 받은 수작이다.

    이같은 프리미엄과 훔쳐보기라는 호기심 강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극장 개봉 없이 바로 비디오로 출시된 것은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푸른 색채가 말해주듯 자극보다는 슬픔이 먼저 번져오는 어두운 영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성 행위를 훔쳐보고 그 현장음을 녹음한다는, 극단의 상업성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인 요소를 밑바닥에 깔아버리는 담대함, 사려 깊음에 찬탄의 신음이 배어 나온다.

    어머니의 자살을 목격하고 실어증에 걸린 14세 소년 혼다(루카 페트루식)의 소일거리는 누나(라비나 미테브스카)나 주변사람들의 정사 장면을 훔쳐보며 쾌락의 소리를 녹음하여 되풀이해 듣는 것.

    28세의 미용사 헬렌(라셀 와이즈)을 흠모해온 혼다는 그녀의 팔찌를 주워준 것이 인연이 되어 그녀의 말동무가 된다. 미용실 고객들로부터 바람둥이라는 말을 듣는 아름다운 헬렌은 라디오 헤븐이라는 프로를 진행하는 밥 뉴먼과 사귀고 있다.

    그런 어느 날 헬렌의 옛 애인 마틴(알레산드로 니볼라)이 출소하여 헬렌의 주변을 맴돈다. 혼다는 마틴이 헬렌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신문 기사를 모으는 등, 헬렌과 마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데.

    <광끼>의 등장 인물들은 모두 밝히고 싶지 않은 과거를 안고 산다. 이 과거의 망령은 ‘천국으로부터 먼’이라는 뜻의 파헤븐의 황량한 바닷가 마을에까지 그림자를 드리우며 네 젊은이의 출구 없는 삶을 지배한다.

    또한 네 주인공은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상대와 순조로운 관계를 맺지 못하고 어긋나거나 이지러져 있거나 거짓 사랑을 속삭인다. 그래서 마틴이 즐겨 듣는 엘비스 코스텔로의 노래 는 그냥 흘려듣기 어려운 주제곡으로 마음을 울린다.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사랑을 하는 이들을 그린 밝고 감동적인 영화들이 있다. 그러나 <광끼>의 주인공들처럼 음지의 습한 사랑에 빠져 있는 이들도 있다.

    더구나 영화 <광끼>는 이런 심상을 아주 불편하게 묘사한다. 관객에게 결코 친절하지 않은 영화를 보아야 하는 이유? 인생이 양지쪽으로만 달리는 단선의 명쾌한 게임이 아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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